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우리나라

귀화한 왜장이 뿌리내린곳 `우록동' (박종인 기자, 조선일보)

colorprom 2018. 9. 21. 15:01

[여행] 귀화한 왜장이 뿌리내린곳 `우록동'


입력 : 1997/08/28 19:35

달성군 가창면계곡에 70세대...일본인 관광객 붐벼 .

   

【우록동(달성)=박종인기자】


"임진년 4월 일본국 우선봉장 사야가

삼가목욕재계하고 머리숙여 조선국 절도사 합하에게 글을 올리나이()

금번에 일본이 이유없이 군사를 일으킬 제, 대인군자의 나라 조선국에 나가보고 싶은 마음에 선봉이 되어

본국에 온 것입니다. 다만 저의 소운은 예의의 나라에서 성인의 백성이 되고자 할 뿐입니다()".


임진왜란 당시 전투 한번 안치르고 곧바로 조선으로 귀화한 젊은 일본 장군이 있다.

그리고 그 후손들이 17대까지 이어져 서원과 사당을 만들어 물맑은 계곡에 모여 산다.

거기가 우록동.


우록동에 가 그 전설같은 역사 속으로 들어가보자.


이 곳은 우리가 모르는 사이 매년 1천명이 넘는 일본 사람들이 다녀가고 있다.

대구에서 남쪽 달성군 가창면으로 가는 911번 도로

 경북시민들이 즐겨 찾는 주말 휴양지로 가는 길이다.


수성못 한가운데에는 분수가 시원하게 물을 쏟고 있다.

수성못 5거리를 지나 달성군으로 넘어가면 곧바로 자연공원이 있다.

팔조령에서 흐르는 물이 맑고 시원해 냉천자연원이라 부른다.

숲이 우거지고 절벽, 폭포 등 자연경관과 어린이들이 놀 수 있는 놀이시설이 조화를 이룬 가족공원이다.

 

공원 위편에는 댐으로 가둬놓은 호수가 있다.

선조김충선(1571∼1642)이라는 이름을 내려준 사야가장군 집성촌은

냉천에서 8㎞ 들어간 우록동에 있다.


"조선 문물을 흠모해 귀화한 할아버지는 왜란과 병자호란, 그리고 이괄의 난에 공을 세워

'삼란공신'이라는 칭호를 받으셨죠.

모하당이라는 호는 성리학적인 질서를 흠모하며 지은 것입니다.

조선에게는 대충신이요, 일본에게는 천하 반역자일게요.".


김충선의 13세손 김영환(76)은 집안 내력을 이렇게 설명했다.

22세 청년 장군 사야가는 의병, 관군과 함께 일본군과의 78회 전투에서 승전했다.

김충선은 조정에서 내린 벼슬과 논밭을 "당연히 신하로서 할 도리"라며 마다하고

산수 좋은 달성땅에 내려와 거처를 우록동이라 칭하고 '사슴과 벗하며' 학문에 열중하다 죽었다.


사후 유림에서 조정에 소를 올려 그 무덤 아래에 녹동서원 사당을 짓고 그를 추모했다.

서원 대문에는 향양문이라는 현판이 걸렸다.

뒤편에는 영정 없이 위패만 모신 사당 녹동사가 서 있다.

뜰에는 모하공김공 유적비가 영산홍, 수국, 모란, 향나무, 무궁화 사이에 서 있다.


김옹은 "걸음이 나는 듯 하고 수염이 멋있고 키크고 활동적이라는 ,

그리고 문무를 겸비한 사람이었다는 정도가 기록에 나온 전부"라며 안타까워했다.


뒷산에 있는 장군 묘에는 무덤이 3기 있다.

하나는 장군, 하나는 그 부인. 오른쪽 끝 무덤은 뭔지 모른다.

"분명 유품이 함께 부장돼 있으리라 싶은데 시조 묘라 망설이고 있"고 한다.


일제 때 반역자의 후손이라고 일본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해마다 1천여명씩 일본 관광객들이 이 곳을 찾아온다.


김옹은 그들에게 "할아버지 때문에 대대로 칭찬받고 살고 있다고 얘기해준다"면서

"김충선은 인류평화주의자"라고 정의한다.


92년엔 임진왜란때 일본으로 끌려간 도공의 후손 심수관가 우록동을 찾은 적이 있다.

김옹과 손을 마주잡고선

"내 조상은 일본으로 끌려왔고 당신 조상은 스스로 조선으로 와 누대를 살았소.

어찌 이리도 극명하게 다른 인연이오"라고 감회에 젖었다한다.


김충선은 후손들에 '드러나지 말고 겸손하게 살라'는 유언을 남겼다.

그 유언에 따른듯 외졌지만 아름다운 우록동에 그 후손들이 살고 있다.

17대까지 이어진 후손은 7천여명. 지금 70세대 3백여명이 우록동에 남아 있다.


우록동은 후손들이 일궈낸 논밭으로 온통 녹색.

우록동 입구에는 토종닭, 청정미나리, 오리고기 등 토속음식점이 많이 들어섰다.

서원 위편으로는 김씨문중이 개발을 금지하고 있다.


지금 서원 옆에 기념관을 건립중이다.

내년초 준공되면 한국과 일본 두나라를 아우르는 훌륭한 역사교육 현장 한곳이 더 생겨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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