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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보라 (박정환 목사님)

colorprom 2017. 3. 18. 15:29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보라

12.17.2016 팜스프링스 한인교회    박정환 보건학박사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 - 고린도후서 4:18

유대인 정신과의사 빅토르 프랭클(Viktor Frankl)

2차 세계대전 중 아우슈비츠 나치 강제수용소에 수감되어 하루하루 극한의 고통과 공포를 겪게 되었다.

빅토르 프랭클은 1990, 캘리포니아 애나하임에서 그의 경험을 전달하였다.

그 가운데 그는 특별한 한날의 경험을 전하였다.


극심히 추운 어느 날, 강제노역 장소로 발에 생긴 상처들로 인해 극심한 통증으로 다리를 절며

장거리를 걷던 때였다. 그는 영양실조와 혹사로 병들어 기침을 심하게 하였고 무릎을 꿇게 되었다.

경비병이 와서 그를 때리며 그가 일어나 걷지 않으면, 그는 남겨져 죽게 될 것이라 하였다.

그런 관경을 보아온 그는 그것이 자신의 마지막인 것을 감지하였다. 그는 다시 일어날 수가 없었다.


땅위에 앉아 더 이상 갈 수 없는 상황에서, 그는 갑자기 자신이 더 이상 그곳에 있지 않고

전쟁 후 비엔나의 따뜻하고 편안한 강의실에서포로수용소의 심리학에 대한 강의를 하는 상상을 하였다.

200명의 청중이 그의 강의에 몰두하고 있었다.

그는 강제수용소에서 어떤 사람들이 정신적·감정적으로 더 잘 이기고 살아 남는 지에 대해 강의하고 있었다.

그것은 그의 마음의 눈 안에서 훌륭한 강의였다.


그는 더 이상 절반쯤 죽은 사람이 아니라 강의 속에 살아 있었다.

그리고, 그는 그의 상상의 청중들에게 놀랍게도 그가 일어설 수 있었다고 말하였다.

경비병은 그를 때리는 것을 멈추었고 그는 처음에는 힘들게 걷다가 점차 보다 힘있게 걸을 수 있었다.


그가 이것을 그의 청중들에게 말하는 것을 상상하면서 그는 몸을 일으켜 걸을 수가 있었다.

그는 일을 하는 동안과 캠프로 돌아오는 내내 이 강의를 계속하여 상상하였다.

그는 이 뛰어난 강의를 마치고 청중들의 기립박수를 받는 것을 상상하면서 그의 침상에 쓰러졌다.


그 후 여러 해가 지난 후에 프랭클은 이 강연을 한 후 7,000명의 사람들에게 기립박수를 받았다.

프랭클은 29명 중 1명 밖에 살아남지 못한 강제수용소에서

젊음이나 강건함, 건강과 같은 보통 기준으로는 누가 생존할 수 있는지 예측하는 것이 불가능함을 보았다.

가장 유용한 측도는, 그가 앞날을 어떻게 바라 보는 가 하는 것이었다.


미래에 대한 희망과 삶의 의미를 잃은 사람들은 불행한 운명을 맞았다.

그들은 몸과 마음이 신속히 쇠약해져서 하루하루 시들어 죽어 갔다.

이에 반해, 죽음의 수용소에서 생존이 가능하게 했던 요인은 미래에 대한 기대이고 비전이었다.

살아서 이룰 사명과 중요한 일이 있다는 믿음은 이들을 끝까지 생존케 했던 것이다.


오늘 설교 제목은,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보라입니다.

고린도후서 4:18.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

성서적 표현으로 하면,

우리가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 즉 육적인 것이 아닌, 보이지 않는 것, 즉 영적인 것이라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보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미래학자 조엘 바커(Joel Barker)미래에 대한 긍정적이고 분명하고 강력한 비전

절망적인 무기력한 상태를 깨고 올라 가 보다 높은 희망적이고 유용한 상태로 이끈다 하였습니다.

그는 미래의 긍정적인 비전이

회사, 학교, 커뮤니티, 국가, 개인의 성공을 위하여 가장 강력한 변화 동기가 됨을 보여 줍니다.


캐나다 교육심리학자 벤자민 싱어

교육에 있어서 앞날을 바라보는 시야의 중요성에 대하여 지적하였습니다

그는 높은 성취를 하는 학생들과 낮은 성취을 하는 학생들 차이는

가족 배경이나 아이큐 (IQ)와 같은 차이보다 미래에 대한 명확한 비전을 가진 것임을 발견하였습니다.

