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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英맨부커상 첫 미국인 수상 작가, 폴 비티 (조선일보)

colorprom 2018. 3. 6. 11:39

"노예였을 때가 좋았다…", 이 말에 펜을 들었다

'배반'비티의 네 번째 장편소설이다.
가난하고 불안한 가상의 마을 디킨스(Dickens) 이야기를 담았다.
매일 맞닥뜨리는 거대한 쓰레기들에 어떻게 대처하는지, 그 쓰레기 안에서 삶은 어떻게 이어져가는지에 대해 이야기 한다.


입력 : 2018.02.23 07:38

[World Wide Writer] 英맨부커상 첫 미국인 수상 작가 폴 비티
 

책 '배반'

배반
이나경 옮김|열린책들

408쪽|1만3800원


미국 작가 폴 비티(Beatty)에게 2016년 영국 맨부커상을 안겨준 장편 소설 '배반(The Sellout)'은
가난하고 불안한 가상의 마을 디킨스(Dickens) 이야기를 담았다.

로스앤젤레스 부근 작은 동네 디킨스는 험악한 빈민가다.
그곳 출신이라 하면 많은 이는 "저 쏘지 마세요"라며 줄행랑을 친다.

비티는 2014년 비(非)영국권 작가에게 개방된 맨부커상을 받은 첫 미국인이다.


'인종주의'라는 불편한 소재를 줄곧 다뤄온 폴 비티는
잘 웃고 좋은 사람의 기운을 물씬 뿜어내는 작가였다.
"실제로 그다지 웃기는 사람이 아니지만 글 쓸 때만큼은 유머를 소중히 여긴다.
유머는 무엇보다 입체적이어서 매력적이다."/ 게티이미지코리아

'배반'은 디킨스 토박이인 젊은 흑인 농부 '봉봉'(별명)이

노예제를 도입하고 흑백 분리를 했다며 미 대법원 재판을 받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과일을 기르는 순박한 주인공 청년이 어쩌다 이런 시대착오적인 황당한 일을 벌였는지를 되짚어간다.


흑인 작가가, 흑인 빈민가를 배경으로, 노예제와 흑백 분리를 다뤘지만

이 소설은 강렬한 사회적 메시지와는 거리가 멀다.

봉봉이 일인칭으로 천천히 풀어나가는 '나'와 디킨스 이야기는

저자가 세심하게 짠 유머와 서정으로 한 땀 한 땀 이어지며 웃음을 이끌어낸다.


뉴욕 컬럼비아대 교수인 그를 최근 대학캠퍼스에서 만났다.

비티는 "소설을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딱히 없다.

선명한 메시지가 있다면 그대로 적어서 뿌리고 다니지, 뭐하러 애써서 소설로 썼겠나"라고 했다.


―노예제 같은 민감한 소재를 다룬 소설이 사회적 메시지와 무관하다니, 의외다.


"글쎄…, 사회적 메시지가 없다고 하면 나에게 화를 내는 이들도 있다.

얼마 전에 만난 한 젊은 흑인 기자가 그랬다.

경찰에 억울하게 희생당하는 흑인 문제를 언급하면서

내가 뉴스에 등장한 희생자의 이름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며 분개했다. 하지만 모르는데 어쩌겠나.

소설가가 사회적 이슈에 꼭 안테나를 세우고 있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요즘 사람들은 '이렇게 해야 한다' 같은 또렷한 메시지를 편하게 느끼는가 보다."


―그렇다면 왜 굳이 사회적 논란이 될 소재를 골랐나.


"노예제인종 분리는 재료일 뿐, 소설의 핵심이 아니다.

사람들이 이런 묵직한 옛 단어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는지가 내 관심사였다.

수십년 전 보스턴대 대학원에 다니던 시절 흑인 학생 둘이 토론을 하는데,

한 녀석이 ‘진정한 자유란 노예가 될 자유까지도 포함한다’고 하더라. '말이 되나?

