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우성이 나랑 많이 비슷한 것 같은데…." 내가 이야기를 채 꺼내기도 전에 아내는 발끈했다.
"세상에나! 아침부터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야! 감우성이 얼마나 따뜻하고 부드러운데….
택도 없는 소리 하지 말고 당뇨약이나 까먹지 말고 잘 챙겨 드셔. 나 지금 바빠!"
가당치도 않다는 듯 아내는 바로 전화를 끊었다.
젠장, 나는 감우성이 연기하는 주인공의 성격 따윈 전혀 관심 없다.
내가 비슷하다고 한 건 주인공의 섬세한 취향이었다. 요즘 연속극 '키스부터 할까요?' 이야기다.
혼자 지내면서 생산적이려면 절대 TV를 봐선 안 된다.
혼자 지내면서 생산적이려면 절대 TV를 봐선 안 된다.
특히 연속극이나 시사프로그램은 쥐약이다. 불필요한 감정 소모가 너무 많다.
그런데 우연히 감우성의 서재가 나오는 연속극 장면을 '짤방'으로 봤다. 취향이 나와 사뭇 비슷했다.
방송사 홈페이지에 들어가 '다시 보기'로 쭉 봤다.
촌스러운 허세가 자주 등장했지만 그의 서재와 사무실에는 내가 좋아하는 소품들이 많았다.
만년필, 스케치 노트, 펜으로 쓰는 태블릿 등등.
대충 그림을 그리고 그 옆에 하이쿠 비슷한 짧은 글 써넣는 '혼자 놀기'는 나와 아주 비슷했다.
아, 개 끌고 다니는 것도 같다.
내 개는 '셰틀랜드 시프도그'다. 가슴 쪽 흰털이 무지하게 예쁜 개다.
분당 집 근처 공원에 끌고 나가면 젊은 처자들이 일사불란하게 '어머나!' 하며 말을 걸어온다.
난 감우성식 그윽한 눈빛으로, 그러나 아주 무심한 척 '만져도 된다'고 한다.
그러나 이곳 여수 바닷가 내 화실 근처에 젊은 처자는 없다.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굴 캐는 할머니들만 수시로 오가며 "무신 놈의 개가 이리 예쁘냐?"고 한다.
'쉽독(시프도그)'이라고 하면, "뭔 개 이름이 그리 망측하냐?"고 한다.
연속극 주인공의 취향에 내가 주목한 이유는 '좋은 것'에 대한 욕심 때문이다.
연속극 주인공의 취향에 내가 주목한 이유는 '좋은 것'에 대한 욕심 때문이다.
'좋은 삶'을 사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좋아하는 것을 많이 하고, 싫어하는 것을 줄이면 된다.
제발 '좋은 것'과 '비싼 것'을 혼동하지 말자!
자신의 '좋은 것'이 명확하지 않으니 '비싼 것'만 찾는 거다.
요즘 여수의 내 삶에서 가장 '좋은 것'은 '삶은 계란'이다.
'삶은 계란'을 아침에 아주 맛있게 먹는 것은 내게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즐거움이다.
유학하며 독일인들에게 배운 '좋은 삶'을 위한 기술 중의 하나가 바로 이 '계란 맛있게 삶기'다.
독일인들의 '삶은 계란' 사랑은 특별하다. 중간의 노른자가 아주 약간만 익어야 한다.
여행지 숙박업소의 서비스 수준은 아침 식사에 내놓는 '삶은 계란'의 익힌 정도로 평가된다.
완전히 삶은 계란이 아니기 때문에 계란 받침대가 따로 있어야 한다.
세워진 계란을 나이프로 툭 쳐서 잘라내고 티스푼으로 소금을 뿌려가며 파먹는다.
덜 익은 노른자와 잘 익은 흰자를 적당히 섞어 먹어야 고소하다.
계란 윗부분을 자를 때는 껍데기가 부스러지지 않도록 정확히 5분의 2 부분을 단칼에 잘 잘라야 한다.
어느 정도 삶아야 좋은 거냐고 물으면 대답하기 참 곤란하다.
어느 정도 삶아야 좋은 거냐고 물으면 대답하기 참 곤란하다.
그러나 맘에 들지 않는 '삶은 계란'은 언제나 분명하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좋은 삶'이 어떤 것이냐 물으면 대답하기 힘들다.
'좋은 것'은 항상 애매하다. 그래서 '그냥 좋다'고 하는 거다.
