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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색깔론'이라는 이름의 요술 망토 - '남아있는 나날' (조선일보)

colorprom 2016. 10. 25. 17:26


[서지문의 뉴스로 책읽기] [19] '색깔론'이라는 이름의 요술 망토

  • 서지문 고려대 명예교수


입력 : 2016.10.25 03:09

가즈오 이시구로 '남아있는 나날'

서지문 고려대 명예교수
서지문 고려대 명예교수

일본계 영국작가 가즈오 이시구로의 맨부커상 수상 소설 '남아있는 나날'의 주된 시간 배경은

영국이 독일에 유화책을 쓰던 1930년대 후반이다.

당시 애스터 자작(子爵)의 저택 클라이브덴에 자주 모였던 몇 명의 영국 귀족은

히틀러의 평화 수사(修辭)를 액면 그대로 믿고 양국 수뇌부의 접촉을 은밀히 주선해

평화무드 조성에 상당한 역할을 했다.

그 귀족들을 합성한 이 작품 속의 인물 달링턴 경

자기 저택에 양국의 외교 비선(秘線)들을 초대해 성대한 파티를 열고 영국히틀러의 요구를 수용하게 한다.


달링턴 경이 이렇게 한 동기에는

영국을 전쟁에서 구하려는 애국심과 국운을 좌우하는 인물이 되고 싶은 허영심,

그리고 히틀러의 기만술에 속아 넘어간 개탄할 어리석음이 혼합되어 있다.

2003418일 국내 인권단체 회원들이 유엔 인권위원회의 북한 인권 결의안 표결에
우리 정부가 불참한 것과 관련해 외교통상부 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한 뒤
구호를 외치고 있다. /조선일보 DB
국민의 정부, 참여 정부의 대북정책을 지켜보면서
나는 위정자들이 너무 순진해서 북한을 신뢰하는 것인가, 두려워서 고분고분 말을 듣는 것인가,
아니면 기타 어떤 동기나 목적에서 북한을 위하는 것인가, 알 수 없어 자주 혼란스럽고 불안했다.

그런데 북한에 끝없이 퍼주고 모욕은 참는 이유를 국민이 물으면 당사자들은 그 문제 제기를
"색깔론이기 때문에 대응할 필요가 없다"는 반응으로 일관했다.

마치 대북문제에 관해서는 '색깔론'이라고 쓰인 망토를 뒤집어쓰면
아무리 진한 색깔도 즉시 표백되어버리고 문제를 제기한 사람이 옹졸한 트집잡이가 되어버리는 것처럼.

우리는 지금 그냥 이념과 체제가 다른 나라와 이웃해 존재하는 상황이 아니다.

세계 최악의 인권유린 국가, 전 국민을 김씨 세습 왕조의 노예로 삼고

동족마저 핵으로 협박해 노예를 삼으려고 호시탐탐 노리는 시대착오적이고 반민주·반민족적인 집단을

머리에 이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앞으로 나라의 명운과 국민의 안녕을 책임지겠다는 대권 주자라면

자신의 이념에 대해 제기된 의문, 북한 정권과의 뒷거래나 담합 의혹은 반드시 해명해야 한다.


국민 앞에 숨김도 부끄러움도 없어야 할 대선 주자가 '색깔론'이란 망토 뒤에 숨어 웅크린다면

지질한 꼼수라는 비판을 당할 수 있다.

하물며 전 세계를 경악하게 하고 대다수 국민을 당혹스럽게 한 '북한 인권 탄압 감싸기' 관련 경위를

10년도 안 돼 "기억나지 않는다"고 하면 국민이 어떻게 마음 놓고 투표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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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6/10/24/201610240337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