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

어버이날 문득 (박지원, 조선일보)

colorprom 2018. 5. 9. 14:32



[일사일언] 어버이날 문득

  • 박지원·'아이돌을 인문하다' 저자


입력 : 2018.05.09 03:01

박지원·'아이돌을 인문하다' 저자
박지원·'아이돌을 인문하다' 저자

어버이날을 앞둔 연휴, 여느 자식들과 다름 없이 미뤘던 효도를 부랴부랴 챙겼다.
부모님 댁을 찾아 용돈 봉투를 쥐여 드렸고, 두 분을 모시고 집 앞 식당에서 외식도 했다.
식당은 대목이었다.
내 어머니와 비슷한 연배의 중년 아주머니가 홀에서 바쁘게 그릇을 쓸어 담는 모습에 마음이 조금 아려왔다.

지난 4월 우리 집안엔 슬픔이 가득했다.
큰아버지가 암으로 투병한 지 몇 달 만에 돌아가셨고, 오래도록 병상에 누워 계시던 이모부도 끝내 별세했다. 친지들을 아끼던 아버지가 유독 믿고 따르던 분들이었다.
아버지의 심경을 정확히 헤아릴 순 없었지만, 두 상(喪)을 치른 그의 모습이 조금은 울적해 보였다.
그래서 없는 살림에 약간은 무리해 봉투를 더 두툼하게 만들었다.

부모 자식 관계는 늘 어렵고도 힘겹다.
서로를 애틋하게 생각하는 마음이야 잘 알지만, 막상 얼마간 부대끼고 나면 나 역시 금방 파김치가 되곤 한다. 이 또한 대한민국의 여느 자식들과 다르지 않으리라.
무언가 새로운 걸로 잔소리를 듣거나 짜증을 부리는 것도 아니다.
수십년간 싸우고 부딪쳤던 꼭 그대로 싸우고 부딪친다. 그리고 헤어진 뒤 후회한다.
그들의 늙은 모습에 또 혼자 서글퍼진다. 영원한 반복.

칼럼 관련 일러스트

"그대의 아이는 그대의 아이가 아니다. 그들은 그대를 거쳐서 왔을 뿐 그대로부터 온 것이 아니다."
칼릴 지브란은 '예언자'에서 자식은 결코 부모의 소유가 될 수 없음을 엄정하게 노래했다.
부모님께 인사드린 뒤 나는 파김치가 된 채 집으로 돌아와서
오즈 야스지로의 1959년작 영화 '부초(浮草)'를 틀었다.
우리는 모두 서로에 대한 애정을 묻어둔 채 저마다의 삶을 살아나가야 하는 외로운 존재인 것을….

식당의 그 중년 아주머니께 많이 힘들진 않으냐고 여쭈었다.
"이따 나도 자식 손주들이랑 저녁 약속이 있다"며 그녀가 싱긋 웃었다.
아, 부초는 부초지만 인간사의 드라마는 이렇게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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