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케인 장례식의 '통합' 메시지
오바마 "미국의 안보와 힘은 법의 지배와 인권에서 나온다"
2008년 대선에서 매케인과 경쟁했던 오바마 전 대통령은
뉴욕타임스(NYT)는
이날 장례식에는 조사를 한 두 전직 대통령 외에도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부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 앨 고어 전 부통령, 딕 체니 전 부통령 등 정치권과 각계의 인사들이 참석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9/03/201809030007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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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속의 잣대로 보면, 매케인은 실패한 인생일 수도 있었다.
베트남 전쟁에서는 포로로 붙잡혔고, 첫 결혼은 이혼으로 끝났으며,
대통령 선거에서는 두 번이나 쓴잔을 마셨다. 그런데도 미국의 영웅으로 불린다. 무엇 때문일까.
핵심은 '외적 성공'이 아니라 '내적 성장'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그는 미국 태평양사령관의 아들이었다.
후방 부대 근무로 빠질 수 있었지만 숨지 않았다.
해군 전투기 조종사로 참전해 두 팔과 다리 하나가 부러진 채 포로가 됐다.
베트남은 전략적으로 그를 석방하겠다고 했지만,
자신보다 앞서 붙잡힌 포로들을 풀어줘야 나가겠다며 고문(拷問)과 학대를 버텼다.
5년 6개월 동안이었다.
골수 공화당원이었지만 이라크전에서 두 다리를 잃은 여성 민주당원 더크워스의 상원의원 당선을
진심으로 축하했고, 가정에서는 장애가 있는 아이를 입양해 키운 아빠였다.
요약하면 이런 거다.
사람은 고문의 대상이 되어선 안 되고, 장교는 부하를 챙겨야 하며,
인디언이든 무슬림이든 나라를 위해 복무한 군인은 존중을 받아야 한다는 것.
필자는 본지가 매주 토요일에 발행하는 Why? 섹션을 책임진다.
이 지면의 커버 스토리는 늘 사람 인터뷰인데, 이 책임을 맡으며 욕심 낸 대목이 있다.
사람의 외적 성공 못지않게 내적 성장을 강조하고 싶다는 것이다.
최근 호의 주인공은 한국 최초의 '쇼팽 콩쿠르' 우승자 조성진(24)이었다.
이 홍안(紅顔)의 청년에게 인생에서 가장 기뻤을 때를 취재 기자가 물었다.
조성진의 대답은 "발표 순간이 아니라,
그 전전날 폴란드 피아니스트 지메르만의 이메일을 받았을 때"라는 것이었다.
지메르만은 소년 성진이 열 살 때 처음 산 클래식 앨범의 주인공이다.
조성진보다 정확히 40년 앞선 1975년 열린 쇼팽 콩쿠르의 우승자다.
사흘간 이어진 콩쿠르 결선에서 첫날 첫 연주자였던 조성진의 연주를 칭찬하고 격려하는 편지.
우승 발표 순간에도 나오지 않던 눈물이, 그때 흘렀다고 했다.
지난달 커버 스토리 인물 중에는 축산업계 대부 우용식(77)씨가 있다.
축협 회장 대행까지 오른 화려한 인생이지만, 가장 큰 기쁨을 느낀 순간은 따로 있다고 했다.
98세 노모(老母)에게 설날을 앞두고 목돈을 드릴 때다.
50명에 이르는 손주들에게 나눠 줄 세뱃돈을 그가 책임진다.
인생의 성공 비결을 기자가 물었을 때, 우씨는 '어머니 예찬'만 30분 동안 했다고 한다.
그의 자식과 조카 50여 명도 이 장면을 기억하며 남은 삶을 살게 될 것이다.
다시 매케인으로 돌아간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워싱턴DC에서 열린 그의 추모 예배 소식이 들어오고 있다.
하늘에서도 그는 행복할까.
지금 우리 사회는 어떤 불균형이 수위를 넘었다고 생각한다.
성공만을 강조하다 보니 인격과 품격의 성장은 무시하기 일쑤이다.
'어떻게' 일할지는 알지만, '왜' 일하는지는 자주 잊는다.
한쪽을 폄하하려는 게 아니라, 문제는 균형이다.