도대체 무슨 계기로 저런 생각을 했을까'라는 질문은 그 후로도 종종 나를 괴롭혔다."


―수십 년 묻어둔 소재를 꺼내 썼다는 건가.


책 '배반'은 눈살을 찌푸리는 동시에 웃음을 터트리게 하는 책 - 맨부커상 심사위원회       

    

"다른 계기도 있었다. 몇 년 전부터 미국엔 '옛 시절이 그립다'는 이야기를 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급기야는 '노예 시절이 더 나았다. 일자리라도 있었다'고 이야기하는 흑인들까지 등장했다.

어떻게 '노예'라는 단어를 그런 식으로 인식하는지, 묵은 흥미가 되살아났다.

'노예'만인가. 동독(東獨) 출신 중에 '차라리 공산주의 정권 때가 좋았다'고 이야기하는 이들도 여럿 봤다.

이런 식의 엉뚱한 향수(鄕愁)는 도대체 어떤 과정을 거쳐 인간에게 떠오르는지, 거기에 관심이 갔다."


'배반'에서 비티는 불편할 법한 소재를 유머로 둘둘 말아 독자에게 건넨다.

껄끄러움과 웃음이 번갈아 독자를 쿡쿡 찌른다.

맨부커상 심사위원회는 심사평에 "눈살을 찌푸리는 동시에 웃음을 터트리게 하는 책"이라고 적었다.


비티는 2006년 흑인 유머의 역사를 담은 논픽션 '호컴'(Hokum·헛소리)을 내기도 했다.


―유머에 관심이 많은 듯하다.


"내가 실제로는 그다지 웃기는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글을 쓸 때만큼은 유머를 소중한 요소로 여긴다.

유머는 무엇보다 입체적이어서 매력적이다.

나는 대부분의 좋은 책은 어떤 뜻으로건 '웃기는' 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정말 다양한 경우에 웃지 않나.

긴장할 때 웃음을 흘리기도 하고, 무서워서 웃기도 하고, 어색함을 미소로 넘긴다거나….

웃음이 나오는 상황은 정말 가지각색이다."


―미국판(版) 책 표지엔 당신을 '풍자(satire) 작가'라고 묘사한 문구가 있던데.


"오, 제발! 풍자 작가는 싫다. 풍자가 뭔지 잘 몰라서 불편하고 한 단어로 간단히 정의되기를 원치 않는다.

풍자 운운하는 평가를 처음 한 작자를 '절대로 풍자 아니거든!'이라고 세게 저지했어야 하는데 후회가 된다."


비티는 소설 속 몇 장면에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을 빗대 '흑인 친구'(the black guy)라는 표현을 쓰고

실명은 적지 않았다. "현실이 소설 속으로 지나치게 파고들까 걱정돼서"라고 했다.

오바마에 대한 개인적 평가는 덤덤했다. "대통령을 그만둔 건 본인에겐 잘된 일"이라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선 다소 과격한 목소리를 냈다.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은유? '인터넷에 자꾸 뜨는 거시기(남성 성기) 사진'이랄까."


―무슨 의미인가.


"당선 초기에 든 생각이다. 꼭 나쁜 뜻은 아니다.

'거시기 사진'은 누군가에겐 아주 추악하고 부끄러운 존재지만 그걸 자랑스럽게 찍어 뿌리는 인간도 있고,

듣자 하니 그 사진을 받아보고 싶어 하는 이들도 꽤 있는 모양이다.

1년이 지난 요즘은 사실 그 수준을 뛰어넘어 약간 위험한 단계까지 온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문학의 힘으로 뭔가를 바꿔보고 싶지는 않나.


"별로. 나는 문학과 작가의 가치는

독자들에게 잘 쓰인 무언가를 읽었다는 뿌듯함이나 감동의 즐거움을 느끼게 하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사회 변화엔 관심 없다."


―'배반'을 탈고한 지 2년이 넘었는데, 요즘은 뭘 쓰나.


