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우리나라

조선의 지도 제작 기술, 세계 최고 수준이었어요 [뉴스 속의 한국사](조선일보)

colorprom 2018. 9. 20. 15:11

신문은 선생님

[뉴스 속의 한국사] 조선의 지도 제작 기술, 세계 최고 수준이었어요

입력 : 2017.08.15 03:06



[지도 제작]

삼국시대부터 지도 제작 기술 발달
고구려 벽화, 요동 일대 상세 묘사
조선 세계지도엔 아프리카도 나와

거리 재는 수레 '기리고거' 동원해 조선 전국 누비며 동국지도 완성
훗날 '대동여지도'의 발판됐어요

131년 전인 1886년에 일본이 독도를 자기 영토로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구체적 자료가 발견됐어요. 한철호 동국대 역사교육과 교수는 당시 일본의 지리 교과서 '신찬지지(新撰地誌)'의 아시아 지도에 울릉도와 독도가 그려져 있지 않은 것을 밝혀냈죠. 이 지도엔 일본의 국경선이 붉은색으로 그어져 있는데 울릉도와 독도 해역은 일본 영토에서 제외돼 있어요. 독도가 일본 땅이라는 일본의 주장을 반박할 좋은 자료인 셈이죠.

지도는 옛날부터 영토와 주권의 범위를 알려주는 도구로 통치 목적과 군사작전에 중요하게 이용됐어요. 우리 조상도 무척 오래전부터 지도를 만들었는데 과연 언제부터 지도를 그렸고, 제작 수준은 어땠을까요?

◇삼국 시대부터 활용된 지도

1953년 평안남도 순천군 용봉리에서 고구려 시대 무덤이 발굴됐어요. 다른 고구려 벽화 무덤들처럼 무덤 안 여러 방의 벽과 천장에 여러 그림이나 무늬가 그려져 있었는데, 한 성(城)의 모양과 성 안에 있는 건물들을 그린 그림도 있었어요. 성 그림 속에는 '요동성(遼東城)'이라고 쓴 글씨가 새겨져 있었죠. 그래서 이 무덤을 요동성 모습이 그려져 있는 무덤이라 하여 '요동성총'이라고 불러요.

[뉴스 속의 한국사] 조선의 지도 제작 기술, 세계 최고 수준이었어요
/그림=정서용
요동성은 만주 요양 부근에 있는 고구려의 성으로 중국 수나라의 1·2차 침략에도 함락되지 않았던 난공불락 요새였어요. 요동성을 그린 그림에는 성 주변 산이나 강, 요동성을 방어하기 위해 만든 다른 조그만 성이 그려져 있고, 성의 여러 입구와 성 안의 건물 모양과 위치 등도 표시돼 있어 성곽 지도의 역할을 했어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지도로 보고 있죠.

또 '삼국사기' 중 고구려본기에는 영류왕 11년(서기 628년) 가을 9월에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며 봉역도(封域圖)를 올렸다'는 기록이 있는데 봉역도는 한 나라 전체를 그린 지도를 말해요. '삼국사기' 문무왕조(671년·문무왕 11년)에 '신라와 백제 간의 경계를 지도에 의하여 살펴보았다'는 기록도 있어요. 이를 통해 삼국 시대 또는 그 이전부터 우리 조상이 지도를 제작했고 이용했음을 알 수 있어요.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세계지도

조선 초기 태종 때인 1402년에는 국가적 사업으로 매우 특별한 지도가 제작됐어요.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라는 가로 164㎝, 세로 148㎝ 대형 세계지도죠. 의정부의 모든 실무를 담당하는 검상이라는 관직(정5품)에 있던 이희가 좌의정 김사형, 우의정 이무 등과 함께 완성한 지도예요. 중국과 조선, 일본의 최신 지도를 자료로 삼고, 다양한 자료를 수집해 동남아시아와 인도, 아라비아, 유럽 그리고 아프리카까지 그려넣었어요. 현재까지 전하는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세계지도이며, 당시 그려진 세계지도 가운데 가장 우수한 지도로 평가받고 있어요. 1992년 미국에서 열린 콜럼버스 신대륙 발견 500주년 기념 지도 전시회에 전시됐는데 서양의 지도역사학자들이 "당시에 이런 지도가 있었다니…"라며 크게 놀랐다고 해요.

