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공부

***김형석 박사님과 백영옥씨의 '진짜 사랑' (조선일보)

colorprom 2018. 10. 6. 17:17

[Why] 마지막이 될 주례를 마치고


조선일보
                             
  •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          
    입력 2018.10.06 03:00

    [김형석의 100세 일기]

    추석을 앞둔 토요일 강원도 양구에서 내 생애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결혼식 주례를 맡았다.
    신혼부부에게 "결혼은 가정의 출발이기는 하나 완성은 자녀를 낳아 키우는 것이다.
    최소한 두 자녀는 훌륭하게 교육해서 사회에 봉사하는 모범적이고 영광스러운 가정이 되어 달라"고 부탁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옛날 있었던 일이 떠올라 혼자 웃었다.
    서울여대 총장을 지낸 고황경 박사가 대한어머니회 회장으로 있으면서 가족계획 운동을 주도하던 때였다.
    1970년대에 고황경 박사는 전국을 다니며 '둘만 낳아 잘 키우자'고 강연하곤 했다.
    가족계획만 얘기하기 곤란하니까 한번은 나더러 다른 내용 강연으로 협조해 달라는 청을 했다.
    도와 드려야 하겠기에 동행한 때였다.

    고 박사가 강연하면서 "미국에서는 교육 수준이 높은 백인들은 아들딸 가리지 않고 둘만 낳아 잘 키우는데,
    가난하고 교육 수준이 낮은 흑인들은 여섯, 일곱씩 낳아서 제대로 교육도 하지 못한다"는 얘기를 했다.
    그러니까 교양이 높은 여러분은 절대로 여럿을 낳아 고생하지 말라는 충고였다.

    그때였다. 뒷자리에 앉아 강연 차례를 기다리는 나를 가리키면서
    "김 교수님은 애들이 몇이세요?"하고 묻는 것이다.
    나는 대답하기 난처했다. 아들 둘, 딸 넷이라고 해야겠는데 그렇게 되면 고 박사의 강연이 무색해지고
    여섯이라고 하면 나도 흑인 대우를 받게 된다. 그래서 "아들은 둘을 키우고 있다"고 반 거짓말을 했다.
    고 박사는 "그것 보세요" 하면서 인구는 등비급수(等比級數)로 늘고
    식량은 그 인구를 감당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빈곤과 교육 곤란이 심해진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다음부터는 고 박사와 동행하기를 거절했다. 나 자신이 무자격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반세기 동안에 세상이 바뀌었다.
    지금은 나처럼 자식을 여럿 둔 사람이 정부의 표창을 받아 모범을 보여주어야 할 때가 되었다.

    몇 해 전 추석에는 미국에 있는 애들도 모여서 모친과 아내가 잠들어 있는 산소에 갔다.
    간단히 예배를 마친 뒤 지난 이야기를 했다. 내용은 이랬다.

    "엄마와 내가 너희 여섯을 키울 때는 좁은 집이 넘칠 것 같았다.
    하나씩 미국·독일로 유학을 떠나니까 집이 빈 둥지 같아지더라.
    연세대에서 2년을 보낸 막내를 마지막으로 미국으로 떠나보내고 나니까,
    엄마가 집에 들어오기 힘들었던 모양이더라.
    나보고 '먼저 가세요 . 나는 혼자 어디 가서 마음 놓고 울다 갈게요'라면서 들어오지 않더라.
    갈 곳도 없었겠지. 교회에 가서 실컷 울고 왔겠지.
    와서는 '이제는 행복했던 세월이 다 끝난 것 같아요. 여섯을 키울 때가 제일 즐겁고 감사했는데.'
    뜻밖에 차분한 목소리더라.
    내가 '당신은 나보다 더 사랑이 넘치는 고생을 했으니'했다.
    사랑이 있는 고생이 가장 행복한 인생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10/05/2018100502642.html

    [백영옥의 말과 글] [67] 고양이와 사랑


    조선일보
                                 
  • 백영옥 소설가
    •          
    입력 2018.10.06 03:07

    백영옥 소설가
    백영옥 소설가



    몇 달 전부터 밤에 공원을 산책하다가 고양이 한 마리를 마주쳤다.

    직감적으로 주인이 버린 고양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속상했다.

    새까만 몸은 소스라치며 밤의 어둠 속으로 재빠르게 사라졌지만 뒷모습이 오래 남았다.

    소설가 윤이형의 고양이 이름은 '레일라',

    에릭 클랩턴이 가장 친한 친구였던 조지 해리슨의 아내에게 연정을 품고 만든 노래 제목에서 딴 이름이라고 했다. 마력의 소유자였던 레일라였으니 이름만 봐도 고양이의 매력이 대단했을 것이다.

    '작가와 고양이'는 작가들이 키우는 고양이에 관한 얘기다.

    이 책에는 아기 고양이를 살리기 위해 세제 없이 빨아 말린 수건을 세 겹으로 깔아주던 소설가가 등장하고,

    냄새로 만들어진 국경을 따라 걷는 고양이들이 가득하다.

    책을 읽으면 자연스레 고양이들에게 '넓이'보다

    탑이나 계단처럼 올라갈 수 있는 '높이'가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된다.


    하지만 내 눈을 사로잡은 건 귀엽고 사랑스러운 고양이에 관한 얘기가 아니었다.

    키우는 고양이가 나이 들어 아무 곳에나 변을 보고,

    자주 길을 잃고, 이전에는 하지 않았던 행동을 했을 때의 이야기였다.

    매혹적이던 고양이 '레일라'가 치매에 걸렸을 때, 작가가 다짐하듯 스스로에게 하는 이야기 말이다.

    "사랑이라는 건 실은 얼마나 귀찮은 일들의 연속인가.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생각하는 일과 그 사랑에 따르는 것들을 감당하는 일은 얼마나 다른가.

    함께 사는 일의 지난함을 매 순간 느끼면서.

    이유는 단순하다. 함께 있고 싶기 때문이다.

    삶은 어쨌든 슬프고 공허하지만,

    사랑이라는 행위를 통할 때조차 우리가 서로에게 온전히 닿을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혼자일 때보다 함께할 때 삶이 훨씬 덜 공허하고 덜 슬프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우리가 비로소 사랑을 말할 수 있을 때는 그것이 더 이상 아름답지 않고 예쁘지 않을 때가 아닐까.


    더위가 치솟던 여름 3개월간 버려진 유기견(遺棄犬)이 3만 마리를 넘었다는 기사를 읽었다.

    어둠 속으로 사라지던 고양이의 뒷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10/05/201810050415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