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성호의 하루명상

백성호 기자의 현문우답 <48> 멀리, 기적이 우네

colorprom 2008. 10. 23. 12:23

백성호 기자의 현문우답 <48>

멀리, 기적이 우네

                

      
‘철커덩, 철커덩, 철커덩.’

‘마음의 철로’향해 달려야 삶의 허전함도 씻어져


들리세요? 어디서 나는 소리일까요. 그렇습니다. 우리의 발 밑에서 나는 소리죠.

아래를 쳐다 보세요. ‘인생’이란 철로를 달리는 우리의 삶이 ‘기차’와 퍽 닮지 않았나요?

출발역은 ‘출생’이죠. 그리고는 달리기 시작하죠.

느려서도 안 되고, 멈춰서도 안 되고, 철로를 벗어나서도 안 되죠.

왜냐고요? 정해진 시간, 정해진 장소에서 정해진 기차를 타야 하니까요.

행여 기차를 놓치면 곤란합니다. 자칫 ‘낙오자’가 될지도 모르니까요. 그래서 우리는 늘 앞만 보고 달립니다.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우리는 정해진 시간에 ‘착, 착’ 기차를 갈아타야 하죠.

더 나은 대학교, 혹은 더 좋은 직장에 가려고 또 기차를 갈아타죠.

늘 허둥대고, 늘 가까스로 기차를 탑니다.

간혹 기차를 놓치는 이들도 있죠. ‘수험 재수’ ‘입사 삼수’를 하면서 말입니다.

사람들은 그걸 ‘크나큰 손실’로 여기죠. 시간을 낭비한 만큼 재출발이 늦으니까요.

달리면 달릴수록 명확해지죠. 기차의 존재 이유가 말입니다.

‘남들보다 높이, 남들보다 멀리, 남들보다 빠르게’죠. 그래서 한 순간도 기차는 ‘존재 이유’를 놓치질 않죠.

항상 내 앞, 혹은 내 옆, 혹은 내 뒤에선 기차가 달려오고, 달려가죠.

그들을 따라잡고, 또 떼놓는 것이 변함없는 ‘기차의 존재 이유’죠.

그런데 참 묘합니다. 가끔 기차의 마음이 ‘머~엉’해지거든요.

무섭게 뿜어대는 기차의 기적 소리가 ‘텅 빈 메아리’로 돌아오거든요.

그럴 때면 어김없이 몰아치죠. 두려움과 불안함, 그리고 허전함의 칼바람이 차창을 때립니다.

기차는 생각하죠. 왜 그럴까. 이 ‘허전함’의 뿌리는 어디일까.

찬찬히 짚어보죠. 그리고 알게 되죠. 그 뿌리가 ‘철로의 끝’에 닿아있음을 말입니다.

기차의 몸통에는 ‘수명’이 있죠. 그래서 철로의 끝에서 모두가 사라짐을 알게 되죠.

기차는 절망합니다.

“그렇구나, 나는 오직 ‘사라짐’을 향해 달리고 있었구나.

매순간 소멸을 향해 달려가는 존재였구나.”

그걸 안 기차들은 두 편으로 나뉩니다.

한쪽은 그럴수록 더욱 세게, 더욱 빠르게, 더욱 무섭게 내달리는 기차들이죠.

기관차의 뺨을 때리는 속도의 짜릿함에 몸을 맡기며 ‘철로의 끝’을 잊는 거죠.

그 두려움과 허전함을 망각하는 거죠.

“이게 인생이잖아. 삶이란 어차피 이런 거잖아”라면서 말이죠.

허무함이 문득 문득 밀려와도 상관없죠. 속도의 힘으로 떨쳐내면 그만이니까요.

또 한쪽은 달리 반응하죠. 그들은 정신없이 돌아가던 ‘마음의 바퀴’를 일단 멈추죠.

그리고 침묵의 소리, 고요의 소리에 귀를 기울입니다.

사람에 따라 그게 ‘예수의 소리’, 혹은 ‘부처의 소리’, 혹은 ‘마음의 소리’가 되겠죠.

이제 기차는 세상의 철로가 아니라, 마음의 철로에 자신을 올립니다.

그리고‘내 안’을 향해 바퀴를 굴리기 시작하죠. ‘철커덩, 철커덩, 철커덩’ 다시 바퀴가 굴러갑니다.


그렇게 굴러가는 기차는 어김없이 말하죠.
“지금껏 왜 몰랐지? 차창 밖에 저토록 많은 꽃이 피어 있었네.
그 위로 물드는 가을 단풍이 저렇게 소담했네. 왜 저런 순간들을 몰랐지?”
더러는 눈물을 흘리기도 하죠.
“지금껏 내 삶의 철로는 ‘고통’인 줄 알았어, ‘지옥’인 줄 알았어. 그런데 그게 아니었네.
철로도 그대로, 꽃도 그대로, 바람도 그대로 있었네. 내 마음만 ‘지옥’이었네.
그 마음을 비우니까 보이네. 꽃이 보이고, 새소리가 들리고, 바람의 감촉이 느껴지네.”
그제야 기차들은 깨닫습니다.
“나는 철로의 끝을 향해 달리는 게 아니구나.
바로 ‘지금, 이 순간’을 향해 달리는 거구나.”

최근 우리 사회가 울적합니다. 절망과 자살, 좌절과 살인. 그런 착잡한 소식이 줄을 잇네요.
그들은 어땠을까요. 과연 어떤 철로에 자신을 올린 채 달렸을까요.
또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철커덩 철커덩, 지금 이 순간에도 움직이는 당신의 기차는 어떤 철로 위에 얹혀져 있습니까.
그리고 행복하십니까, 그 위에서.

백성호 기자


[출처: 중앙일보] 백성호 기자의 현문우답 <48> 멀리, 기적이 우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