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7.07.04 03:09
[55] 에드윈 시먼스 '제4중대장'
세계 역사상 무지막지한 추위 속에서 전개된 전쟁이 적지 않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아마도 '전쟁과 평화'의 소재가 된 나폴레옹의 1812년 러시아 침략일 것이다.
속전속결을 목표로 위풍당당하게 러시아로 진격했던 68만 프랑스 대군은
쿠투조프 러시아군 원수의 지연작전에 휘말려 궤멸되다시피 한다.
그 밖에도 히틀러 침공에 맞섰던 스탈린그라드의 결사항전,
미국 독립전쟁 첫해 겨울 밸리 포지(Valley Forge)에서의 겨울나기,
병자호란 당시 남한산성에서의 저항 등 추위로 인해 몇 배 더 가혹했던 전쟁이 많다.
6·25전쟁 중 장진호 전투도 인류사에 영원히 기억될 혹한 속 전투였다.
너무도 극한 상황에서 전개된 전투여서 단 17일의 전투였지만 이를 소재로 한 소설, 회고록 등이
30권도 넘게 나왔다.
장진호 전투에 미 해병대 1사단 4중대 중대장으로 참가했고 후에 준장으로 퇴역한
에드윈 시먼스 장군의 자전적 소설 '제4중대장(Dog Company Six)'과
1951년부터 참전했지만 장진호 베테랑들의 경험담과 사료들을 토대로 소설화한
제임스 브레이디의 '가을의 해병들(The Marines of Autumn)' 등에
장진호 전투의 상황이 소름끼치도록 선명하게 재현돼 있다.
결빙된 장진호 저수지 때문에 한층 더 견딜 수 없었던 영하 30~40도의 추위 속에서
중공군이 (낮에는 공중 폭격이 두려워서 숨어 있다가) 밤에만 몰려와서 잠도 잘 수 없고,
땅이 바위처럼 얼어서 참호를 팔 수도 없고, 헬기가 떨어뜨린 보급품도 험한 골짜기에서 끌어올릴 수 없고,
총신이 얼어 총알이 발사되지 않아 소변으로 녹여서 총을 쏘고,
옷을 겹겹이 껴입고도 온몸이 떨려 음식을 입에 떠넣을 수도 없고,
부상을 당하면 피가 응고되기 전에 얼어버리고, 혈장(血漿)은 얼어서 무용지물이고
모르핀 앰풀은 입에 넣어 녹여서 주사하고,
나중에는 흥남으로 철수 하면서 감각 없는 손으로 옷을 헤칠 수도 없고 맨살을 내놓을 수도 없어서
그대로 걸으면서 배설도 한다.
3만 명의 유엔군이 체액을 모조리 얼리는 혹한 속에서
매일 밤 끝없이 밀려오는 얼굴 없는 중공군을 육감으로 사격해서 중공군의 기세를 꺾었던 참혹한 전투.
그 값비싼 희생이 한·미 두 나라의 굳은 우정으로 이어지도록 가꾸는 것이 어리석은 일은 아니지 않은가?
- [키워드정보]
- 문재인 대통령 장진호 전투 기념비 헌화 기념사
- Copyright ⓒ 조선일보 & Chos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