이력서에 쓸 '스펙'뿐만 아니라,
삶의 마지막 날 되새기는 조문(弔文)도 생각하는 삶 말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9/02/201809020213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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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10월 하노이 폭격에 나선 미 해군 조종사 존 매케인이 몰던 비행기가 미사일에 맞아 추락했다.
두 팔과 무릎이 부서진 매케인은 수용소에 갇혔다.
망가진 무릎이 축구공만큼 부어올랐지만 치료는커녕 고문과 구타가 이어졌다.
두 차례나 자살을 시도할 만큼 고통스러운 나날이었다.
이듬해 그의 아버지가 미 태평양사령관에 취임하자 북베트남은 선전 차원에서 매케인을 석방하려 했다. 매케인은 "다른 포로보다 먼저 나갈 수 없다"며 거절했다.
5년 반을 견딘 매케인은 1973년 풀려났다.
두 팔을 제대로 쓸 수 없을 만큼 장애가 남았다.
▶'전쟁 영웅, 상원의원, 대통령 후보.'
뉴욕타임스가 그제 세상을 뜬 존 매케인 부고(訃告) 기사를 내면서 이런 순서로 이력을 썼다.
매케인은 1981년 대령으로 예편한 후 정치에 뛰어들었다.
1986년 당선된 이래 30년 넘게 공화당 상원의원을 지냈다.
아버지·할아버지에 비해 빛나는 경력은 아니지만, 미국인들은 그를 '전쟁 영웅'으로 기억한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지킨 군인이었기 때문이다.
▶매케인은 비방이 일상적인 선거전에서도 품위를 지켰다.
2008년 대선에서 오바마 민주당 후보와 맞붙었을 때였다.
한 지지자가 "오바마가 아랍 출신이라고 들었다. 그가 대통령이 될까 두렵다"고 하자 매케인은 정색했다.
"오바마는 품위 있는 사람이다. 당신이 걱정할 필요 없다."
그는 지지자 잘못을 지적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다.
워싱턴포스트는 '매케인의 가장 용기 있는 정치적 순간 5 가지'에 이 장면을 넣었다.
▶"요즘 정치에는 겸손이 부족하다. 이러다가 우리 사회는 갈가리 찢길 것이다."
석 달 전 출간한 회고록 '쉼 없는 파도'엔 이런 내용이 나온다.
매케인은 품격이 뭔지를 아는 정치인이었다.
당(黨)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이 옳다고 믿는 신념대로 행동했다.
2013년 이민제도 개혁을 둘러싸고 공화·민주 상원의원들이 의기투합한 '8인의 갱(Gang of Eight)' 멤버였다. 국민 통합을 위해 당파는 뛰어넘어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미 상원 군사위원장을 지낸 매케인은 한· 미 동맹을 소중히 여긴 친한파였다.
작년 3월 본지 인터뷰에서도 사드 배치에 따른 중국 보복에 맞서 미국이 그냥 있어서는 안 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대선을 앞둔 한국에 대해 "어떤 정부가 들어서든 한·미는 긴밀히 협조해야 한다"고도 했다.
북핵 폐기를 향해 한·미 공조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요즘,
매케인 같은 품격 있는 정치인을 떠나보내는 게 아쉽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8/26/2018082602130.html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8/26/2018082602130.html
지난해 7월 뇌종양 판정을 받고 투병해온 존 매케인(81·공화·사진) 미 상원의원이
25일(현지 시각) 애리조나주(州) 히든밸리의 자택에서 별세했다.
가족들이 연명 치료를 중단하겠다고 발표한 지 하루 만이다.
매케인 의원실은 이날 "매케인이 부인 신디 등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숨을 거뒀다"고 밝혔다.
'정의로운 보수주의'의 표상으로 불린 그의 죽음에 미 정치권에선 "진정한 애국자를 잃었다"며
여야를 떠나 애도의 메시지가 이어졌다.
매케인은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모두 해군 4성 장군 출신인 무관(武官) 집안 출신이다.
그도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전투기 조종사로 베트남전에 참전했다가 1967년 격추돼
5년 반 동안 포로생활을 했다.
