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상의 발굴 이야기] [5]
황남대총 신라 왕비, '못 말리는' 명품족?
입력 : 2017.08.04 03:12
1973년 7월 7일. 경주 98호 고분, 즉 황남대총 앞에 제사상이 차려졌다.
묘주(墓主)에 대한 위령제이자 벼르고 벼르던 발굴의 시작을 알리는 팡파르였다.
발굴 지시는 2년 전에 받았지만,
길이가 무려 120m에 달하는 국내 최대의 무덤을 발굴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 사이 시험 삼아 발굴한 155호 고분(천마총)에서 금관과 천마도 등 유물이 쏟아져 나왔다.
조사단에서는 "이미 큰 성과를 거두었는데 황남대총을 팔 필요가 있겠느냐"는 볼멘소리가 나오기도 했지만
조사단에서는 "이미 큰 성과를 거두었는데 황남대총을 팔 필요가 있겠느냐"는 볼멘소리가 나오기도 했지만
'높은 곳' 지시로 시작한 일이라 어쩔 수 없이 진행하기로 했다.
남북으로 연접된 두 무덤 중 어느 쪽이 왕릉인지 알 수 없었으나 북쪽 무덤부터 파기로 결정했다.
1974년 10월 28일. 조사원들의 손길이 마침내 목관 내부로 접근했다.
1974년 10월 28일. 조사원들의 손길이 마침내 목관 내부로 접근했다.
목관 범위 전체에 뒤덮인 검은 흙 사이사이로 비쳐 나오는 황금빛 광채!
조사단은 왕릉임을 직감했다.
흙을 제거하자 동쪽에서 서쪽을 향해 금관, 금과 유리를 섞어 만든 목걸이, 금팔찌와 금반지, 금허리띠가
가지런한 모습으로 드러났다.
종류나 수량 모두 천마총 등 여타 신라 고분을 압도했다.
이튿날 주요 일간지에 관련 내용이 보도되면서 이 무덤 주인공은 5세기대 신라왕으로 확정되는 듯했다.
그러나 발굴이 끝나갈 무렵 새롭게 노출된 은제 허리띠 장식에서 '부인대(夫人帶)'란 글자가 확인되면서
무덤 주인공의 지위는 왕비로 바뀌게 됐다.
발굴이 끝난 후 이 무덤 속 유물 가운데 '물 건너온' 명품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발굴이 끝난 후 이 무덤 속 유물 가운데 '물 건너온' 명품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고구려산 금귀걸이, 서역산 보석 장식 금팔찌, 중국 남조(南朝)에서 들여온 청동다리미와 도자기,
동로마와 페르시아산 유리그릇 등이 그것이다.
황남대총은 한 번 무덤을 쓴 다음 다시 사람이나 물품을 추가로 묻을 수 없는 구조이다.
따라서 무덤 속 유물들은 왕비의 장례식 때 함께 묻힌 것이다.
이처럼 세계 각지의 여러 공방에서 정성스레 만든 명품들이 한 공간에 묻힌 것은
이처럼 세계 각지의 여러 공방에서 정성스레 만든 명품들이 한 공간에 묻힌 것은
발굴 역사에서도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다.
통상 그 이유를 둘러싸고 '글로벌 신라'를 강조하기도 하지만,
혹시 무덤 속 신라 왕비가 '못 말리는' 명품족이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8/03/201708030324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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