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7.10.23 03:10
빈(殯)
바람의 널을 찢는 발이 있다네
천오백 년 전 정촌고분
마한(馬韓)의 수장이라던
망자의 발 뼈에서 발견된
빈, 파리 번데기의 시간
아직 무덤으로 가지 않은 발이 있다네
용장식 금신을 신고
텅
텅
빈
허공에
도려낸 입들이
알 수 없는 번식처럼
마지막 별빛을 빨아들이고
아직 무덤으로 가지 않은 발이 있다네
―문혜진(1976~ )
('시와세계', 2017년 여름호)
'빈(殯)'이란 관에 넣은 시신을 매장하기 전 일정한 곳에 안치하는 장례 절차다.
삼한시대에는 "집안에 죽은 자를 '빈'하고 3년이 지나면 길일을 택하여 장례를 치렀다"고 한다.
졸(卒)하면 염(殮)하고 빈(殯)하고 장(葬)했던 것이다.
삶과 죽음의 경계가 불분명해 죽은 자와 산 자와 함께 공존했던 습속들이다.
최근, 1500년 전에 죽은 망자의 '빈 객실'이 열렸다.
망자가 신었던 금(金)신의 흙에서 발뒤꿈치 뼛조각과 뒤섞인 파리 번데 기 껍질이 발견되었다.
'아직 무덤으로 가지 않은' 망자의 발을 '아직 무덤으로 가지 않은' 살아 있는 파리의 발이 움켜쥐고,
알을 낳았다.
말 그대로의 무덤이자 요람에서 '바람의 널을 찢는 발'들이다.
맨 나중에 나와 살아 내내 발발거린 발은 죽어서도 맨 나중에 발인(發靷)되나 보다.
제자 가섭에게 관 밖으로 내밀어 보여주었다는 붓다의 발을 헤아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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