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 세상]

[짐바브웨]원조 끊기자 화폐 마구 찍어내… 물가상승 한 해 2백만배 (윤서원 교사, 조선일보)

colorprom 2018. 8. 3. 13:37

[숨어 있는 세계사] 원조 끊기자 화폐 마구 찍어내물가상승 한 해 2백만배

입력 : 2018.08.03 03:00



[짐바브웨의 초()인플레이션]

풍부한 자원·친서방정책 기반으로 아프리카 경제성장 이끌었지만
재정난에 화폐 마구 찍어 물가상승… 베네수엘라도 같은 위기 처했어요

얼마 전 국제통화기금(IMF) 관계자가
베네수엘라의 물가상승이 올해 말까지 100%로 치솟을 것이라고 관측했어요.
베네수엘라 정부가 예산 적자를 무마하기 위해 계속 화폐를 발행했기 때문이지요.
베네수엘라는 2014년부터 유가 폭락으로 극심한 경기 침체를 겪고 있습니다.
초인플레이션 위기에 빠진 베네수엘라의 상황에 대해 IMF 서반구 국장인 알레한드로 베르너는
"1923독일이나 2000년대 후반 짐바브웨의 상황과 비슷하다"라고 했어요.
그렇다면 2000년대의 짐바브웨는 얼마나 물가가 올랐기에 베네수엘라의 경제 상황에 비유되는 걸까요?

독립영웅에서 독재자가 된 무가베 대통령

짐바브웨는 아프리카 중남부에 위치한 국가입니다.
작년 11월 쿠데타로 40년가량 집권했던 로버트 무가베 대통령이 퇴진하고
지난달 30일 새로운 대통령을 뽑았어요.
2000년대 짐바브웨의 경제사를 논하려면 무가베 전 대통령의 얘기를 안 할 수 없겠지요?

지난해 11월 짐바브웨 수도 하라레에서 시민들이 무가베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고 있어요.
지난해 11월 짐바브웨 수도 하라레에서 시민들이 무가베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고 있어요.
/게티이미지코리아
짐바브웨는 원래 영국 남아프리카 회사의 지배를 받았어요.
1965년부터는 소수의 백인이 영국 정부로부터 독립해 로데지아 공화국을 세워
짐바브웨 지역을 장악했어요.
로데지아 공화국인구의 95% 이상이 흑인이었기 때문에 흑인들의 무장독립 투쟁이 끊이지 않았지요.
이때 짐바브웨아프리카민족동맹(ZANU·Zimbabwe African National Union)에서
게릴라 투쟁을 이끌었던 인물 중 하나가 무가베입니다.
결국 1980년 총선에서 ZANU 세력이 압승을 거두고 무가베가 초대 수상이 되면서
짐바브웨영국으로부터 독립합니다.
독립투사이자 영웅으로 존경받던 무가베
의원내각제에서 1당 독재의 대통령제로 바꾸면서 독재에 대한 야욕을 드러내요.
바뀐 체제에 따라 무가베는 1988년 대통령으로 선출되고 재선에 거듭 성공하면서 장기 집권에 돌입합니다.

짐바브웨는 광물자원이 풍부하고 토양이 비옥해서 독립 후 장밋빛 경제 발전이 기대되는 국가였어요.
무가베도 국가 발전을 위해 친(親)서방 정책을 펼쳐 미국과 유럽 국가들의 경제적 지원을 이끌어 냈지요.
짐바브웨는 1990년대 중반까지 '아프리카의 곡창지대'로 불리며
아프리카의 다른 국가들에 옥수수, 담배, 면화 등을 수출하면서 발전합니다.
아프리카에서 경제 규모로는 남아공 다음이었고, GDP3였을 정도로 아프리카의 경제성장을 이끌었지요.

◇100조짐바브웨달러까지 등장

그러나 1992년 심각한 가뭄에 시달리면서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로 떨어지고
인플레이션으로 경제가 흔들리기 시작해요.
또 야당의 세력 확장으로 여당의 정치적 입지가 위태로워지자
조급해진 무가베급진적인 토지 개혁을 실시하게 됩니다.
1997년 양극화된 토지 소유 구조를 개선한다는 명목으로 백인 소유 상업 농장의 반 이상을 환수하기로 해요. 급진적이고 독단적인 토지 개혁으로 식량 생산이 급감하고
서방국가들은 공개적으로 무가베 정권을 비난하지요.