당시 그의 아버지는 태평양지구 총사령관으로 하노이 폭격을 주도했었다.
이에 북베트남이 그를 선전도구로 쓰기 위해 조기 석방을 제안했지만 매케인은
"먼저 잡힌 사람이 먼저 나가야 한다"며 거절했다.
이후 계속된 고문으로 머리는 하얗게 변했고, 팔을 제대로 들 수 없는 후유증에 시달리게 됐다.
이런 스토리가 알려지면서 '전쟁 영웅'으로 미국에 돌아온 매케인은 1982년 하원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한 뒤
1987년 상원에 입성, 내리 6선을 지냈다.
2008년 대선에 출마했지만 버락 오바마 당시 민주당 후보에게 패했다.
매케인은 정치권에 입문한 뒤 줄곧 '매버릭(maverick·이단아)'으로 불렸다.
때론 당론과 다른 선택을 하고, 때론 지역구 유권자들과 맞서면서도 소신을 지켰기 때문이다.
정파의 이익보다 미국의 가치와 애국심을 강조한 행보로 인해
매케인은 여야를 가리지 않고 존경받는 정치인이다.
2008년 대선 때 한 여성이 "나는 오바마를 믿지 못한다. 오바마는 아랍인이다"라고 하자,
매케인은 마이크를 빼앗으며 "아니다. 오바마는 훌륭한 시민"이라고 했다.
지난해 7월 미 상원의 '오바마케어' 폐기 표결 때는
뇌종양 수술 직후에도 워싱턴DC 의사당으로 날아가 표결에 참여했다.
그는 "오바마케어 폐기의 대안이 없다"며 반대표를 던져 트럼프 대통령의 1호 공약을 좌초시켜 버렸다.
또 매케인은 2014년 9·11 테러 이후 중앙정보국(CIA)이 조사 과정에서 광범위하게 자행한 고문 의혹을 파헤친 2014년 상원 보고서를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화당 의원들은 "왜 과거 일을 들추나"라고 했지만,
매케인은 "진실은 때로는 삼키기 어려운 약과도 같다. 저런 잘못을 밝히는 게 미국의 가치"라고 했다.
그는 실수를 고칠 줄 아는 사람이었다.
매케인은 1989년 미 상원을 뒤흔든 '찰스 키팅' 스캔들에 연루됐다.
금융사기를 저지른 '링컨 저축·대출 조합'의 사장인 찰스 키팅이
정부의 조사를 막기 위해 거액의 정치자금을 뿌렸고
매케인이 돈을 받은 5명의 상원의원 중 한 명이었던 것이다.
의회 조사 결과 대가성이 없어 문제가 없다고 나왔다.
하지만 그는 이 경험 때문에 2002년 기업과 노동조합 등의 영향력을 차단하기 위한 정치자금 규제법인
'매케인·파인골드 법안'을 민주당 소속 러셀 파인골드 상원의원과 함께 통과시켰다.
그는 지난 5월 자서전을 펴내면서 "오늘날 정치의 문제는 겸손의 결핍이다.
겸손이 (대화와 타협을 가능케 해) 더 생산적인 정치를 만든다"고 했다.
그는 "나는 (정치 시작 후) 여섯 명의 대통령과 일하면서 그들 모두에게 반대하고 싸워 봤다"며
"그러나 미국인으로서 서로 가져야 할 존중을 약화시켜선 안 된다"고 했다.
매케인 의원은 공식 석상에서 한국을 부를 때 '남한(South Korea)'이 아닌
민주주의를 꽃피운 나라 라는 뜻에서 '대한민국(Republic of Korea)'이라고 불러온
상원의 대표적 지한파였다.
그의 별세에 애도 물결이 일었다.
매케인과 부딪쳤던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트위터에
"매케인 의원의 가족에게 가장 깊은 연민과 존경을 전한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26일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매케인 의원은 한·미 동맹의 굳건한 지지자였다"며
애도를 표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8/27/2018082700293.html
해군 출신인 매케인은 29세 때 베트남전에 참전했다가 전쟁 중 공산당에 포로로 붙잡혀
5년 반 동안 고문을 당했다.
