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5월 26일, 수요일, 김용한 전도사 (서울 복음교회)
많은 옷, 권정생 그리고 윤치병
지난 번 교육부서 워크샵 때였던가요, 신나게 권정생 이야기를 나누고서
이 소설은 1960년대 전북 금마 아주 작은 시골 교회에서 목회를 한
윤치병 목사라는 실제 인물을 그린 것입니다.
윤목사는 일제 시대 부유한 가정에서 자라 일본 유학을 한 지식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를 만나고 무교회주의의 영향을 받은 그는 자신의 이름을 ‘치병’
곧 ‘어리석음을 잡는 사람’으로 고치고 항상 어려운 시골교회 목회를 전전했습니다.
예수는 큰 바보였고 자기는 작은 바보라는 생각 때문이었지요.
그는 언제나 가난했습니다.
뛰어난 그의 붓글씨 한 점이라도 얻으려고 사람들이 와서 감사의 뜻으로 봉투를 놓고 가면,
열어보지도 않고 있다가 누군가 도움을 청하는 사람에게 그냥 넘겨주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가난보다 더 견디기 어려운 것은 정신지체를 앓고 있는 아들이었습니다.
나이는 50 가까이 된 노인이 하는 짓은 서너 살 아이 같은 행동을 하는 것을
동네 사람들은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목사가 저주받아 저런 자식 얻은 것이라고 수군거렸습니다.
교인들도 이해하지 못하고 교회를 떠나갔습니다.
복 받은 목사라면 왜 저런 자식을 하나님께서 주셨겠느냐며...
지친 윤목사는 은퇴하기 위해 후임 전도사를 찾습니다.
한 젊은 전도사가 내려왔는데 사고로 정신지체 아들이 죽고,
윤목사는 아들의 관을 메고 홀로 장례를 치루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을씨년스런 초겨울 관을 끌고 가는 윤목사의 통곡소리를 등 뒤로 젊은 전도사는 마을을 떠나는 것으로
소설은 끝납니다.
허리를 깊이 숙여야 겨우 들어갈 수 있는 작은 방 안은 겨울인데도 차가웠습니다.
방은 붓글씨 연습한 신문지로 가득했습니다.
돈이 없어서 좋은 종이를 살 수 없다며 자리를 청한 목사님 곁에는 작은 밥상이 놓여있었습니다.
한 두 수저 든 흔적이 있는 밥그릇에는 딱딱해진 보리밥이 있었고, 상에는 김치 한 종지만 놓여있었습니다.
갑자기 ‘아빠’ 하는 굵은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50이 훨씬 넘은 것처럼 보이는 한 노인이 물을 길어왔다며 인사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소설 속 정신지체 아들임을 직감했습니다.
목사님은 평생 어떤 말씀을 가슴에 안고 사셨느냐고 물었습니다.
‘범사 감사!’.
도대체 무엇이 그렇게 감사할 것이 있느냐고 되묻자 ‘그래도 범사 감사’하고 대답하시면서,
무언가 선택해야 할 상황이 오면 자기는 언제든지 손해 보는 쪽을 선택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윤목사님은 그 신념대로 사셨고,
그 삶의 마지막도 우리같이 범속한 사람들의 눈에 그다지 행복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 분은 자신이 믿었던 예수님처럼 살려고 했고,
결과에 연연해하지 않으면서 손해 보는 쪽을 늘 선택했습니다.
역사가 세상의 역사만 있는 것이 아니라면
그 분은 분명 다른 역사 속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로 기억될 것입니다.
정치가 타협의 예술이라고 하지만,
타협에 이르는 과정에서 개인간, 집단간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득실에 대한 치밀한 계산도 해야겠지요. 그리고 마침내는 이겨야하겠지요.
이기는 것이 정치의 최종목표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제 생각에는 무슨 터무니없는 소리냐고 비난받을 것이 뻔하지만
손해보는 쪽을 선택하는 것이 마지막에 이기는 길임을 말하고싶습니다.
진영마다 전문가집단과 책사들도 많고 책략도 치밀하고 넘치겠지만,
모든 정치공학보다 중요한 것은 정치생명이고, 정치생명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민(民)의 신뢰가 아닐까요.
정치생명은 언제든지 끝날 수 있지만 민의 신뢰는 정치생명보다 길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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