짐바브웨에서 발행했던 100조(兆)짐바브웨달러 지폐예요.
짐바브웨에서 발행했던 100()짐바브웨달러 지폐예요. 한 장으로 달걀 몇 개밖에 사지 못했어요.

/게티이미지코리아

더욱이 2000년 들어서는 재향군인, 여당 세력 등 흑인들이 백인 소유 농장을 무단으로 점거하거나
폭력 사태를 일으켜 사회가 더욱 혼란해져요.
콩고민주공화국 내전에 간섭해 병력을 파견하기도 했지요.

무가베 정부가 2000년 총선, 2002년 대선에서 투표용지 바꿔치기 등 비민주적인 부정행위를 일삼자
서방국가들은 경제 원조를 중단합니다.
아울러 IMF 및 세계은행의 자금 지원도 끊기면서 짐바브웨의 경제 위기가 본격화했어요.
짐바브웨의 중앙은행은 재정난을 극복하기 위해 계속 화폐를 찍어냈고
매달 기록을 갈아치우는 인플레이션이 지속되었죠.

2000년대 후반에는 식료품과 연료 가격이 폭등하고 수도와 전기도 거의 끊겼어요.
짐바브웨 국민 한 달 월급으로 하루를 살기도 어려워졌지요.
2008년 짐바브웨 물가상승률 2%에 육박했다고 해요.
당시 짐바브웨에서는 100조 짐바브웨달러를 발행하기도 했는데,
시장에서 이 돈으로 달걀 3개 정도밖에 사지 못했던 때도 있었대요.

생필품 구하려고 불법 체류자 된 국민

하지만 무가베는 계속 짐바브웨의 경제난이 서방국가들의 경제적 제재 때문이라며
유럽 국가들에 책임을 전가했어요.
짐바브웨 국민은 생필품을 구하기 위해 국경으로 넘어 인접 국가에서 불법 체류자로 전락하기도 했지요.
2015년에는 휴지 조각인 짐바브웨의 화폐가 폐지되고 미국 달러로 교체되었습니다.

결국 지난해 11월 군부 쿠데타가 일어나 무가베37년 독재가 막을 내려요.
시민들은 거리로 나와 무가베의 퇴진을 축하했어요.
사상 최악의 인플레이션이었던 짐바브웨2000년대 경제 상황은 현재도 짐바브웨의 경제를 옥죄고 있어요.

짐바브웨처럼 한때 중남미의 부유국이었던 베네수엘라의 인플레이션도
정부의 실정과 부정부패로 야기됐어요.
전문가들은 베네수엘라의 인플레이션도 사상 최악의 인플레이션 중 하나로 기록될 것이라 예상하고 있습니다.
 
베네수엘라 정부는 오는 4일 베네수엘라 화폐인 볼리바르화를 1000대1로 액면 절하할 계획이에요.
1억원이 10만원이 되는 거죠.
베네수엘라가 사상 최악의 경제 위기를 어떻게 벗어날지 전 세계가 지켜보고 있습니다.


[독일의 초인플레이션]

초인플레이션은 전쟁이나 혁명 등 사회가 크게 혼란한 상황 혹은 정부가 재정을 방만하게 운용해
통화량을 대규모로 공급할 때 일어나요.
독일은 1차 세계대전 패전 직후인 막대한 전쟁 배상금을 물기 위해 정부가 화폐 발행을 남발했어요.
1922년 5월 1마르크였던 신문 한 부 가격이 1년 4개월 만에 1000마르크로 뛰었어요.
이어 신문 값이 100만마르크로 다시 1000배가 뛰는 데엔 한 달밖에 걸리지 않았죠.
당시 화폐 가치가 곤두박질치면서 액면가 100조(兆)마르크 지폐가 발행되기도 했어요.


윤서원 이대부고 역사 교사 기획·구성=유소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