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훈 교수, 내일 학술대회 발표… 1949년 8월15일 독립 1주년 기념식
민간에선 '광복'을 '해방'으로 혼동, 역대 정권도 '건국 기억'을 홀대

"대한민국 건국의 기억은 당초 '독립기념일'이었던 8월 15일이 '광복절'로 바뀌면서 혼란스러워졌고,
이승만 정권이 무너진 후 역대 정권이 이를 외면하거나 폄하하면서 약해져갔다."
이영훈〈작은 사진〉 전 서울대 교수가 14일 오후 3시 한국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이승만학당(교장 이영훈)과 대한민국사랑회(회장 김길자) 공동 주최로 열리는
'건국 70주년 기념 학술대회'에서
대한민국 정부 수립부터 오늘까지 건국 기억의 성립과 변질 과정을 추적한다.
1949년 8월 15일 정부는 '대한민국 독립 1주년 기념식'을 거행했다.
이승만 정권은 대한민국 건국의 기억을 간직했다.

하지만 '영광스럽게 회복한다'는 뜻을 지닌 '광복(光復)'은
민간에선 '일제(日帝)로부터의 해방'이라는 의미로 이해됐다.
1950년부터 일부 언론이 광복절의 주기(週期)를 1945년 8월 15일부터 기산하기 시작했다.
6·25전쟁이 끝난 1954년 무렵 광복절의 기년(起年)은 1945년으로 굳어졌다.
4·19혁명으로 이승만 정권이 불명예 퇴진한 뒤 들어선 정권들은
자신의 치적을 강조하기 위해 이승만과 그가 주도한 '건국'을 깎아내렸다.
1960년 8월 '제15주년 광복절' 기념식에서 윤보선 대통령은 이승만의 독재정치를 비난했다.
5·16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군사정부는
제헌헌법의 전문(前文)에 들어있던 '민주독립국가의 재건'이라는 대한민국 성립에 관한 서술을 삭제했다.
'조국 근대화'의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다는 자신감에 넘쳤던 박정희는 대한민국 건국을 중시하지 않았다.
건국에 대한 기억이 희미해져 가는 공백을 감성적·종족적 민족주의가 채우는 한편으로
대한민국의 도덕적 가치를 부정하는 좌파 세력이 강력하게 치고 들어왔다.
민중민족주의 역사관은
한국근현대사의 기본 과제가 반제(反帝)·반봉건(反封建) 민주 혁명이었는데
미군정과 대한민국에 의해 좌절됐다고 주장했다.
우리 근 현대사를
"친일파 세력이 중심이 돼 지배해 왔다"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했다"고 규정한
김대중·노무현 정권이 들어서면서 이런 역사관이 교과서 등을 통해 급속히 퍼져갔다.
이영훈 교수는 "오늘의 대한민국은 시대착오의 좌우합작이 벌인 혼란의 한가운데서 방황하고 있다"며
"1948년의 건국 이념을 올바로 회복·계승하는 것이 유일한 해법"이라고 주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