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굿바이, 쇼팽
[박돈규 기자의 2사 만루]
'21세기 쇼팽' 조성진, 내년 1월 카네기홀서 쇼팽 없는 프로그램 첫 연주
연주 없는 한달 주어진다면… 남극에 가고 싶어요, 빙하랑 펭귄 보러
"내년 1월 미국 뉴욕 카네기홀에서 '쇼팽이 없는 프로그램'을 처음으로 연주해요.
피아니스트 조성진(24)에게 쇼팽은 영광이자 굴레였다. 마침내 '굿바이 쇼팽!'이다.
밖에는 폭우가 쏟아지고 있었다. 지난 29일 저녁 서울 광화문의 한 호텔.
피아니스트의 언어는 연주라고 누가 말했나. 조성진은 생각을 차분하게 또박또박 옮길 줄도 알았다.
"연주 영상은 안 봐요, 오글거려서"
여섯 살에 동네 피아노 학원에서 '도'가 어떤 음인지 처음 배웠다.
―비 때문에 퇴근길이 엉망이 됐네요. 클래식 라디오 PD라면 어떤 곡으로 위로하고 싶은지요.
"흐린 날씨는 좋아하지만 비 오는 날은 별로예요. 좀 강렬한 곡?
―운전면허는 있나요?
"재작년 겨울에 한국에서 땄어요. 차는 없는 '장롱 면허'지요.
―해보고 싶은 게 또 있습니까.
"몇 년 전까진 되게 많았어요. 제가 와인을 좋아해요. 소믈리에 자격증을 따고 싶었죠.
―프랑스 유학 시절부터 파리에 살다 1년 전 독일 베를린으로 이사했는데.
"여행을 하기에는 파리가 나아요. 살기엔 베를린이 더 편하고요. 유럽 다른 나라 수도에 비해 한적해요.
―우승 직후가 가장 힘든 시기였다고 들었습니다만.
“매니지먼트사, 음반사를 비롯해 갑자기 중요한 결정을 너무 많이 해야 했으니까요.
계약서 분량만 30쪽이었어요. 도움이 필요해 변호사를 만나야 했습니다.
답장하기 벅찰 정도로 메일도 많이 쏟아져 들어왔고요.
적응하면서 이제 좀 안정이 된 것 같아요.”
―도이치 그라모폰(DG) 레이블과의 음반 계약, 카네기홀 데뷔, 베를린 필과의 협연 등
어릴 적 꿈을 다 이룬 셈인데 조성진 음악에도 어떤 변화가 생겼나요?
“(잠시 생각하다) 평소에는 제 얼굴이 늙는 줄 모르는데 몇 년 전 사진을 보면 달라져 있잖아요.
음악도 그런 것 같아요.
일부러 바꾸려고 애쓰진 않았어요. 콩쿠르 우승 전과 비교하면 좀 더 자유로워지긴 했지요.
음악에는 정답이 없어요. 이것저것 시도하며 다르게 해석해 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연습할 때 너무 확신에 차 있으면 매너리즘에 빠질 수 있지만,
무대에 올랐다면 의심을 거두고 자신 있게 쳐야죠.”
―고운 얼굴인데 연주할 땐 ‘인상파’더군요.
관객을 집중시키는 그 무아지경, 나중에 영상으로 보면 낯설지 않나요?
“배우가 울면 정작 관객은 못 운다고 하잖아요. 고치려고 노력 중이에요.
연주할 땐 생각을 안 해요. 무의식 속에서 합니다. 그러다 틀리면 정신이 돌아와요(웃음).
정신 잡고 치다가 또 무의식으로 들어가곤 하지요.
영상은 사실 안 봐요. 오글거려서. 유튜브를 켜놓지만 시선은 악보를 보면서 그냥 들어요.”
인생의 모토는 ‘생각을 하지 말자’
열 살 때 조성진이 처음으로 산 앨범은
크리스티안 지메르만(1975년 쇼팽 콩쿠르 우승자)이 연주한 쇼팽 발라드였다.
듣고 그 음악에 압도됐다고 한다.
평생 가장 기뻤던 날은 언제였을까.
‘2015년의 쇼팽’으로 호명된 날도 아니고 중국 피아니스트 랑랑을 대신해 베를린 필과 협연한 날도 아니었다. “지메르만의 이메일을 받은 날”이라고 답했다.
―정확히 어느 날인가요.
“2015년 쇼팽 콩쿠르는 사흘간 열렸는데 저는 10명 중 첫 번째 연주자였어요.
첫날에 끝났으니 기분이 좋아서 같이 간 엄마랑 맥주를 마시고 있을 때였어요.
메일이 들어왔는데 발신자가 크리스티안 지메르만인 겁니다.
