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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말랑말랑함의 힘 (백영옥, 조선일보)

colorprom 2017. 10. 28. 16:23


[백영옥의 말과 글] [19] 말랑말랑함의 힘

  • 백영옥 소설가


    입력 : 2017.10.28 03:03

    백영옥 소설가
    백영옥 소설가



    영화배우 에단 호크가 감독한 '피아니스트 세이모어의 뉴욕 소네트'를 봤다.

    후쿠오카의 한 호텔에 막 짐을 풀고 침대에 누우려던 참이었다.

    "불협화음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요? 화음의 아름다움을 알지 못하겠죠."

    별생각 없이 영화를 보다가 자세를 고쳐 앉았다.


    그는 천재적인 피아니스트였다. 하지만 아직 재능이 출중할 나이에 은퇴했다.

    사람들은 그에게 재능을 낭비하지 말라고 충고했다. 후회하지 않느냐는 그들의 말에 그는 말했다.

    "완벽한 답을 찾았어. 내 재능을 너희에게 주기로 했단다!"


    자신의 재능을 타인에게 나눠 주기로 한 그의 결정은 예술가로서 성장이었을까,

    아니면 매번 무대 위에 서야 하는 긴장과 고통에 대한 회피였을까.

    에단 호크는 더 많이 얻어야 더 행복해지는 것이라는 통념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배우로서 최선을 다하면서 경제적으로도 성공을 좇는 일의 조화가 힘들었다고 고백했다.

    자신이 이룬 가장 큰 성공이 최악의 실수였다는 걸 뒤늦게 깨닫기도 했다.

    "어떨 땐 아름다운 삶을 사는 게 제가 원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해요.

    하지만 방법을 모르겠어요."


    이 영화는 우연히 만난 두 사람의 대화에서 시작됐다.

    아흔의 피아니스트가 그에게 웃으며 "이미 연기로 하고 있지 않나요?"라고 반문했다.

    번스타인피아노에서 가장 중요한 게 '약한 음'을 치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람들은 절정을 향해 나가는 빠른 템포의 곡에 감동하지만,

    실력을 알 수 있는 건 '약한 음 치기' 같은 것들이라고 말이다.


    흔히 근육을 단단한 것이라 생각하지만, 건강한 근육은 본래 말랑하다.

    일부러 힘을 줘야만 단단해지는 것이다.


    아흔의 세이모어 번스타인은 공연이 아니라 오직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

    여전히 8시간씩 피아노를 연습한다.

    그가 학생들에게 자주 하는 말은 '힘을 빼라'는 것이다.
    연주자가 아닌 음악 교사로서의 삶은 그에게 보람과 충만을 가르쳐주었다.
    그는 직접 차를 끓이고, 요리하고, 학생들을 가르친다.
    주방에 걸려 있던 낡은 냄비들과 피아노 위의 스탠드가
    예술과 삶을 조화시킨 아흔 노인의 소박한 삶을 말해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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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10/27/201710270326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