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한국전쟁]

장진호 전투 (SBS 일요특선다큐멘터리, [전쟁과 기억])

colorprom 2017. 6. 18. 17:11

2017년 6월 18일, 일요일  www.colorprom.com 이경화


오늘, 2017년 6월 18일, 오전 7시~8시, SBS 일요특선다큐멘터리, [전쟁과 기억]에서

장진호 전투와 흥남철수, 그리고 버지니아주 콴티코장진호 전투 기념비 제막식 소식을 보았다.


개마고원 장진호 전투는 전쟁사적으로도 기념비적인 동계전쟁이었다 한다.

개마고원 장진호의 상황을 알지 못한 탓에 여름 옷을 입고 동상과 싸우며 전력의 반을 잃은 패전이었으나,

그들의 흥남부두 철수가 7000 여명의 피난민 탈출을 이루었으니, 패전이라고만 할 수 있으랴.


실제로 올리버 스미스 장군(?계급?)은 기자들이 후퇴하고 있다고 기사를 쓰자,

미해병대에게 후퇴는 없다. 다른 방향으로 진격하는 것이다. 라고 하며 독려했다고 한다.

당시 반정도를 잃고, 동상에 걸리는 등 부상자들과 함께 그 엄청난 인해전술의 중공군을 피해 철수하는 길이

얼마나 처참했을까...

그러나 그 길의 끝에 사면초가 흥남부두에 몰린 피난민들과 같이 나올 수 있었으니

일의 시작과 끝을 어찌 간단히 말할 수 있을까 싶다.


겨우 살아남은 노장들의 말이 인상적이었다.

"전쟁이 두려웠던 것이 아니다.  발구르며 꽹과리, 나팔을 불며 끝없이 끝없이 내려오는 중공군들...

시체를 넘어넘어  계속되는 그들의 행진...끝날 것 같지 않은 그것이 두려웠다."


영화 [국제시장]의 시작에 보이던 그 배 [Lane Victory 호 (올슨 선장)]는 지금 롱비치에 전시되어 있었다.

당시, 배에 타기도 천행이었으나 일단 배를 탄 사람들도 배 안에서 저마다 가족 찾느라 야단들이었단다.

그 많은 사람들이 화장실은 또 어떻게 해결했을까...

안내를 해 준 앤드류씨는 기가 막힌 화장실을 보여주었다.  바다로 퐁당 직수할 수있는.  하이고......


5년간에 걸친 노력으로 세워진 버지니아주 콴티코 장진호 기념조각상 기념식도 볼 수 있었다.

그 식은 콴티코 국립해병대 박물관에서 거행되었는데 역시 많은 노장용사들을 볼 수 있었다.

참석한 미국 조지프 던포드 미합참의장은 한국말로 '같이 갑시다' 라고 인사해 주었다.

같이 참석한 그의 아버지도 역시 서울, 낙동강, 장진호 전투에 참여한 참전용사셨다.


* 한민족평화나눔재단(소강석 목사님)도 그 기념비 사업에 도움을 주었단다.


고토리의 별

그들은 멋진 기념메달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유래는 고토리의 별에 관한 것이었다. 



여기까지 쓰고 인터넷을 보니 [장진호 전투]로 엄청 많은 기사가 있습니다. 

그중 하나, 중앙일보 채병건 특파원의 글을 여기 옮겨 붙입니다.

오늘 아침 TV에서 본 사진을 이 기사에서 보니 무척 반갑습니다.

정확한 기사내용과 사진까지~감사합니다!!!  꾸벅~이경화 올림


마음 같아선...참전용사들께 제 태극스카프 드리고 싶습니다.  부인들이 살아계시기도 쉽지는 않겠지만...

내용이 태극이고, 한국이니까...감사하다는 마음으로.  흐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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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병건 특파원 mfemc@joongang.co.kr (중앙일보)


``장진호 전투는 기적이었다`` 미국 버지니아에 뜬 `고토리의 별`

2017-05-05 06:37:00


한국전쟁의 최대 격전지중 하나인 함경남도 장진호 전투를 기념하는 기념비 제막식이

4일(현지시간) 버지니아주해병대박물관에서 열렸다.


