올 상반기 미국에서 개봉한 영화 '패터노(Paterno)'를 얼마 전 봤다.
전설적 미 대학 미식축구 지도자인 펜실베이니아주립대 조 패터노 전 감독 실화를 다룬 작품이다.
그는 61년간 이 대학 미식축구팀을 지도하면서 대학 미식축구 역사상 최다승 기록을 세운 영웅이었다.
그 업적을 기려 학교에선 경기장 앞에 동상까지 세웠다.
그런데 한순간 나락으로 떨어졌다.
발단은 아동 성폭행 사건.
패터노 밑에서 일했던 수석 코치가 15년간 52건에 달하는 아동 성폭행을 저질렀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비극은 시작된다.
이 사건은 펜실베이니아주 지역 신문 기자가 추적 보도하면서 수면 위로 드러났고 검찰 수사로 이어졌다.
파문이 커지자 패터노는 시즌 도중 감독직에서 전격 해임된다.
지역 스포츠 스타이보니 팬들은 '본인이 범인도 아닌데 반세기 넘게 헌신했던 노장에게 너무한 것 아니냐'면서 격하게 항의한다.
패터노 자신도 '(내가) 대학에 얼마를 벌어다 줬는데…'라면서 분을 삭이지 못한다.
그러나 그는 무심했다.
그게 자기 밑에 있던 코치가 소아 성추행을 했다는 보고를 받고도 대학 본부에만 전달하고 손을 털었다.
대학 본부 역시 당사자에게 구두 경고만 하고 내부에서 덮었다.
바로 경찰에 신고하고 합당한 처벌을 받도록 했으면 이후 벌어진 아동 성폭행 피해는 막을 수 있었을 텐데
그들은 무책임하고 비겁했다.
패터노에게 딸이 물었다. "사실을 알고 나서 대학 본부에 언제 알리셨어요?"
패터노가 답한다. "이틀 있다가."
딸이 되물었다. "아니 왜 바로 알리지 않으셨어요?"
"주말이라서…. 본부 직원도 가족이 있잖아."
딸은 어이없다는 듯 언성을 높였다. "아니 피해 아동 가족 심정은 생각 안 해보셨어요?"
패터노는 성공한 엘리트 지도자였지만 사회적으로 옳은 판단과 행동에 둔감했다.
그게 과오이자 귀책사유다.
오하이오주립대 미식축구팀을 전국 1위로 이끌었던 어번 마이어 감독도 최근 사퇴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휘하 코치 중 한 명이 가정 폭력 문제로 경찰 조사를 받고 있는데,
마이어가 알고서도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다.
패터노나 마이어가 보여준 행태는 한국 사회라면 어쩌면 '의리'로 포장될 수도 있을 법하다.
'아무리 그래도 수십 년간 동고동락한 동료인데 어떻게 매정하게 경찰에 신고하나…'라는 생각은
침묵을 숙주로 삼아 사회 곳곳에 있다.
하지만 세상은 변하고 있다.
친분 관계를 핑계로 주변에서 벌어지는 불의에 침묵하는 사람 역시 공범으로 간주하는 풍토는
앞으로 더 엄격해질 것이다.
국제투명성기구 부패인식지수에서 한국이 세계 52위에 그치는 이유에 대해
전문가들은 '부패 친화적 연고·온정주의 문화'를 거론한다.
우리도 이젠 그 고리를 끊을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