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

(44) 신상옥(1925~2006) (김동길 교수, 조선일보)

colorprom 2018. 10. 13. 19:44

[Why] 납북·탈북 이어진 '풍운아 영화인'… 겨레의 아픔 상징이었다


조선일보
                             
  • 김동길 단국대 석좌교수·연세대 명예교수
    •          
    입력 2018.10.13 03:00

    [김동길 인물 에세이 100년의 사람들] (44) 신상옥(1925~2006)

    [김동길 인물 에세이 100년의 사람들]
    일러스트=이철원
    신상옥의 본명은 신태서다. 그를 따르는 여성이 무척 많았다.
    그는 매우 매력적인 얼굴과 맑은 눈동자와 신선한 표정을 가진 남성다운 사나이였다.

    나는 피카소를 직접 만난 적은 없지만 그의 사진을 아마도 수백 장은 보았을 것이다.
    피카소는 여성 아닌 남성들도 끌려들어 갈 만한 용모를 지녔다고 생각해서다.

    한국 남성 중에서 매력적인 한 남성을 고르라면 신상옥의 이름을 들 것이다.

    그는 1925년 함경북도 청진에서 부유한 한의사 아들로 출생하였다.
    신상옥이 1926년 태어났다는 기록도 있지만, 1928년생인 나보다 세 살 위임을 몇 차례 말한 적이 있다.
    그는 어릴 적부터 그림을 잘 그리기로 소문난 어린이였고, 중학교 2학년 때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하였다.
    1944년 동경미술학교에 진학했으나 학병으로 끌려가는 것을 피하기 위해 학업을 중단하고 고국으로 돌아와
    8·15 해방을 맞이하였다.

    '수업료'와 '집 없는 천사'로 잘 알려진 한국 영화계의 개척자 최인규 감독 문하에서
    영화 일을 배우기 시작하였다.
    그가 독립적으로 영화를 제작한 것은 1949년부터였는데 그의 첫 작품 '악야'는
    전쟁 때문에 개봉되지 못하고 있다가 몇 년 뒤에야 빛을 볼 수 있었다.

    그가 1954년에 만든 '코리아'라는 영화 때문에 알게 된 여배우 최은희와 결혼하였다.
    이 즈음 '신상옥 프로덕션'이 출범하였고
    '꿈' '젊은 그들' '무영탑' '어느 여대생의 고백' '독립협회와 청년 이승만' '로맨스 파파' 등을
    그는 연출하였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조국 땅에서 피곤한 민중은 영화에서 위로받고자 하였고
    영화 산업은 폭발적으로 성장하였다.
    신상옥은 신상옥 프로덕션을 '신필름'으로 확장하였고
    '성춘향'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연산군' '로맨스그레이' '빨간 마후라' '벙어리 삼룡이' 등을
    제작하면서 신영균, 최은희, 신성일, 엄앵란 같은 당대의 유명한 배우들을 배출하였다.

    그러나 무리한 확장으로 '신필름'은 벽에 부딪혀 엄청난 어려움을 겪어야 했으며
    마침내 1975년에는 영화사의 허가가 취소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1978년 예기치 않았던 사건이 하나 발생하였다.
    무슨 일로 그때 홍콩에 갔던 최은희마카오에서 자취를 감춘 것이다.
    무서운 소문들이 떠돌기 시작했다. 그가 자진하여 월북했다는 낭설도 있었다.
    얼마 뒤에 최은희평양으로 납치되었다는 사실이 국제적으로 알려져 우리는 더욱 긴장하였다.

    신상옥최은희가 납북되고 6개월 뒤에 평양에 돌연 나타났다.
    김정일이 영화광이라는 것은 알려진 사실이었다.
    김정일신상옥, 최은희를 주축으로 북의 영화 산업을 발전시키려고 했다는 말도 있었다.

    신상옥의 납북 2년 뒤에 평양에 '신필름'이 설립되었고
    그들이 북에 체류한 8년 동안에 '돌아오지 않는 밀사' '소금' '탈출기' 등이 제작되었다.

    신상옥최은희가 1986년 오스트리아 빈의 미 대사관을 통해 탈출에 성공했다는 보도는
    당시 매우 충격적인 뉴스였다.
    대한민국의 저명인사가 납북되었다가 탈북할 수 있다는 것은 상상하기도 어려운 일이었다.
    모종의 영화를 제작한다는 명목하에 김정일이 마련해 준 자금 1백만달러를 가지고 탈북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뒤에 밝혀진 바로는 제작비 1백만달러는 모처를 통해 북에 돌려줬다고 한다.
    그러나 그 두 사람의 신변을 미국이 아니고는 지켜 줄 수 없었다.
    미국은 그 두 사람이 김정일과 가까이 지냈고
    따라서 북의 수뇌부 사정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고 판단하고 그 두 사람을 초청하여 신변을 보호해 줬다.