낮은 성취를 하는 학생들은 거의 미래에 대한 감각이 없었으며 그들의 초점은 단 기간에 머물러 있었고

미래는 운명에 의해 좌우된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이와 반대로 높은 성취를 이룬 학생들은

5년 혹은 10년 미래를 생각할 수 있었고, 그들 자신이 자신의 미래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 보이는 것만 바라보는가, 보이지 않는 미래를 바라보는가가 결정적인 차이를 만든 것입니다.


마시멜로 실험


아이들을 한명씩 방으로 데리고 갑니다.

방에는 텅 빈 책상이 하나 있고, 그 위에는 작은 종 하나와 마시멜로 한 접시가 놓여 있네요.

그리고 실험자 한명이 들어와 아이들에게 이야기합니다.

"잠시 어딘가 다녀올테니 그때까지 마시멜로를 먹지 않고 있으면 마시멜로를 하나 더 줄게."

 

아이들은 갈등하기 시작합니다.

시간이 지나고 어떤 아이들은 1분도 안되어 먹어버리는 반면, 꾹 참고 있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15분이 지나자 실험자는 돌아와 결과가 어땠는지를 확인했습니다.

아이들의 3분의 1은 마시멜로를 그냥 먹었고, 3분의 2는 꾹 참고 마시멜로를 하나 더 먹는 데 성공했습니다.


스탠포드 대학의 심리학자 월터 미셸 박사 1966년에 만났던 653명의 네 살배기 꼬마들을

15년 후 십대가 된 다음에 다시 만났고, 1981년 그 유명한 마시멜로 연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마시멜로를 먹지 않고 오래 참은 아이일수록 가정이나 학교에서의 삶 전반에서 참지 못한 아이들보다

훨씬 우수했고, 대학입학 시험(SAT)에서는 또래들에 비해 뛰어난 성취도를 보였습니다.


이후의 추적 연구는 인내하지 못한 꼬마들이 비만, 약물중독, 사회 부적응 등의 문제를 가진 어른으로

살고 있는 데 반해 인내력을 발휘한 꼬마들은 성공한 중년의 삶을 살고 있음을 보고했습니다.


유사 연구들에 따르면 마시멜로 효과는 너무나 강력해서

지능지수보다도 더 예측력이 우수했고, 인종이나 민족에 따른 차이도 없었습니다.

간단히 말해 절제의 미덕을 가진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훨씬 성공적인 인생을 살 확률이 높다는 것입니다.


한편으로 이것은 앞으로의, 즉 보이지 않지만 미래에 대한 기대, 믿음 효과를 보여줍니다.


1987년에 한 의학저널에 발표된 한 사례에 의하면,

한 여성은 메스꺼움과 구토 증세가 심하여 고통을 호소하였습니다.

의사들은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없자 그녀에게 ‘새로운 지극히 강력한 경이적인 약’이라고 하며

한 가지 약을 주면서 메스꺼움이 의심할 바 없이 낫게 할 것이라 하였습니다.

그녀가 약을 먹은 후 20분이 되지 않아 메스꺼움은 사라졌고,

객관적인 위장 테스트 결과는 정상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런데, 실상 그녀에게 준 약은 메스꺼움을 덜어 주는 약이 아니고

도리어 메스꺼움을 일으키고 구토를 야기시키는 토근제 시럽이었습니다.


이 경우에 있어서 약이 구토를 완화시킬 것이라고 믿고 기대하는 위약효과가

그 약 자체의 약리작용의 정반대 효과를 낼 정도로 강력하였던 것입니다.


앞날에 대한 긍정적 심상을 가지고 기대하는 것은 종종 플라시보 효과로 나타나는데

의학자들은 모든 약 및 수술 치료의 30%에서 60%가 플라시보(Placebo) 현상이라는 것을 밝혀냈습니다.


위약효과는 우리에게 무엇을 알려 주는가?

믿음의 힘, 희망과 기대의 힘. 치유력은 강력하다

사람들이 그렇게 변할 것이라 믿고, 바라보고 기대한 결과입니다.


수술 후 건강에 대한 환자들의 태도와 관련된 16개 연구를 조사한 한 연구는

환자가 수술 후에 자신의 건강에 대한 기대가 높을수록 건강 상태가 더 좋아진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다양한 환자 컨디션들—허리통증, 심근경색, 비만증 등—에 있어서

환자들이 두려워 하거나 수동적인 경우에는 자신이 나아질 것이라고 기대한 환자들과 같이

신속히 회복되지 않았습니다.


위스콘신 의대의 세포생물학 교수인 브루스 립튼(Bruce Lipton) 박사는

그의 저서 ‘신념의 생물학'을 통하여

유전자는 세포 내의 사정과 관계없이 그 사람의 마음 상태에 따라 영향을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개인의 세상을 보는 시야와 믿음에 의해 세포의 활동과 유전자의 후생적 표현이 변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념과 지각이 유전자의 활동성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쳐서

유전자 코드를 변화시키게 된다는 것입니다.


