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년 대한민국 출범]

[광복절]"민주국가 틀 잡은 1948년… 우리 스스로 그 기억 지워가고 있다"(조선일보)

colorprom 2018. 8. 15. 16:28


민주국가 틀 잡은 1948우리 스스로 그 기억 지워가고 있다

    진행=이선민 선임기자 정리=유석재 기자


    발행일 : 2018.08.15 / 종합 A4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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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정부 수립 70주년' 특별 좌담


    1948815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지 70년을 맞았다.

    대한민국 출범은 우리 역사에서 처음으로 국민이 나라의 주인인 근대 민주국가가 정식으로 세워졌다는

    막중한 의의를 지닌다.


    그러나 그날의 감격은 세월이 흐르면서 점차 잊혔다.

    더구나 대한민국의 건국 시점을 1919년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으로 잡는 문재인 정부

    대한민국 정부 수립 70년을 제대로 기념하는 행사를 마련하지 않았다.


    70년 전 역사적인 기억을 이렇게 지워도 되는 것일까.

    유종호(83) 전 연세대 국문과 교수, 강규형(54) 명지대 방목기초교육대 교수, 김은구(40) 서울대 트루스포럼 대표가 대한민국 출범에 대한 사회적 기억의 형성·변화 과정, 보존·강화 방안을 놓고 이야기를 나눴다.

    ―70년 전 대한민국 출범 당시의 상황을 어떻게 기억하나.

    유종호: 19458·1519506·25의 경험이 너무 강해서

    1948815의 기억은 상대적으로 약한 편이다. 하지만 그해 5·10 총선은 또렷이 기억한다.


    당시 내가 살던 충주에서도 선거운동 열기가 뜨거웠다.

    정부 수립을 앞두고 이승만 대통령이 첫 내각을 발표했을 때 의외의 인물이 많다는 평가를 받았다.

    정부 수립에서 12월 유엔의 승인까지 자연스럽고 당연한 귀결로 받아들였다.

    제헌의회 선거에는 '단독선거·단독정부 반대' 삐라가 붙는 등 사회가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대한민국 정부 수립좌파의 목소리는 잦아들고 대세에 순응하는 분위기로 갔다.


    당시 신문 광고는 남로당 탈당 선언이 많았다.

    언어도 '조선 집' '조선 옷' 하던 것이 '한옥' '한복'으로 변화됐고

    착취·동무·노동 같은 단어는 수탈·친구·근로로 바뀌었다.


    하지만 815정부 수립일이라기보다 광복절로 기억됐다.

    일제(日帝)로부터의 해방이라는 민족주의적 감정이 강하게 남아서 그런 것 아닌가 싶다.

    사건 자체로 봐도 정부 수립보다 해방이나 광복이 더 충격적이었다.

    당시 광복절은 우리 민족이 해방된 날이고 그날 대한민국 정부도 수립됐다는 정도의 인식을 갖고 있었다.

    강규형: '광복(光復)'은 혼란을 일으키는 용어다.


    지금 우리는 광복절을 1945년 8월 15일 기념으로 생각하지만

    제헌의원들은 정부 수립일인 1948815을 광복으로 여겼다.

    그래서 1949815일 독립 1주년 행사를 가졌다.


    그 직후 국회에서 독립기념일광복절로 이름을 바꿨다.

    1948년 8월 15일을 독립기념일(광복절)로 삼은 것이 혼란을 가중했다.

    '해방'과 '독립' 기념일을 일치시키려는 좋은 취지가 뜻밖의 부작용을 낳은 것이다.


    6·25전쟁을 거치면서 정부 기관조차 "광복절은 19458·15를 기리는 것"이라고 말하게 됐다.

    제헌의회 기준으로는 1948년을 광복절의 기점으로 해야 하지만

    이미 너무 많은 사람의 기억 속에 1945년으로 돼 있어 절충이 필요한 상황이다.

    ―역사적 기억은 학교 교육을 통해 후대에 전승된다.

    우리 역사 교과서는 1948년 상황을 어떻게 가르쳐 왔나.

    강규형: 우리가 중·고등학생이던 1970년대 후반~1980년대 초반에는

    역사 시간에 한국 현대사를 배우지 않았다.

    대학 사학과에서도 이 부분을 수업 시간에 제대로 다룬 적이 없다.

    그러다 보니 1948년의 기억이 지워졌다.


    그런 상태에서 1980년대 들어 민중사관을 주장하는 학자들이 한국현대사를 전복시키는 저서를 쏟아냈고

    "대한민국은 단정 수립 세력에 의한 정통성 없는 정부였다"는 다른 기억이 대두했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거듭 정권을 장악하면서 일반 국민의 정서도 점차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이 문제다.

    김은구: 1990년대 초중반 교과서엔 '대한민국 정부 수립'으로 실려 있었다.

    하지만 선생님들은 논란이 많다는 정도만 언급하고 대충 넘어가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전교조식 교육이 체계적으로 진행된 1990년대 후반부터

    수업 시간이나 EBS 강의에서 이승만 대통령을 노골적으로 욕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아졌다.


    전교조 교사에게 교육받은 학생들은

    '대한민국은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나라' '외세에 의해 세워진 나라'라는 부정적 인식을

    고등학교 시절부터 지니게 됐다.