이희는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를 만들기 몇 달 전에 '팔도도'라는 조선의 전국 지도를 만들어 태종에게 바쳤는데 이 지도가 조선 최초의 지도였어요. 안타깝게도 원본이나 사본이 남아 있지 않아 그 내용을 알 수 없으나 몇 달 뒤 그가 만든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로 팔도도의 우수성을 짐작해볼 수 있죠.

◇지도 제작술이 발달한 조선

세종대왕은 1436년 신하 정척을 불러 "함길도와 평안도 등을 자세히 살펴서 산천 형세를 그려오라"고 명령했어요. 앞서 1433년 압록강과 두만강 유역에 4군 6진을 설치하며 북방 영토를 개척한 세종은 군사적으로 이 지역에 대해 자세하고 정확한 지도 제작이 필요하다고 느낀 것이죠. 정척은 풍수지리를 담당하는 '상지관'과 그림 그리는 일을 전문으로 하는 화공들을 데리고 함길도와 평안도 지역을 두루 살폈어요. 그렇게 1451년 양계 지방 지도를 완성했죠.

세종 때 집현전에서 활동했던 양성지는 충청도·경상도·전라도의 산천 형세를 조사했어요. 양성지는 조선 전도의 지도를 만들라는 세조의 명을 받고 정척과 힘을 합쳐 1463년 '동국지도(東國地圖)'를 완성했어요. 양성지와 정척이 만든 동국지도는 실지 답사로 만든 지도로 조선 전기 최고의 지도로 꼽혀요. 지도 제작에 '기리고거'라는 거리 측량 기구를 사용했다고 해요. 해안이나 산간 지방처럼 수레를 사용하기 힘든 지역에서는 간승(일정한 거리마다 표시를 해둔 노끈)이나 대나무 자인 죽척을 사용했어요.

이렇게 제작된 조선 전기의 지도들이 바탕이 돼 '조선방역도', 정상기가 제작한 '동국지도', '도성도' 등이 훗날 제작됐고 우리 역사상 최고의 지도로 평가받는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로 이어지게 됐답니다.

[기리고거는 어떤 기구일까?]

기리고거(記里鼓車)는 어떤 곳에서 다른 곳까지 이르는 거리를 '리(里)' 단위로 세는 수레처럼 생긴 기구예요. 417년에 중국에서 처음 사용했다고 전해지며 조선에서는 세종 때 사용한 것으로 기록돼 있어요. 문헌에 따르면 수레는 위아래 2층으로 구성돼 있고 각 층에 나무인형(木人)과 북 또는 징이 내장돼 있어, 수레가 1리(里)에 이르면 아래층의 나무인형이 북을 치고, 10리에 이르면 위층의 나무 인형이 징을 쳐서 거리를 알렸다고 해요. 1441년 세종은 왕비와 함께 말이 끄는 기리고거를 타고 온양에 가면서 거리를 측정했어요.


