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6.10.25 03:09
가즈오 이시구로 '남아있는 나날'
일본계 영국작가 가즈오 이시구로의 맨부커상 수상 소설 '남아있는 나날'의 주된 시간 배경은
영국이 독일에 유화책을 쓰던 1930년대 후반이다.
당시 애스터 자작(子爵)의 저택 클라이브덴에 자주 모였던 몇 명의 영국 귀족은
히틀러의 평화 수사(修辭)를 액면 그대로 믿고 양국 수뇌부의 접촉을 은밀히 주선해
평화무드 조성에 상당한 역할을 했다.
그 귀족들을 합성한 이 작품 속의 인물 달링턴 경은
자기 저택에 양국의 외교 비선(秘線)들을 초대해 성대한 파티를 열고 영국이 히틀러의 요구를 수용하게 한다.
달링턴 경이 이렇게 한 동기에는
영국을 전쟁에서 구하려는 애국심과 국운을 좌우하는 인물이 되고 싶은 허영심,
그리고 히틀러의 기만술에 속아 넘어간 개탄할 어리석음이 혼합되어 있다.
우리는 지금 그냥 이념과 체제가 다른 나라와 이웃해 존재하는 상황이 아니다.
세계 최악의 인권유린 국가, 전 국민을 김씨 세습 왕조의 노예로 삼고
동족마저 핵으로 협박해 노예를 삼으려고 호시탐탐 노리는 시대착오적이고 반민주·반민족적인 집단을
머리에 이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앞으로 나라의 명운과 국민의 안녕을 책임지겠다는 대권 주자라면
자신의 이념에 대해 제기된 의문, 북한 정권과의 뒷거래나 담합 의혹은 반드시 해명해야 한다.
국민 앞에 숨김도 부끄러움도 없어야 할 대선 주자가 '색깔론'이란 망토 뒤에 숨어 웅크린다면
지질한 꼼수라는 비판을 당할 수 있다.
하물며 전 세계를 경악하게 하고 대다수 국민을 당혹스럽게 한 '북한 인권 탄압 감싸기' 관련 경위를
10년도 안 돼 "기억나지 않는다"고 하면 국민이 어떻게 마음 놓고 투표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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