만일, 마음이 두려움으로 닫혀 지내게 된다면 신체 시스템도 닫혀 결국 질병으로 가게 되고,

반면에 마음이 열려 긍정적이고 건강한 신념과 지각을 가지게 된다면

신체 시스템도 건강하고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 온다는 것입니다.


립튼 교수마음을 변화시킴으로 몸의 세포를 변화시킬 수 있으며,

사람이 유전자에 의해 영향을 받기보다 사람이 유전자를 변화시킬 수 있음을 보여 준 것입니다.

그의 세포생물학 실험을 통해 입증한 이 새로운 학설은

세계 생물학계를 100년 동안 지배해 온 DNA 결정론을 뒤집어 버린

위대한 생물학적 업적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치료봉사, 241) 때때로 질병은 상상력에 의하여 생기고, 때로는 악화된다.

만일 병이 없는 것으로 생각하기만 했다면 건강하게 지났을 뻔한 많은 사람들이 일생 동안 환자로 지낸다.

많은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위험에 노출될 때마다 병에 걸릴 것으로 상상하기 때문에

그들이 기대하는 그대로의 나쁜 결과를 초래한다.

많은 사람들은 오로지 상상적인 원인에서 생긴 질병 때문에 죽는다.


(마지막 날의 사건들, 70) “생각과 상상력을 통제하는 연습을 하는 것이 의무라고 인식하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 훈련되지 않은 마음을 유익한 사물에 고정시키기는 어려운 일이다.

생각을 바르게 사용하지 못하면 그 영혼은 신앙이 깊어질 수가 없다.


일전에 한국을 찾은 닉 부이치치(Nick Vujicic)의 힐링캠프 인터뷰를 통해

매우 비극적인 일을 겪은 그의 가족의 경험에 대해 들었다.

닉이 태어났을 때 그에게는 팔과 다리가 없었다.

간호사였던 어머니는 건강한 아기 출산을 위해 최선을 다 했고,

목사인 아버지는 그를 위해 날마다 기도했다. 그런데, 비극이 생긴 것이다.

간호사들은 모두 울었고 아버지는 나지막히 신음했다.

어머니는 아기를 보고 싶지 않다고 4달 동안 아기를 안지 않았다.


그런데, 아버지는 아기를 자세히 보고는 엄마에게

"아기는 아름다워요. 괜찮아요. 하나님이 우릴 도우실꺼요. 아기는 실수로 태어난게 아니어요”라고 했다.


닉은 아버지가 처음부터 강하였다고 하며, 자라면서도 아버지의 지지와 조언이 없었다면

세계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강연자가 된 지금의 자신이 없을 것이라 단언하였다.


돌이켜 보면, 기형의 아기 모습 가운데서도 아름다움을 보는 닉 아버지의 긍정적인 시야

비극으로 끝났을 사건을 세상과 그 가족에 오히려 복된 일로 변화시켰다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시련에 대한 반응에 따라 행불행이 바뀔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시야가 하루 아침에 갑자기 생기는 것이 아니다.

시련을 당하면 누구든 자신이 이미 가지고 습관화시켜 온 시야로 바라보고 반응한다.

그러므로, 시련이 닥치기 전에 시련을 잘 극복할 수 있는 사람으로 자신을 습관화시키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일상에 닥치는 작은 어려움들을 긍정적인 시야로 보고 극복해 나가는 경험들이 축적되어

큰 시련이 닥칠 때 긍정적인 시야로 반응하게 만들게 된다.

러므로, 평소에 어려움들이 올 때, 긍정적인 시야로 바라보고 해석하고 대처하는 훈련을 하는 것

매우 요긴하고 유익하다.


모세 12명 정탐꾼을 보내어 가나안 땅을 탐지하게 하였을 때 그들은 돌아와서 정반대의 보고를 하였다.

10명은 “가나안 땅 거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거인이 살고 있어 우리보다 강하므로

올라가서 치지 못하리라”고 한 반면에

갈렙과 여호수아는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고 하였다.

10정탐꾼들은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인 대장부와 같고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와 같다”고 하였으며, 여호수아와 갈렙은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고 하였다.


이 두 부류의 사람들을 이렇게 다르게 만든 것은 그들이 보는 것이 달랐기 때문이다.

10정탐꾼들은 적과 자신들을 비교하여 바라봄으로 스스로 위축되어 패망을 자초한 반면에

2명은 자신들과 함께 하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있었으므로 적은 우리 밥이라고 말하며 담대할 수 있었다.

