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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의 주민? 선진국 시민! - '부탄과 결혼하다' (조선일보)

colorprom 2017. 5. 23. 19:41


[서지문의 뉴스로 책읽기] 천국의 주민? 선진국 시민!

  • 서지문 고려대 명예교수


입력 : 2017.05.23 03:03

[49] 린다 리밍 '부탄과 결혼하다'

서지문 고려대 명예교수
서지문 고려대 명예교수



운전면허를 갱신할 때가 되어서 강서 면허시험장까지 가야겠지, 했는데 도심에서도 가능하다니 놀랍다.

국민 편의를 위해 끊임없이 진화하는 대한민국 만세!

1970년 유학을 가기 위해 여권을 신청하는데, 필요한 서류가 자그마치 13가지였다.

그것들을 발급받으러 다니느라 시간과 수고도 많이 들었지만

가는 곳마다 창구 직원들의 고압적인 태도가 사람을 피곤하고 노엽게 했다.

여권을 받아 출국할 때는 탈출하는 기분이 들 정도였다.


그런데 이 수고로움조차 1950~60년대에는

보통 두세 달에서 반년까지 걸리기도 했던 '신원조회'를 통과한 사람만 누리는 특권이었다.


요즘은 물론 아니다. 아무 구청에서나 쉽게 여권을 신청해 발급받을 수 있다.

그리고 민원인을 멸시하고 적대시하는 모습도 볼 수 없고 직원들은 친절의 화신으로 진화했다.

1950년대에는 전국의 산이 거의 다 민둥산이었는데 이제는 나라 전체가 정원이고

웬만한 동네엔 근린공원이 다 있다.

버스정류장에서 '다음 도착 버스는 몇 번입니다'라고 알려주는 나라가 세계에 몇이나 될까?


침몰한 거대 여객선의 잔해를 3년 후에 인양하는 나라가 세계에 또 있겠는가.

우리나라는 훌륭한 나라, 국민은 축복받은 국민이다.

그런데 우리나라가 부탄처럼 행복한 나라가 되는 것새 대통령의 소망이라고 한다.

소박하고 오순도순 사는 부탄이 아름다워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부탄이 인구가 적고(약 75만) 인구밀도가 낮아서 가능한 일이고,
국가 규모가 다른 우리나라가 닮을 수 있는 조건이 아니다.

부탄에 반해 단신으로 영구 이주한 미국 여성 린다 리밍'부탄과 결혼하다'를 보면
부탄 사람들은 착하고 욕심이 적어서 사회가 평온한 것 같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여름에는 빙하가 녹아내린 물의 홍수로 간선도로도 다 유실되고,
씻을 물은커녕 식수도 길어다 먹거나 배급에 의존해야 하고,
국내 여행도 허가증을 받아야 하고, 시간관념이란 존재하지 않고,
화장지는 물론 화장실이 없어도 용무를 해결해야 하는 행복을 감당할 수 있을까?

부탄의 행복은 우리로서는 모방할 수도 감당할 수도 없는 행복이다.
우리가 선진국 문턱에 서서도 행복하지 못하다면
그것은 대한민국의 존엄성을 부정하고
이제까지 국민이 피땀 흘려 이룬 바를 평가절하하는 세력들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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