제 연주를 칭찬하고 격려하는 그 편지를 읽다가 감격해 눈물이 나왔어요.
우승할 때도 그랬고 저는 좀처럼 울지 않는 사람입니다.”
―스물한 살에 클래식계의 스타로 떠올랐는데 그 또래 아이돌처럼 불안하진 않은지요.
“제가 아이돌 스타 같은 삶을 살고 있지는 않고요. 불안하지 않아요.
제가 받는 스트레스는 그들과는 다른 종류겠지요.
연주 끝나고 나서 ‘왜 이 부분을 더 잘 못했을까’ 후회하곤 해요. 연습을 더 하고 다음 연주 때 보완하죠.
나아진다고 느낄 때 재미가 있어요.
집에서는 잘 되는데 무대에선 안 풀릴 때가 많지만요.”
―집에서 실력이 100이라면 무대에선 80~90밖에 안 나오는 식인가요?
“가끔은 무대에서 200이 나오기도 해요. 올라가 봐야 아는 거죠.
피아노와 홀의 음향, 그날의 관객도 중요해요.
저도 사람인지라 연주 중에 갑자기 휴대전화 벨 소리가 울리면 집중이 깨지거든요.”
―무대에 오른 이상 중간에 삐끗하더라도 연주를 끝낼 책임이 있습니다.
실수할 경우 어떻게 위기를 넘기고 평정심을 되찾는지요.
“악보와 다른 음을 누르는 것은 별로 신경 안 쓰여요.
그런데 몸이 경직된다거나 해서, 음을 다 맞게 쳤는데 템포가 흔들리거나 음악이 안 나올 때가 있어요.
비상 상황이죠. 연주 경험을 쌓아 보니 정신을 다잡는 요령이 조금씩 생기더라고요.”
“‘생각을 너무 많이 하지 말자’입니다.
―식당에서 메뉴 고를 때도 그렇게 합니까.
“아, 그건 다른 문제죠. 뭘 먹을지 정하는 게 훨씬 더 어려워요.”
―조성진이 걸어온 길에 ‘실패’란 단어는 없어 보입니다만 피아노가 미워진 적도 있었나요?
“없어요. 솔직히 실패를 해본 것 같진 않아요.
마음을 쏟아붓고 숙성시키는 음악
무대 위에는 완벽하게 조율된 악기와 연주자가 있기 마련이다. 균형과 조화가 느껴진다.
―조성진의 삶에도 그런 불협화음이 있었는지요.
“음, 인생을 논하기엔 저는 아직 스물네 살이기 때문에. 하하하.
―연주를 더 잘하는 피아니스트를 볼 땐 어떤가요.
“좌절까지는 아니어도 마음이 힘들죠. 그걸 극복해가는 과정도 재밌어요.”
―화가 르네 마그리트를 좋아한다고요?
“고정관념을 깨는 그림을 많이 그렸기 때문이에요.
―동양인 피아니스트에 대한 편견을 느끼는지.
“네. 표현을 덜 하기 때문에 샤이(shy)하다고들 하죠. 기술은 좋지만 음악성이 없다는 말도 있고요.
―사골이나 와인, 된장 같은 음식을 좋아한다고 들었어요.
“이 직업은 여행이 잦고 혼자 있는 시간이 많고 취미 생활을 못 해요. 손을 다치면 안 되고요.
―음악 선생님들이나 멘토들이 공통으로 해준 충고가 ‘기다려라. 서두르지 마라’였다면서요.
“‘기다리며 더 준비하라’는 뜻이었어요.
―연주도 녹음도 없는 한 달이 주어진다면 뭘 할까.
“음, 남극 여행이요.
10년 뒤쯤 도달하고픈 어떤 수준이 있는지 물었다. 그는 허공을 한 번 응시했다.
- 내년 1월 카네기홀에서 연주할 라퍼토리가 홈피에 올라와 있지 않아 알 수는 없지만
- 댓글 (1) 김일용(i****)2018.09.0309:45:04신고
- 오타 수정: 마우리치오 폴리니. 글을 생각나는대로 쓴 후 나중에 읽어보니 오해의 소지가 있다.
- "역시 쇼팽 콩쿠르 우승자"란 말은 타마슈 바샤리가 쇼팽 콩쿠르 우승자란 얘기가 아니라
- 조성진을 염두에 두고 말한 것이고
- 폴리니와 조성진이 어린 나이에 쇼팽 콩쿠르 우승하고 카네기홀에서 독주회를 가지는 공통점을
- 얘기하고자 한 것.
- 타마슈 바샤리는 헝가리 출신의 쇼팽 스페셜리스트. 정말 그의 연주는 대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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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8/31/201808310178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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