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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178] 아리따운 여성에게 보내는 多産의 축복 (조선일보)

colorprom 2017. 7. 4. 16:25


[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178] 아리따운 여성에게 보내는 多産의 축복

  • 우정아 포스텍 교수·서양미술사

입력 : 2017.07.04 03:10

온갖 기화요초가 가득한 정원에 유니콘이 사로잡혀 있다.
하지만 울타리는 뛰어넘고도 남을 만큼 나지막하고, 게다가 목에 묶인 사슬마저 느슨히 풀려 있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도망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얌전히 앉아 있는 걸 보니 유니콘 스스로 누군가에게 사로잡히길 바랐던 게 틀림없다.

작자미상, 사로잡힌유니콘, 1495~1505년경, 울·실크와 은사 등으로 엮은 태피스트리, 368×251.5㎝, 뉴욕 메트로폴리탄박물관 클로이스터 분관 소장.
작자미상, 사로잡힌유니콘, 1495~1505년경, 울·실크와 은사 등으로 엮은 태피스트리,
368×251.5㎝, 뉴욕 메트로폴리탄박물관 클로이스터 분관 소장.

이 작품은 유니콘을 사냥하는 과정을 묘사한 일곱 점의 태피스트리 중 하나다.
태피스트리란 무늬를 넣어 두툼하게 직조한 벽걸이용 직물로
호사스러운 실내 장식물이자 방한(防寒)용품이었다.

특히 이 '유니콘 태피스트리'는 금·은·울· 실크 등 값비싼 원사를 풍부하게 사용해 짜 넣은 화려한 문양과
현대의 기술로도 완벽하게 파악하지 못했을 만큼 정교한 직조술이 어우러진 중세 미술의 백미로 여겨진다.

말 혹은 염소처럼 생겼으되 이마에는 긴 나선형 뿔이 하나 돋은 상상의 괴수(怪獸) 유니콘
상처를 치유하고 오염된 물을 정화하는 능력을 지녔다고 한다.

그런 유니콘을 사로잡을 수 있는 건 오직 아리따운 처녀뿐이라는 전설이 있다.

따라서 중세 유럽에서는 순결과 결혼을 상징하기도 하고,
예수를 잉태한 성처녀 마리아와 함께 기독교 미술에 등장하기도 한다.

이 태피스트리는 꽃이 만개한 정원 한가운데에 풍요와 다산을 상징하는 석류나가 두드러지는 것으로 보아 결혼에 즈음하여 자손 번창을 기원하며 주문한 것으로 생각된다.
나무를 둘러싸고 눈에 띄게 수놓은 A와 E가 주문자의 이니셜일 텐데
프랑스 귀족으로 추정되지만 정확히는 밝혀지지 않았다.

누군지는 모르나 '인구 절벽'을 눈앞에 두고 보니
이토록 엄청난 재력을 들인 태피스트리가 과연 효력을 발휘해서 다산에 성공했는지 문득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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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7/03/201707030289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