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

2[오현 스님](조선일보,중앙일보)

colorprom 2018. 5. 28. 13:58


2[만물상] 영원한 수행자 오현 스님

조선일보
                             


입력 2018.05.28 03:16


'2005년 이후 세계 젊은이들의 가슴을 뛰게 한 말이 뭔지 아는 사람?'

설악산 신흥사 조실(祖室) 무산(霧山) 스님이 퀴즈를 냈다.
동안거(冬安居)를 끝낸 선승(禪僧)들과 함께한 법회 자리였다. 상금까지 내걸었다.
정답은 '끊임없이 탐구하고, 끊임없이 어리석으라'(Stay hungry, stay foolish).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가 스탠퍼드대 졸업식에서 한 말이었다.

무산 스님은 한 시나리오 작가의 아카데미 수상 소감까지 보태
'늘 진리에 배고파하라. 이상해도 괜찮다'고 마무리했다. 요즘 눈높이에 맞춘 법문이었다.

무산 스님은 2014년부터 매년 여름·겨울 석 달씩 하안거·동안거에 들어갔다.
여든 넘은 데다 절집 최고 어른인 조실이 독방에 갇혀 하루 한 끼만 먹으며 수행하는 건
불교계에서도 이례적이다.

2015년 8월 하안거 해제 법문도 파격이었다.
'1000년 전 중국 화두 중독자가 되지 말라.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배우라.'

프란치스코 교황은 전해 성탄절 직전
'사제들이 하느님과 만난다는 것을 잊은 채 욕망에 사로잡혀 주위에 담을 쌓고 있다'며
'영적(靈的) 치매에 걸린 사제'들을 경고했다.

당대 이슈와 씨름하는 교황을 배워야 한다고 직격탄을 날린 것이다. 


[만물상] 영원한 수행자 오현 스님


▶그제 입적(入寂)한 무산 스님은 신흥사 주지, 회주(會主)를 거치면서
절집 행정을 맡은 사판승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선(禪)의 세계를 문학으로 풀어낸 시인으로도 이름났다.
그때 이름이 더 널리 알려진 속명 '오현'이다.
정지용문학상과 공초문학상을 받았고 그의 시를 연구한 박사학위 논문만 여럿 나왔다.

무산 스님은 선배 시인인 만해 한용운평화, 생명존중 사상을 알리는 일에도 앞장섰다.

만해대상만해축전이 그의 주도로 시작됐다.


많은 사람이 찾아와 그의 넉넉한 품에서 위로를 얻었다. 문인들의 후원자이기도 했다.

강원도 인제에 만해마을을 설립한 뒤 집필실을 무료로 내주고 가난한 작가들을 남몰래 도왔다.

▶스님은 '낙승'(落僧)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다. '실패한 중, 떨 어진 중'이란 뜻이다.

신달자 시인은

'설악산 정상에서 몸을 날려 조각조각이 난 그 정신이… 부실한 인간들의 틈을 메워주었습니다'라며

'낙승'이 아니라 '비승'(飛僧)이라고 했다.


스님이 마지막 남긴 시(詩)는 이렇다.


'천방지축 기고만장/허장성세로 살다 보니/온몸에 털이 나고/이마에 뿔이 돋는구나/억!'


종교인의 위선과 자만을 경계하는 일갈(一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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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5/27/2018052702676.html


'강원도 맹주' 오현 스님 입적

"시조는 흘러간 유행가 아니라 한국인의 맥박"

                                        

 
대한불교 조계종에서 ‘강원도의 맹주’로 불리던 설악산 신흥사 조실 설악무산 오현 스님
26일 오후 5시 11분 강원도 속초의 신흥사에서 입적했다. 승납 60년, 세수 87세.
 
만해 한용운의 시맥을 이어 선시조를 개척했다는 문단의 평가를 받는 오현스님.[사진 조계종 신흥사]

만해 한용운의 시맥을 이어 선시조를 개척했다는 문단의 평가를 받는 오현스님.[사진 조계종 신흥사]

 
고인은 1932년 경남 밀양에서 태어나 7살에 입산, 59년 성준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불교신문 주필과 중앙종회의원, 원로의원 등을 역임했다.
최근까지도 신흥사 조실로서 조계종 종립 기본선원 조실을 맡으며 후학 양성에 매진했다.
또한 68년 ‘시조문학’ 시조부문에 등단한 시조시인이기도 하다.
 
불교계에서 오현 스님은 ‘걸림 없는 선사’로 통했다.
고인은 입적을 앞두고 열반송도 남겼다.
“천방지축 기고만장, 허장성세로 살다보니, 온 몸에 털이 나고, 이마에 뿔이 돋는구나. 억!’.

자신의 생애를 ‘이마에 돋는 뿔’에 비유했다.
물 위에 쓰는 글씨처럼 꿈 같고, 그림자 같은 삶의 속성과 그 이면의 깨달음을 노래한 게송이다.    
 
말년에는 백담사 무문관에 들어가 1년에 두 차례, 석 달씩 몸소 수행하기도 했다.
일단 무문관에 들어가면 방문 출입은 금지되고, 하루 한 끼 식사만 허용된다.
그렇게 무문관에서 나올 때면 번득이는 법문을 쏟아내기도 했다.  
 
오현 스님은 열반송에서 '이마에 뿔이 돋느다'고 노래했다. 꿈같고, 환같고, 그림자 같은 세계와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삶, 그 속성에 대한 깨달음의 일갈이다. [중앙포토]

오현 스님은 열반송에서 '이마에 뿔이 돋느다'고 노래했다.

꿈같고, 환같고, 그림자 같은 세계와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삶, 그 속성에 대한 깨달음의 일갈이다. [중앙포토]

    
오현 스님의 시조 사랑은 각별했다.
정지용문학상을 수상한 고인은 만해 한용운의 시맥(詩脈)을 이었다는 평가도 듣는다.
오현 스님은 백담사 인근 마을에 만해마을을 조성해 문인들의 창작 공간으로도 쓰게 했다.
오현 스님은 생전에
“사람들은 시조가 진부하다고 말한다. 그런데 시조는 흘러간 유행가가 아니라 한국인의 맥박”이라고
일갈하기도 했다.  
 
이근배 원로 시조시인은
"'님의 침묵'은 만해 한용운백담사에서 쓴 시다.
오현 스님은 만해축전만해상을 제정하는 등 문학계와 시조 중흥에도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알게 모르게 지원한 문인들 창작기금도 많다.
오현 스님 개인이 문학재단 역할을 할 정도였다"고 말했다.

홍성란 시조시인은
"오현 스님은 시인들을 향해 '네가 한국사람이면 시조를 쓰라.
외국에서 한국시 얘기할 때 자유시 운운하면 다들 매력 없다고 한다.
그런데 시조를 말하면 전부 눈이 동그래지고 기립박수를 친다'고 강조하셨다.
한국 시단에 시조를 도외시하는 풍조가 있었는데, 큰스님으로 인해 시조상이 생기고 시조가 활성화했다.
이제 현대시 쓰던 시인들이 시조 쪽으로 많이 오고 있다"며 울먹였다.   
 
빈소는 신흥사에 마련됐으며, 조계종 원로회의장으로 엄수된다.
영결식과 다비식은 30일 오전 10시 신흥사에서 거행될 예정이다.  
 
신준봉·백성호 기자 vangogh@joongang.co.kr


[출처: 중앙일보] '강원도 맹주' 오현 스님 입적 "시조는 흘러간 유행가 아니라 한국인의 맥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