지호진 어린이 역사저술가 기획·구성=박승혁 기자


천재영(parch****)2017.08.1515:43:20신고
조선의 얼을 이어 받은 북한과 남한의 현재 모습이 바로 이모습이 올시다.
Hyung-YulCho(countrym****)
2017.08.1512:57:28신고
사대강사업, 제일 안전하게 설계되었다는 원자력 발전소, 미래의 방위산업 제품들을 비리로 엎어 버리려는 종부기들은 다시 바보들의 명청한 짓 거리의 반복이 아닙니까? 로마는 산적, 영국은 해적, 침략자로 나라를 시작했읍니다. 돈 못벌은 사업가는 배반 당하고 배 곯아 제일 먼저 도태 되었읍니다. 종교나 윤리에 제한된 사고방식은 변하는 사회에서 뛰떨어지게 만듭니다.
성순화(eagl****)
2017.08.1512:43:08신고
아무대나 "세계최고" 이따위 우물안 올챙이스러운 수식하는거 아니에요. 저 지도제작을위해 참조된 대명홍일도 를 제작한 명나라는 그럼 우주 최고가되고 그 명나라에서 참조한 서방의 세계지도 제작능력은 무슨 은하계 최고가 되나요? 다시한번 묻고싶네요. 세계최고인가요?
한효순(l****)
2017.08.1510:35:09신고
이런 왜곡된 역사관이 나라를 망친다....그 당시에 다른 나라들이 만들었던 지도를 한번 보아라....세계사적인 과점없이 손바닥만한 자신의 나라도 제대로 못그린 지도가 무슨 소용인가?
2017.08.1512:08:18신고
결국 장퀘를 찬양하고 싶다는 얘기. 끌끌글
유욱상(o****)
2017.08.1510:30:30신고
그렇게 지도 제작기술이 뛰어났는데 왜 삼국시대나 고리(고려가 아니다)적의 지도는 한 장도 남아있는 것이 없을까? 왜 역사책도 삼국사기와 고리사 등 조선시대에 다시 쓴 책 몇 권만 남아있고 하나도 없이 사라진 것일까? 그리고 왜 서국(중국이 아니다)도 마찬가지로 명나라 이전의 역사책과 지도는 거의 없거나 官制의 흔적이 있는 것일까? 이것은 명백한 역사왜곡의 증거다.
2017.08.1510:33:10신고
조선시대에는 수 차례에 걸쳐 고대의 역사책들을 수거, 인멸했는데, 당시 사가에서 역사책을 관에 제출하지 않고 소장했다가 걸리면 사형이었다. 왜 이렇게까지 한 것일까? 그리고 나서 다시 쓰여진 책이 우리가 이른바 正史로 알고 있는 삼국사기와 고리사다. 고리사는 무려 13차례에 걸쳐 다시 쓰여졌다. 중국에 검사를 받느라 사신들이 뻔질나게 중국에 드나들었고.
조형준(os****)2017.08.1510:21:48신고
당시 세계 최고 수준이었어면 뭘하노, 지금의 수준이 문제지..
권홍원(ab****)
2017.08.1510:11:24신고
글쎄다 고선자 김정호는 대동여지도를 만들때 적에게 조선의 지형을 알려줄수있는 인물이다 하면서 고초를 겪고 문초를 받고 했다는대
최성훈(k****)
2017.08.1509:50:32신고
가장 중요한 대동여지도의 기술이 빠졌음. 김정호가 혼자서 대동여지도를 만든 것이 1861년. 1861년이면 미국에서 남북전쟁이 일어난 근현대. 그런데 김정호가 지도를 만들고 무슨일을 당했나면, 이적행위자로 몰아서 (쓸데없이 지도를 만들었다고) 투옥, 그리고 김정호가 고생해서 만든 목판을 불태워 버림. 김정호와 그의 딸은 1866년에 옥사.
2017.08.1510:35:54신고
조선은 외적이 쳐들어오기 쉽다고 도로도 안 만들었던 나라입니다. 신기한 것은 조선 이전에 삼국과 고려는 길도 성도 궁궐도 엄청나게 많이 만들었다는데 하나도 발견되는 것이 없다는 사실이죠. 오히려 조선 초 태종 때의 기록을 보면 전국에 호랑이가 너무 많아서 사람이 많이 죽는다는 상소가 엄청나게 올라옵니다. 이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것은 임진란 이후죠. 왜일까요?
신현호(s****)
2017.08.1509:42:15신고
그래요 일부 과장된 면도 있지만 예전부터 뛰어난 사람들이 기술을 발휘했지만, 중요한 건 그런 좋은 점들은 전수되거나, 발전되지 않았으며, 도리어 그런 것을 제작한 사람을 욕보이고 벌을 준 것이 우리조상입니다. 바퀴라는 좋은 물건이 일찍알려졌지만, 발전시킬 기회를 스스로 묻어버리고 그저 사람을 동원해서 사람 어깨위에 타고 다녔지요. 부끄럽습니다. 앞으론 이러지 맙시다.
2017.08.1512:47:09신고
종부기들이 정권을 잡자 사대강 댐과 보를 부수려하는것,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원자력 발전 기술을 엎어버리려고 하는짓, 가장 실용적인 배행기 언구시설을 비리혐의로 엎어 버리려는 시도는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려는 바보들의 멍청한 짓거리 아닙니까?
이용훈(2000vi****)
2017.08.1508:34:38신고
국뽕이 지나치군요, 세계적인 시각으로 같은 시대에 다른 나라 지도 제작한 것도 읽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