그러나 '싫은 것', '나쁜 것'을 구별하는 것은 쉽다.
나와 아주 비슷한 생각을 하는 저자의 책을 읽었다.
나와 아주 비슷한 생각을 하는 저자의 책을 읽었다.
'불행 피하기 기술'의 저자 스위스의 롤프 도벨리(Rolf Dobelli)다.
원어 제목은 '좋은 삶의 비결(Die Kunst des guten Lebens)'이다.
지구 반대편에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면 참 즐겁다.
저자의 주장은 아주 간단명료하다.
'좋은 삶(gutes Leben)'이 어떤 것인지 이야기하기는 힘들어도,
'나쁜 삶'이 어떤 것인지는 누구에게나 분명하다는 거다.
'신이 어떻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신이 그렇지는 않다'고는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는
중세 '부정의 신학(negative theology)'의 방법론처럼
우리도 '나쁜 삶'의 요인들을 하나씩 제거하면 행복해지지 않겠냐는 거다.
'좋은 것'을 추상적으로 정의하고, 각론의 부재에 괴로워하기보다는
'좋은 것'을 추상적으로 정의하고, 각론의 부재에 괴로워하기보다는
'나쁜 것', '불편한 것'을 제거하자는 생각은 독일의 오래된 실용주의 전통이다.
1920년대 '바우하우스(Bauhaus)'에서는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는 'FFF(Form folgt Funktion)' 디자인 원칙이 강조되었다. 삶을 불편하게 하는 불필요한 장식을 죄다 제거하자는 이야기다.
오스트리아의 건축가 아돌프 로스(Adolf Loos)는 아예 '장식은 죄악이다'라고 했다.
오스트리아의 건축가 아돌프 로스(Adolf Loos)는 아예 '장식은 죄악이다'라고 했다.
현대 미니멀리즘의 선구자인 디자이너 디터 람스(Dieter Rams)도 자신이 추구하는 디자인을 한마디로
'좋은 디자인(gutes Design)'이라고 정의했다.
'적지만, 더 좋은(Weniger, aber Besser)'이라는 그의 디자인 철학은
오늘날 애플의 모든 스마트기기 디자인에 적용되었다.
여기서 미니멀리즘이란 무조건 줄이는 게 아니다. '나쁜 것'을 줄이는 거다!
행복 혹은 '좋은 삶'을 좀 더 실천 가능한 방식으로 접근하자는 이야기다.
행복 혹은 '좋은 삶'을 좀 더 실천 가능한 방식으로 접근하자는 이야기다.
'싫은 것' '나쁜 것' '불편한 것'을 분명하고도 구체적으로 정의하고, 하나씩 제거해나가면
삶은 어느 순간 좋아져 있다.
'나
쁜 것'이 분명해야 그것을 제거할 용기와 능력도 생기는 거다.
'나쁜 것'이 막연하니 그저 참고 견디는 거다.
그러나 무조건 참고 견딘다고 저절로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다.
나 스스로 아주 구체적으로 애쓰지 않으면, '좋은 삶'은 결코 오지 않는다.
아무도 내 행복이나 기분 따위에는 관심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계란을 삶는다.
내게 삶은 계란이다!
내게 삶은 계란이다!
- Copyright ⓒ 조선일보 & Chosun.com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3/20/2018032003274.html
- 저는 필자를 전혀 모르지만, 참 글을 잘 쓰시네요. 읽으면서 행복합니다. 멋 집니다.
- 행복에는 용기가 필요한 법이다.
- 최고의 글입니다. 기승전결, 비유, 함유, 메타포어 까지 !
- 가끔 Tv에서든 어디에서든 늘 말씀에 귀기우려 듣곤 했는데
- 김정훈 선배(대학 1년 동문선배이니)의 말이 맞을 것 같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3/20/2018032003274.html
'세상 공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비교는 상대와 나 모두에게 상처를 입힌다 (행복한 경영이야기) (0) | 2018.03.23 |
---|---|
재미는 선택이 아닌 필수사항이다 (행복한 경영이야기) (0) | 2018.03.23 |
당신의 꿈을 표현하라 (CBS) (0) | 2018.03.21 |
아픔 뒤에 쾌감이 온다 (행복한 경영이야기) (0) | 2018.03.21 |
[리더십]관대한 리더와 냉혹한 리더, 누가 善인가? (김경준 부회장, 조선일보) (0) | 2018.03.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