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쉬라바스티 기원정사에서 붓다는 ‘금강경’을 설했다. 꽃잎이 뿌려져 있는 그 장소에서 “상(相)을 놓으라”는 메시지를 되새겼다 | |
“기자의 순례 코스를 그대로 따라서 가려고 한다(tombo)”
“한번 읽고, 다시 정서하며 읽는다(ksw52)”
“고전과 인문학에 대한 갈증을 채워준다(medipause·한국방송통신대에 다니는 44세 학생주부)”
“불교 성지와 수행 도량을 앉아서 보게 돼 참 감사하다(osodoe)”
“2500년 전부터 변함없이 현존하는 부처의 숨결을 느꼈다(74sunokp)”….
14일 연재가 끝난 ‘인도의 붓다 8대 성지를 찾아서’ 8회 시리즈가 나가는 석 달 동안
독자들이 보내온 e-메일중 일부입니다.
비단 불교 신자뿐만 아닙니다. 어떤 기독교인 독자는
“덕분에 붓다의 생애에 대한 시선과 이해의 폭이 달라졌다”고 하더군요.
각자의 종교, 각자의 처지에 따라 ‘붓다 8대 성지 시리즈’를 바라보는 시선은 ‘10인10색’이었습니다.
그 와중에도 딱 하나의 공통분모가 있더군요. 그건 바로 ‘목마름’이었습니다.
붓다의 생애, 붓다의 메시지, 붓다의 구도에 대한 진지한 호기심과 갈증이었죠.
그건 2008년 9~10월 연재된 이스라엘 기독교 성지순례 기사인 ‘예수의 숨결을 찾아서’ 3회 시리즈에 대한
독자 반응과 일맥상통했습니다.
그때도 독자들은 “2000년 전 예수와 예루살렘, 그리고 나 자신을 돌아보며 기사 속 순례길을 따라간다”고
하더군요.
불자들은 지금도 떠납니다. 인도로, 중국으로, 동남아로 ‘붓다의 흔적’을 찾아가죠.
또 기독교인들은 이스라엘로, 터키로 예수와 사도 바울의 자취를 좇아서 비행기를 탑니다.
그런데 순례지에선 참 아리송한 풍경과 마주치게 됩니다.
불교 신자든, 기독교 신자든 ‘받기 위해서’ 오는 순례객이 꽤 많다는 겁니다.
그러다 가피와 은총이 없으면 실망을 합니다. 낭패감을 느낍니다.
그래서 순례의 목적은 참 중요하죠.
백성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