6·25 때 인천상륙작전에 참여했던 해군 제독 아버지(잭 매케인)가 미 태평양 사령관으로 부임하자,
부담을 느낀 베트콩이 그에게 조기 석방을 제안했다.
그러나 매케인은 "먼저 들어온 사람이
먼저 나간다"는 군 수칙을 내세워 동료부터 풀려나게 했다.
1981년 대령으로 퇴임한 그는 이듬해 정계에 입문해 애리조나주 하원의원(재선)을 지냈고,
1986년 상원의원에 당선돼 내리 연임했다.
2008년 미 대선에 공화당 후보로 나섰으나 버락 오바마 민주당 후보에게 패했다.
상원 군사위원장인 매케인은 대북 강경파로 한반도 문제에도 큰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8/26/2018082600299.html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8/26/2018082600299.html
발행일 : 2018.05.04 / 여론/독자 A34 면
2008년 미국 대선은 한국 선거 못지않은 치열한 비방전이었다.
공화·민주 두 선거 캠프 사이엔
'오바마는 미국 파괴 사회주의자' '매케인은 사리 분별 못 하는 늙은이'라는 말이 예사로 오갔다.
승리한 오바마가 2주 만에 매케인을 초대했다.
리먼브러더스 파산으로 촉발된 위기 극복을 위해 화합하자고 했다.
매케인은 흔쾌히 응했다. "당파적 이해를 타파해 정부 신뢰를 회복한다"는 두 사람 공동성명이 나왔다.
오바마는 취임식 전날엔 매케인을 위한 파티를 열고 "평생 미국을 위해 봉사한 애국자"라고 칭송했다.
▶매케인 아닌 다른 정치인이었다면
승자(勝者)의 너그러움을 과시하는 그런 이벤트에는 '들러리 서기 싫다'고 했을 것이다.
매케인은 달랐다. 무엇이 국민 통합과 국익을 위한 길이냐는 기준을 갖고 판단하고 행동했다.
그는 정치 인생에서 사생활 관련 등 수많은 음해에 시달렸지만 상대를 음해한 적은 없었다.
독특한 개성 탓에 '이단아(maverick)'로 불렸지만 그의 인격을 폄훼하는 사람은 없었다.
▶2009년 오바마 대통령의 상·하원 합동 연설 도중 "당신, 거짓말이야(You lie!)"라는 고함이 터져 나왔다.
한 공화당 의원이 오바마의 건강보험 개혁안을 두고 그렇게 소리질렀다.
일부 의원은 그 상황을 즐기는 듯했다.
그러자 매케인이 나서서 "무례하고 적절치 않은 행동이었다"고 비판했다.
매케인의 발언이 있자 해당 의원은 사과 성명을 내야 했다.
▶매케인은 베트남전 포로 생활 5년을 버텼다. 두 팔과 다리가 부러져 혹독한 고통을 겪었다.
그가 미군 고위급 장성의 아들이란 사실을 안 월맹이 석방하려 했지만
매케인은 '다른 포로보다 먼저 석방될 수 없다'고 거부했다.
2015년 당시 트럼프 후보가 "매케인이 포로지 무슨 전쟁 영웅이냐"고 비꼬았다.
매케인이 자신을 비판한 데 대한 응수였다.
그러자 현직 국무장관이던 존 케리가 특별 성명을 발표했다.
"월맹은 매케인의 뼈를 부러뜨렸지만 그의 정신은 꺾지 못했다."
많은 이가 공감했던 것은 이것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매케인이 말기 암 투병 중이다.
그가 이달 중 회고록 '쉼 없는 파도(The Restless Wave)'를 출간할 예정이다.
그 책에서 정치인의 덕목으로 '겸손(humility)'을 강조했다고 한다.
보수 정치인으로서 누구보다 정치인의 품격(品格)을 지킨 매케인의 언행이 새삼 무겁게 다가온다.
입력 : 2018.05.03 03:01
그는 "나는 (6선 의원으로서)여섯 명의 대통령과 일하면서 그들 모두에 반대하고 싸워봤다"면서
"그러나 정치인으로서, 평범한 미국인으로서 서로가 가져야 할 존중을 약화시켜선 안 된다"고 했다.
또 "정치 성향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는 관점을 바꿔야 한다.
