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8.01.08 03:10
노병
나는 노병입니다
태어나면서 입대하여
최고령 병사 되었습니다
이젠 허리 굽어지고
머릿결 하얗게 세었으나
퇴역 명단에 이름 나붙지 않았으니
여전히 현역 병사입니다
나의 병무는 삶입니다
―김남조(1927~ ) ("심장이 아프다", 문학수첩, 2013)
전쟁은 전쟁터에만 있는 게 아니다.
아무도 없는 삶이 없기에 싸워야 할 적이 없는 삶도 없다.
"태어나서 좋았다고, 살게 돼서 좋았다고, 오래 살아서 좋았다"고 말하는 시인은
삶과 사랑과 시의 노병임을 자처한다.
노병이되 여전한 우리 시단의 '현역 병사'이기에,
병무가 삶이고 매일매일 기록하는 병무일지가 시다.
현역으로 늙는다는 건 역경을 경력으로, 수고를 고수로 바꾸는 연금술의 체득 과정이다.
"(구십) 평생을 통해 읽어갈 책을 오래 살았기에 상당히 뒷부분까지 읽었고,
젊은이들이 아직까지 읽지 못한 심오한 문장을 읽어왔기에 앞으로 내 시는 더 좋아질 것이다"라며,
"이 세상 끝날 때까지 희망을 노래하는 노병이 되어 삶을 살고 싶다"는 졸수(卒壽) 시인의 고백이
위풍당당하다.
'노인 헌장'으로 불러 마땅하다.
최고(最古)가 최고(最高)가 된다는 건 아름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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