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6.07.26 03:10
영국 극작가 버나드 쇼의 희곡 '시저와 클레오파트라'에서
시저(Caesar)는 부하가 "여기 폼페이와 내통한 자의 명단이 있습니다"라면서 명단이 든 자루를 내밀자
"바다에 던져버려!"라고 일갈했다.
"나더러 앞으로 몇 년을, 나의 우정이 폼페이의 우정보다 훨씬 가치 있다는 것을 알면 나의 심복이 될
수많은 사람을 적으로 만드는 데 보내란 말이냐?"라면서.
시저는 피의 복수는 세상이 끝나는 날까지 피의 복수를 부를 뿐이라고 말한다.
지난 두 주 유럽에 다녀왔다.
지난 두 주 유럽에 다녀왔다.
오랜만에 가 본 프랑스는 활짝 핀 꽃처럼, 사람이 빚은 도시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여전히 아름다웠다.
그러나 전성기를 지난 문명의 피로감과 낙후성도 곳곳에서 느껴졌다.
프랑스대혁명 기념일 하루 전인 13일
파리의 샹젤리제 거리 몇 블록에 걸쳐 기념식장을 가설하는 것을 보면서
'테러리스트들이 이 뜻깊은 식장을 아비규환으로 만들려 하지 않을까' 걱정됐다.
그런데 14일 밤, 파리가 아닌 꿈의 휴양지 니스에서 그 우려가 현실이 됐다.
프랑스 민중이 자유, 평등, 박애를 외치며 앙시앵 레짐을 타도하고 공화정을 선포한 1789년 7월 14일은
프랑스 민중이 자유, 평등, 박애를 외치며 앙시앵 레짐을 타도하고 공화정을 선포한 1789년 7월 14일은
프랑스 국민에게 신성한 날이다.
그 기념일에 맞춰 프랑스를 할퀴려 한 테러리스트들은
아랍 이민자 같은 '프랑스의 2등 국민'에게는 자유도 평등도 박애도 없다고 외치려 한 것일까.
동시에 프랑스의 아름다움을 느끼기 위해 찾는 관광객의 발길도 차단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
니스 테러 다음 날, 니스에서 가까운 액상프로방스를 들렀다.
관광객과 주민들은 밝은 태양과 산들바람 속에서 분수와 카페와 상점과 박물관을 즐기고 있었다.
박물관 입구에서는 입장객의 가방을 점검했지만 삼엄한 경계는 없었다.
지키는 사람 열이 도둑 하나를 당할 수 없으니 민간인으로서는 태연한 생활만이 현명한 대처이다.
그러나 테러가 반복되면 결국 무력으로 테러의 진원지를 파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자칫 전 세계가 전화에 휘말려 가공할 참화를 겪을지 모른다.
시저라면 이럴 때 어떻게 했을까.
그는 군대를 이끌고 알프스 산맥을 넘어가 갈리아를 정복한 강인한 군인이자,
갈리아 이민족을 로마의 기치 아래 시민으로 받아들인 화합의 정치인이었다.
유럽 지도자들이 시저의 지혜를 발휘해 이슬람과 화해의 물길을 틀 수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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