공화당원이든 민주당원이든 좋은 부모, 충성스러운 미국인, 고결한 인간일 수 있다"고 했다.
매케인은 미국 정치가 '이념의 게토(ghetto·집단 거주지)'를 만들어놓고
그 안에 은둔하는 양극화가 심하다고 우려했다.
"자신만의 뉴스 소스를 갖고,
자신에게 동의하는 사람들과만 생각을 나누며, 그렇지 않으면 상대도 하지 않는다.
자신의 신념을 강화하는 '팩트(fact)'만을 취사선택하고
그에 배치되는 어떤 경험적 증거도 '가짜(fake)'로 치부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서는
"터프하게 보이는 것, 또는 리얼리티 쇼처럼 터프함을 모방하는 행위를
다른 어떤 가치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다"고 했다.
그는 "극우·극좌의 정치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목소리를 내라"면서
"선거에서 누가 '워싱턴에 백마를 타고 가서 세금을 털어가는 깡패들을 혼내주고,
그들과는 함께 일하지도 타협하지도 않겠다'고 하면, 그 후보만 안 뽑으면 된다"고 했다.
뭐든 다 해줄 듯이 터무니없는 공약을 내걸고,
상대방 정파는 무조건 비난하는 후보는 뽑지 말아야 한다는 취지다.
이런 정치 비평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매케인 의원의 말이라면 무게가 다르다.
그의 인생 자체가 '미국의 살아 있는 양심'이자 '정의로운 보수주의'의 표상이기 때문이다.
해군 출신인 매케인은 29세 때 베트남전에 참전했다가 공산당에 포로로 붙잡혀 5년 반 동안 고문을 당했다. 한국전 때 인천상륙작전에 참여했던 해군 제독 아버지(잭 매케인)가 미 태평양 사령관으로 부임하자,
부담을 느낀 베트콩이 그에게 조기 석방을 제안했다.
그러나 매케인은 "먼저 들어온 사람이 먼저 나간다"는 군 수칙을 내세워 동료부터 풀려나게 했다.
이때의 경험이 매케인의 이후 정치 인생을 좌우하게 된다.
애리조나주 연방 하원의원을 거쳐 내리 6선 상원의원을 하는 동안
그는 자신과 정파의 이익보다 인권과 정의, 자유민주주의를 내세웠다.
시리아 내전이 한창이던 2013년 수행원도 없이 현지에 들어가 실태를 조사한 뒤,
오바마 정부에 시리아 반군 지원을 촉구했다.
최근 지나 해스펠 중앙정보국(CIA) 국장 지명자의 알카에다 포로 물고문 전력이 논란이 되자
공화당 소속임에도 인준을 반대했다.
매케인은 회고록에서
"이번이 나의 마지막 임기다. 이젠 (정치적) 결과에 신경 쓰지 않고 속내를 말할 수 있다"고 했지만,
평생 인기를 따지지 않고 원칙을 지켰다.
그는 2008년 대선에 출마했을 때
민주당 오바마 후보를 "아랍인"이라고 욕하는 공화당의 백인 지지자에게 "그건 아니죠"라고 훈계했다.
같은 진영에 쓴소리를 서슴지 않는 그를 트럼프 대통령은
"베트남 같은 데서 붙잡히기나 하는 주제에"라고 조롱했다.
뉴욕타임스는 "어쩌면 매케인의 미국 민주주의에 대한 가장 큰 봉사는
베트남 포로로 고생할 때가 아니라, 상원의원으로서 보수 진영에 몸담고 있는 지금일 수도 있다"고 했다.
[존 매케인 상원의원은 누구]
1936년 파나마생
1954년 해군 제독인 조부·부친을 따라 해군사관학교 진학
1965년 베트남전 참전했다 5년 반 포로 생활
1982년~ 애리조나주에서 연방 하원의원 재선
1986년~ 연방 상원의원 6선, 상원 군사위원장
2005년 포로 고문을 금지한 '매케인 정치범 수정법' 통과
2000년 공화당 대선 경선, 조지 W 부시에게 패배
2008년 공화당 대선 후보, 버락 오바마에게 패배
2017년 악성 뇌종양 발병, 투병 중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5/03/201805030022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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