얼마나 어디서 어떻게 쓴다는 루틴도 없다.

쓴다는 것은 나에게 매우 힘겹게 느껴지는 일이다. - 폴 비티           

 

"아이고… 한숨 나온다. 몇 개의 아이디어는 있지만 아직 작업 중인 작품은 없다.

나는 매우 느린 사람이고, 아주 천천히 쓴다. '배반'도 5년 넘게 걸렸다.

하루에 몇 분 동안, 어느 장소를 정해놓고 쓴다는 식의 루틴(정해진 방식)도 없다.

쓴다는 것은 나에게 매우 힘겹게 느껴지는 일이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책에 서명을 부탁했다.

서명과 함께 여섯 줄의 메시지를 한 단어씩 골라가며 10분에 걸쳐 적은 그는

"악필이라 독해는 불가능할 것"이라며 책상 위로 책을 밀어 되돌려줬다.


―요즘 인공지능(AI)이 순식간에 시도 쓰고 소설도 쓴다. 느려서 불안하진 않은가.


"그다지 신경 쓰이지 않는다. 한때 유행했던 와인 블라인드 테이스팅(Blind Tasting)과 비슷하지 싶다.

화려한 병에 담은 저렴한 와인을 비싼 와인으로 착각한 소믈리에처럼,

AI 작품을 사람이 썼다고 오해한 독자는 '젠장, 속았다'라며 씁쓸해할 수도 있을 듯하다.

하지만 받아들여야지, 별수 없지 않겠나."

폴 비티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나 간호사이자 화가인 어머니 아래에서 자랐다.

브루클린대 문예창작과를 나와 보스턴대 심리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1990년 뉴욕 한 카페에서 열린 시(詩) 낭독 경연대회에서 대상을 받으며 본격적인 시인 활동을 시작해

시집 두 권을 냈다.

1996년 첫 장편소설 ‘화이트 보이 셔플’을 발표한 후부터는 소설을 써왔다.

지금은 컬럼비아대 예술대 교수로 일하고 있다.


'배반'은 비티의 네 번째 장편소설이다.

2016년 맨부커상 수상 이전에 2015년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을 받았고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 등 10여개 매체가 '올해의 책'으로 뽑았다.

비티는 이 책을 "우리가 하루하루 맞닥뜨리는 거대한 쓰레기들에 어떻게 대처하는지,

그리고 그 쓰레기 안에서 삶은 어떻게 이어져가는지에 대한 탐색"이라고 설명했다.


책 원제 '셀아웃'(The Sellout)을 한국어 역자는 '배반'으로 번역했지만 원뜻은 '배신자'에 가깝다.

디킨스 사람들이 '노예를 소유한 흑인'인 주인공을 부르는 또 하나의 별명이기도 하다.

비속어와 역사적·문화적 고유명사들이 많아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지만

한국어판에 달린 216개 '옮긴이의 주'가 이해를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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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지성(yog****)2018.03.0609:46:50신고
    이 작가와 그의 책, 알고 싶어지네요. 인터뷰 내용을 봤을 땐 굉장히 매력적인 분인듯!
    이신목(god****)2018.02.2513:03:33신고
    노예제는 좋은 것인가?
    서종식(jsso****)2018.02.2505:32:39신고
    김신영 기자. 당신이 그래도 기자라면, 인터뷰 하고 나서 저자가 서명과 함께 써 준 <악필이라 알아 볼 수 없는 내용>이 뭐였는지 좀 알려 주어야 하지 않나? 정말 그의 말대로 알아볼 수 없는 내용이었으면, <정말 알아 볼 수 없었다>고 해주어야 하지 않나? 그게 저널리스트가 해야 할 일이다.
    그냥 누구 만났는데, <나는 사람을 사랑한다>는 식의 의례적인 주장이랄까 그런 걸 쓰는->
    ㅋㅋㅋ 근데 히틀러 얘기는 뜬금없네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