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7.11.08 03:17
유럽의 강소국이었던 네덜란드, 英·佛 등 강대국 간 협상으로 불리한 조약 강요당하며 쇠락
세계 질서 주도하려는 中 앞에 네덜란드 전철 밟지 않으려면 여러 나라와 긴밀한 網을 짜야
1713년 네덜란드의 위트레흐트에서 프랑스·에스파냐·영국·네덜란드·프로이센·포르투갈·사부아 등
각국 대표들이 모여 에스파냐 왕위 계승 전쟁을 종결시키는 국제조약을 체결했다.
프랑스 국왕 루이 14세가 자기 손자를 에스파냐 국왕으로 앉히는 동시에
후일 자신이 사망하면 프랑스 왕위까지 물려받게 하여 양국을 합병하려는 야욕을 드러내자
유럽 각국이 들고일어나 벌어진 전쟁이었다.
오랜 기간 전쟁에 시달린 후라 모든 사람이 평화를 갈구했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여 위트레흐트 조약은 유럽 내 어떤 국가도 패권을 노리지 못하도록
국가 간 세력 균형을 이루고자 했다.
당시 생피에르 신부가 제시한 '영구 평화' 개념도 유사한 철학을 반영한다.
동맹 체제를 통해 일부 국가의 침략 야욕을 사전에 방지하자는 것이다.
새로운 유형의 근대 국제 체제가 등장한 것이다.
이 체제는 모든 국가 간에 조화를 이루는 평화를 목표로 하는가?
그렇지는 않다. 동맹 체제니 세력 균형이니 하는 것들은 실상 '강대국 간' 동맹과 균형을 말할 따름이다.
소국들 혹은 지역 단위들은 이 체제를 공고히 하기 위해 장기판의 말처럼 사용되었다.
독일(신성로마제국)이 나폴리·사르데냐·밀라노를 받고, 영국이 미노르카·지브롤터를 얻고,
프랑스는 알자스와 란다우 등지를 유지하는 대신 라인 강 동쪽 지역을 내놓는다는 식이다.
이전 세기인 17세기에 황금기를 누렸던 네덜란드도 이 조약에 의해 가련한 신세로 전락했다.
일찍이 루이 14세는 이 작은 부르주아 국가를 '구더기'라 부르며 경멸했고,
군사를 동원하여 침략 전쟁을 일으켰다.
강대국 간 전후(戰後) 협상에서 이 나라는 마치 조리돌림을 당하는 꼴이 되었다.
헬데를란트(Guelderland)주는 프로이센에 양도됐고, 남부 지방은 신성로마제국 차지가 되었다.
게다가 프랑스가 다시 군사 침략을 하지 못하도록 경계하는 역할이 주어져서,
프랑스 접경 지역에 요새를 만들고 네덜란드군이 주둔하도록 했다.
이 나라 도시인 위트레흐트에 대표들이 모여 협상하면서 이 나라에 불리한 내용을 결정하는 현상을 두고
프랑스의 외교관인 멜쉬오르 추기경은
'당신들 문제에 대해 당신네 나라에서 당신들 빼고(de vous, chez vous, sans vous)' 처리한다며 놀려댔다. 요즘이라면 '네덜란드 패싱'이라고 불렀을 법하다.
작지만 강한 나라, 유럽 내 경제 패권을 잡은 경제 강국, 렘브란트를 위시하여 참신한 예술이 꽃피어나고
학문과 사상의 자유가 보장되었던 문화 국가 네덜란드는 18세기 이후 쇠락의 길을 걸었다.
중국이라는 대국의 존재는 우리 역사와 미래의 상수(常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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