장진호 전투는 1950년 11월 26일부터 12월 11일까지 미국의 제1해병사단 및 육군 7사단의 3개 대대 등

1만8000여명이 중공군 7개 사단 12만여명과 싸우며 포위를 뚫고 흥남으로 철수했던 전투다.

당시 미군 전사자가 4500여명이었다. 중공군 사상자도 4만5000명 이상이었다.
 

4일 장진호전투기념비 제막식에는 한국전쟁 참전용사 등 250여명이 참석했다. 사진=채병건 특파원

4일 장진호전투기념비 제막식에는 한국전쟁 참전용사 등 250명이 참석했다.

사진=채병건 특파원

 



제막식에 참석한 리처드 캐리 예비역 중장은 축사에서
“장진호 전투는 엄청난 숫자의 중공군을 상대로 한 기적이었다”며
“전쟁 교본은 공격에서 승리하려면 3대1의 병력으로 싸워야 한다고 하지만
장진호 전투는 우리가 압도적으로 밀렸다”고 소개했다.

 캐리 예비역 중장은
“(장진호 전투가 벌어졌던 한 지역에선) 우리는 1대 소대로 중공군 2대 연대와 싸워야 했다”며  
“엄청난 추위와도 싸웠다”고 회고했다.

캐리 예비역 중장은 이어
“내 무덤에 서서 울지 말라. 나는 이곳에 있지 않다. 나는 죽지 않았으니”라는 시 구절로
중공군과 싸우다 전사한 이들을 추모해 행사장을 숙연하게 했다.
 
버지니아주의 미 해병대박물관에 들어선 장진호전투기념비. 사진=채병건 특파원

버지니아주의 미 해병대박물관에 들어선 장진호전투기념비. 사진=채병건 특파원

 
장진호 전투에는 조지프 던포드 합참의장의 부친도 참전했다.
이날 행사에 던포드 합참의장과 부친이 함께 참석했다.
던포드 합참의장의 부친은 한국전쟁 참전용사다. 낙동강 전투, 인천상륙작전과 장진호 전투를 모두 치렀다.
던포드 합참의장은 집무실에 장진호 전투를 담은 액자를 걸어 놓고 있다.
던포드 합참의장은 축사에서 부친의 참전 사실을 소개하며
“미 해병의 정신은 이 전투를 통해 이어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안호영 주미한국대사는 “장진호 전투는 용기와 희망, 인류에 대한 사랑이라는 미국의 정신을 보여준다”며 “장진호 전투를 통해서 10만여명의 피난민을 남으로 내려보내는 흥남 철수 작전이 가능했다”고 알렸다.

장진호 전투에서 중공군의 인해 전술을 돌파한 미군은 흥남에 집결한 뒤
피난민을 함정과 수송선 등에 태워 남쪽으로 내려보내는
세계 전쟁사에서 전례를 찾기 어려운 흥남 철수 작전을 성공시켰다.

안 대사는 “당시 미군의 에드워드 아먼드 사령관은 미군 함정에 실려 있던 무기와 물자를 버리고
대신 사람을 태웠다”는 “이는 과거에도 현재에도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고 밝혀 청중들의 박수를 받았다. 
 
4일 해병대박물관 내에 모습을 드러낸 장진호전투기념비에는 ‘장진(초신)호수 전투’로 영문 표기돼 있다.
원래 미국 내에선 장진호 전투가 일본식 표기인 초신(Chosin) 전투로 알려져 있다.
한국전쟁 당시 일본이 만들었던 지도를 미군이 사용하면서다.
하지만 이번에 기념비를 건립하면서 한국 측의 요청으로 공식 이름에 장진(Jangjin)을 앞세웠다. 
 
기념비는 상단에 별 모양의 상징물이 올려져 있다.
이는 ‘고토리의 별’로 장진호 인근인 고토리에 떴던 별을 뜻한다.
포위당했던 미군이 철군을 앞둔 밤 갑자기 눈보라가 개이고 별이 떠올랐던 일화로 인해
‘고토리의 별’은 장진호 전투를 상징하게 됐다.
 
이날 행사에는 기념비 건립을 주도했던 스티브 옴스테드 예비역 중장, 박승춘 국가보훈처장
한ㆍ미 양국 인사들과 한국전쟁 참전용사 등 250여명이 참석했다.

버지니아주 트라이앵글=채병건 특파원 mfemc@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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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5.05 06:35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