    그들이 체류하고 있던 LA에 해마다 강연을 가게 되면
    반드시 두 사람과 함께 냉면집에서 식사를 같이하였기 때문에 특별하게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신상옥은 자발적으로 평양에 갔지만, 최은희는 강제로 납치됐다는 게 이들의 말이었다.
    두 사람의 납북은 민족 역사의 비극이었다.
    나는 두 사람이 이 시대 겨레의 아픔의 상징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한국에 돌아왔을 때 이미 신상옥은 지쳐 있었다.
    그는 여전히 영화 제작에 대한 큰 꿈을 갖고 있었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고
    2006년 4월 11일 조국 품에 돌아온 지 6년 만에 세상을 떠났다.

    봄빛이 어리는 쌀쌀한 날씨였다.
    신상옥의 영결식은 서울대학병원 영안실 앞마당에서 거행되었는데
    최은희의 요청으로 내가 추모사를 하였다. 영어로 된 시지만 작자는 미상이다.

    '나의 무덤가에 서서 울지 마세요/
    나 거기 없어요, 나 잠들지 않았어요/
    나는 천의 바람이 되어 불고 있으리라/
    나는 흰 눈 위에 반짝이는 다이아몬드/
    나는 무르익은 곡식 위에 비치는 햇빛/
    나는 부드럽게 내리는 가을날의 보슬비.'

    이 시는 메릴린 먼로존 웨인장례식에서 누군가가 낭독하였다고 들었다.
    내가 우리말로 그 시를 읊으면서 마지막 한마디를 끝맺기가 어려웠다.
    이 나라 영화인들과 문화인들이 다 한자리에 모인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아름다운 꽃이 장례식장을 꽉 메웠고 '봄이 온 것은 확실하기는 하였지만, 아직 봄 같지는 않았다',
    그런 아침이었다고 기억한다.

    추억은 언제나 아름답다. 가톨릭으로 영세를 받은 그는 천주교 묘지의 매우 높은 언덕에 자리 잡고 있다.
    그의 기일이 되면 최은희이장호 등 여러 영화인과 그 언덕을 찾아가 함께 묵념하면서
    우리 영화계를 비춰준 큰 별 신상옥을 그리워했다.
    인간의 생명이 죽음으로 아주 끊기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10/12/2018101201868.html



    유재운(yjwo****)2018.10.1411:40:09신고
    신상옥은 여자들이 호감을 가질만한 미남이었다. 어쩌면 그는 정말 멋진 인생을 살았다고 생각한다.
    아나로그 시절의 낭만이었으리라. 요즘같은 디지탈시대에 그런 낭만을 기대하기는 힘들게다.
    양계장의 닭처럼 고만고만한 인생들이 아옹다옹하고 사는 답답한 시대의 군상들이다.
    최은미(cho****)2018.10.1408:03:57신고
    신의 입북은 아직도 미스테리다. 자진이 아닌가 의심이 든다.
    아무튼 김동길이 박정희 때는 민주 인사로 누나와 함께, 대권 후보로도 입에 오르내렸는데,
    나중에 이상하게 변하더라.
    오적의 김지하가 어느 신문의 러시아 문학 기행 갔다 온 다음에, 박그네 지지로 돌아선 것은
    돈에 대한, '타는 목마름'에서는 아닌 것 같고, 이 사람도 전두환 때 갈치자 횡보를 한 것은
    역시 권력에 대한 자기 정치였는가 의심이 안든다.
    정말 훌륭한 사람이다. 댓글이 조심스럽다.
    김도형(rdhk****)2018.10.1406:05:03신고
    난 밤하늘의 부드러운 별빛이오. 내 무덤에 서서 울지마오. 난 거기 없소. 난 죽지 않았소.
    김도형(rdhk****)2018.10.1406:01:52신고
    1998년 경에나 작가가 자기 작품임을 밝혔다네요.
                                                                                                                                           내무덤에 서서 울지마오. 난 거기서 자지 않소. 난 천갈래 바람이오. 난 눈위에 반짝이는 다이먼드요. 난 익은 곡식을 비추는 햇빛이오. 난 부드러운 가을비요.
    난, 네가 고요한 아침에 눈떴을때 공중으로 날아 오르는 새의솟구침이오. 난
    박혜정(hyjo****)2018.10.1405:42:39신고
    대한민국이 아직 지탱하는것은 김동일 같은 현인이 버티고 있어 치열한 이념에서 민족의 갈길을 잡아주고 안내해주고 계시기 때문이다.
    아는 지식이 다소 다를수는 있어도 바른길은 틀림없이 안내하는 구순의 김동길 선생님을 존경한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10/12/201810120186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