결국 10명의 정탐꾼은 멸망하였으나

여호수아와 갑렙은 약속의 땅에 들어가고 영원한 유업을 기업으로 받았다.


자신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는가?

매일의 삶에서 구원하시고 역사하시는 주님을 바라보는가?

이렇게 보이지 않는 것을 영적인 시야로 볼 수 없는 사람은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이땅에서도 승리할 수 없다.

빛이 될 수 없다. 오히려 어둠을 전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믿어도 별 수 없다...고 여겨지게 함으로...


어떻게 이런 시야를 개발할 것인가?

시련을 통해서... 시련과 고난을 통해 연단되고 하늘에 들어갈 수 있도록 준비된다.


“너희를 시험하려고 오는 불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 베드로전서 4:12-14

(산상보훈, 23)


생애의 시련은 우리의 품성에서 불순물과 거친 것을 제거해 내는 하나님의 일꾼이다.

이들에 의해 채석되어 깎이우고 끌로 새기어지고, 갈리고 다듬어지는 것은 고통스런 경험이다..

그러나 그 속에 들어간 돌은 하늘 성전의 제 자리를 채우는데 부족함이 없게 준비되어 나온다.

( 5:8-9)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셨은즉

“인내로서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12:1-2).

, 예수께서 십자가를 짊어지셨을 때 구속사업을 완성하실 앞날을 즐거움으로 바라보심으로 고난을 참고

이기신 것을 알 수 있으며, 우리에게도 그분을 따르라고 초청한다.


교과.


"The Savior is lost in contemplation of the scene of triumph called up before Him.

He sees the cross, the cruel, ignominious cross, with all its attending horrors,

blazing with glory."


à구주께서는 당신 앞에 펼쳐질 승리의 장면에 대한 상념에 잠기신다.

그분은 십자가, 그 잔인하고 수치스러운 십자가를, 그에 따른 모든 공포와 함께 빛나는 영광을 보신다.”

(가정과 건강, 380)

그리스도께서는 언제나 당신의 사명의 결과를 보셨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지상생애가 어려움과 자아희생으로 충만해 있었지마는,

그 모든 수고가 헛되지 않으리라는 생각으로 기뻐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수고의 결과를 보시고 만족하셨다.

그분께서는 먼 장래를 보시고 당신의 굴욕을 통하여 용서와 영생을 받을 사람들의 행복을 보셨다.


하나님은 전능하심

저의 가장 큰 생애 시련들 à 큰 축복들로 변함


불치병 투병 à 20대 젊은 시간에 가장 열심히 성경연구. 목숨걸고 무기한 금식기도 à 하나님 만남.

하나님은 능치 못함이 없으신 하나님이심을 발견.


경제적 시련들 à 합심하여 하나님만 바라보았을 때, 기적과 이사들 경험.

어두운데서 기도 경험나 자신 간혹 어둡고 무거운 마음으로 기도를 시작하지만

기도를 하다보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대로 기도에 응답해 주실 것을 미리 바라볼 수 있어서

기도를 마칠 때에는 마음에 희망과 기쁨이 가득차서 아주 밝아진 마음으로 감사하며 일어나는 때가

종종 있곤 한다.


일상 생애의 어려움, 시련들을 소중히 여기라.

네덜란드의 미래학자 프레드 폴락(Fred Polak)

사람은 항상 ‘두 세계의 시민’으로

'현재의 실제 세계에 사는 시민이자 상상의 세계(우리의 지각, 감각, 반응에 의해 형성된)에 존재하는

시민'이라고 정의하고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미래 이미지의 성쇠(盛衰)는 문화의 성쇠에 선행되거나 동행한다.

한 사회의 이미지가 긍정적이고 번영하는 한, 문화의 꽃은 만개한다.

하지만, 그 이미지가 쇠퇴하고 활력을 잃기 시작하면 문화는 오래 존속하지 않는다.


이를 성서적으로 해석하자면,

사람은 보이는 세계(육적인 세계)과 보이지 않는 세계(영적인 세계), 이 두 세계의 시민이다.


사람은 누구나 보이는 현실 세계와 보이지 않는 정신적·영적 세계를 살아가는 존재인데,

보이는 것만 보고 살아간다면 보이는 한시적(限時的)인 것에 좌우되고 결국 멸망당하게 되지만

보이지 않는 영적인 것을 보며 살아간다면 영원히 살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 땅에서 영생을 시작하고 하늘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다고 한다.


여러분과 저의 시야가 더욱 영적으로 밝아져서 매일의 삶에서 주님을 바라보고 승리하며,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삶을 살게 되기를 바라며 말씀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