    ―2000년대 들어 대한민국 출범에 관한 기억은 정부에 따라 극심하게 냉·온탕을 오가고 있다.

    너무나 혼란스러워 한 국가 안에서 연속성이 있는지 의문이 들 정도다.

    유종호: 자기 나라의 역사, 그것도 아주 최근 역사에 대해서조차 이렇게 의견이 갈라지면

    역사라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오랫동안 적대국이었던 독일프랑스도 공동의 교과서를 만드는데

    우리는 단일민족 공동체라고 하면서 이러는 건 곤란하다.

    사실을 근거로 한 역사 교과서 하나 만들지 못하면 통일을 어떻게 하겠는가.


    학생들에게 '역사를 정치사로 환원하지 말라'고 말한다.

    정치사는 극소수의 역사에 지나지 않고 보통 사람들이 현실을 어떻게 보느냐가 중요하다.


    역사는 경제사·사회사·문화사 등 다양한 측면이 있는데 지금 정권은 독재냐 민주냐만 갖고 접근한다.


    박정희 정부가 전 국토에 걸쳐 황폐화된 산림을 재녹화한 것은 굉장한 업적이다.

    일터를 마련해서 42만명의 화전민을 산에서 내려오게 한 것은 전 세계에서 한국이 유일하다.


    소설가 밀란 쿤데라는 "사람들이 미래의 지배자가 되려는 유일한 이유는 과거를 변경시키기 위해서다"

    라고 했지만, 20세기 한국의 역사가 치욕의 역사라는 것은 자가당착이다.

    치욕의 역사 속에서 대통령이 된 사람은 그 역시 치욕의 존재이고 부끄러워해야 할 사람 아닌가.

    김은구: 대한민국 건국을 부정하면 대한민국은 친일파가 미국을 등에 업고 세운 부정한 나라이고

    자본주의는 모든 악의 근원이므로 문제를 해결하려면 혁명밖에 없다는 결론으로 귀결된다.


    일부 좌파 대학생 단체는 '유사시에 우리는 북한을 지원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들의 논리는 북한은 적어도 공동 생산 체제는 갖추지 않았느냐,

    그 시스템은 계승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의 뿌리는 대한민국이 잘못된 나라라는 것이다.

    이런 문제를 짚지 않으면 정말 위험한 상황이 되고 말 것이다.

    강규형: 대한민국 출범의 기억을 지우려는 노력은

    1980년대 이후 집요하게 진행돼 왔고 현 정부에서 그 움직임이 가속화되리란 건 충분히 예상됐다.


    남한은 미국의 식민지이고 종속적 국가이며

    북한은 자주적이라는 NL의 논리가 집권층에 자연스럽게 퍼져 있다.


    역사 교과서에서 자유민주주의와 북한의 남침, 대한민국이 한반도의 유일 합법 정부라는 사실을 빼려는 건

    그들이 집요하게 시도해온 것이다.


    그들은 6·25가 자연 발생적 내전이라고 주장해 왔고

    소련과 중국에서 북한의 남침을 보여주는 새로운 자료가 나와도 무시했다.


    자유민주주의를 민주주의로 바꾸면 인민민주주의나 민중민주주의도 수용할 수 있게 된다.

    어떤 국사학자는 "강 교수, 인민민주주의가 뭐가 나빠"라고 말하더라.

    북한식 인민민주주의를 인정하려는 심리가 발동한 것이다.

    ―흔들리고 도전받는 1948년 대한민국 출범의 역사적 기억과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보존하고 강화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강규형: 궁극의 해결책은 북한 체제가 무너지고 통일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 전에 우리도 교육과 문화 운동을 통해 역사적 사실을 하나하나 재구축할 필요가 있다.


    좌파는 우리 현대사의 기억을 전복시키기 위해 오랜 기간 준비하고 집요하게 노력해왔다.

    이제는 그것을 역으로 해야 한다.

    내생적 충격에 더하여 국제정치와 한반도의 거대한 변화, 그에 따른 북한 붕괴 등

    외생적 충격이 더해지면 냉전이 끝날 당시 동유럽처럼 남한 좌파도 급격히 약화될 것이다.

    김은구: 사회주의에 대한 환상 자체를 부수지 않으면 안 된다.

    전향한 주사파의 일부는 잘못된 것은 주체사상이 아니라 수령론이라고 말한다.

    통일 대한민국을 사회주의 기반 국가로 만들려는 흐름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그런 생각을 약화하고 소멸시키려면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역사에 대한 교육을 제대로 해야 한다.

    ▲유종호: 우리 사회는 쏠림 현상이 너무 강하다.

    매 순간 단순하게 판단해 맹신하지 말고

    충분히 생각하고 검토하는 실사구시의 정신을 국민적 차원에서 증대시켜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오늘의 국가적 어려움을 극복하기 힘들다.


    국사학계가 좌편향으로 쏠린 것은 일본 좌파 역사학자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우리 역사학자들도 동구권 붕괴 이후의 사회주의가 어떻게 됐나 같은 것을 더 공부해야 한다.



    [그래픽] 강규형 교수 / 유종호 교수 / 김은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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