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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기도는 생명의 구원이다.

colorprom 2013. 1. 8. 17:06

             기도는 생명의 구원이다.

                                   - 마하트마 간디 -

 

나는 내가 믿음과 기도의 사람이라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내가 비록 갈래갈래 쪼개져버린다 해도 나는 신이 나에게 힘을 주어 그를 부정하지 않도록 용기를 북돋워줌은 물론 그가 존재한다는 것을 나서서 주장하도록 하리라는 것을 믿는다.

 기도 없이 이루어지는 나의 행동은 하나도 없다. 인간은 잘못이 없을 수 없는 존재다. 그는 자신이 딛는 발걸음에 확신을 가질 수 없다. 인간이 자신의 기도에 대한 하늘의 답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그 자신 속에 있는 자만심의 메아리일 수도 있다. 그릇될 수 없는 인도를 얻으려면 우리는 절대로 악에 흔들리지 않을 순수한 마음을 갖도록 노력해야 한다. 나는 자신이 그런 상태에 도달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나의 마음은 늘 갈등하고 다투며 실수도 하는 불완전한 마음이다.

 내가 죽는다고 해도 나는 라마(Rama)나 라힘(Rahim)의 이름 외우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런 이름들은 나에게 똑같은 신을 의미하며, 그런 이름들을 입술 위에 외우고 있는 동안은 나는 유쾌하게 죽을 수 있을 것이다.

 

시련 속의 보호자


 모든 시련을 겪어오는 동안 신은 나를 지켜주었다. "신이 나를 구해 주었다"는 구절은 요즘 나에게 더욱 깊은 뜻을 지니고 다가온다. 그러면서도 나는 아직 그 뜻을 완전히 깨닫지 못하고 있다. 다만 더 충실한 경험을 겪으면서 더 완전한 이해에 도달하리라고 생각할 뿐이다.
 그러나 변호사로서나 아니면 정치를 하게 되면서나 내가 정신적으로 커다란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신은 나를 구해주었다. 모든 희망이 사라지고, 모든 사람들이 떠나 어려움만이 남게 되었을 때 나는 어디에서 오는지 알 수 없는 도움을 여러 번 경험했다.

 기도는 내 생명의 구원이었다. 기도가 없었으면 나는 오래 전에 미치광이가 되었을 것이다. 나는 내 자서전에서 내가 공적 사회 활동이나 개인적 경험 중에 겪은 여러 가지 실패담을 기록했다. 그런 경험들은 짧은 기간이나마 나를 실망에 빠지게 했지만 기도의 힘에 의해 사라지곤 했다.

 기도는 진리가 내 생활에서 차지하는 만큼의 비중을 차지하지는 않는다. 기도는 내가 어려움에 빠졌을 때 그런 어려움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필요에 의해서 의지하곤 했다. 그러나 나의 믿음이 점차 굳어가면서 기도에 대한 열망은 점점 저항할 수 없을 만큼 자라갔다. 이제는 기도가 없는 삶은 공허하고 무의미하게 됐다.

 나는 남아프리카에 있을 때 기독교 예배에 참석한 적이 있으나. 그때 기독교 예배는 나를 사로잡지 못했다. 나는 기도를 통해서 그들과 함께 할 수 없었다. 그들은 신에게 무엇인가를 갈망했지만 나는 그렇게 할 수 없었고, 그래서 실패하고 말았다. 처음에 나는 신과 기도를 모두 믿지 않았다. 그래서 나이가 많이 든 후에도 공허함 같은 것을 느끼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우리 몸에 음식이 반드시 필요한 것과 마찬자기조 영혼을 위해서 기도 없이 지낼 수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됐다. 사실 음식이 우리몸의 유지를 위해 필요한 것은 기도가 우리의 영혼에 필요한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단식을 할 수도 있지만 기도를 중지하고 지내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정치판에서는 여러 차례 절망과 실의를 대면해야 했지만, 나는 한 번도 평안을 잃어버린 적이 없었다. 그런 평안은 기도로부터 온다. 나는 학문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나는 기도를 하는 사람이다. 나는 형식에는 구속받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사람은 자기에 맞는 규칙을 스스로 결정한다. 그도 할 수 있다. 그러나 기도에도 잘 다듬어진 길이 있으며, 옛부터 스승들이 닦아놓은 다듬어진 길을 따라 가는 것은 우리를 편안하게 해준다.  나는 내 경험으로 증언한다. 우리 스스로 모두 노력하고 기도해서 새로운 길을 발견하면 그것으로 매우 훌륭한 일을 이룬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신의 응답

 

 믿음의 길에서는 절대 실패를 인정해선 안 된다. 그리고 언제나 스스로를 순결하게 하고 신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을 준비를 해야 한다. 그러나 신은 교만한 사람의 기도는 들어주지 않는다. 신은 그와 흥정하려는 사람의 기도도 들어주지 않는다.

 신에게 도움을 요청하려면, 벌거벗은 마음으로 그에게 나아가 아무 숨김없이 두려움과 의심도 떨치고 기도하면 된다. 신은 그에게 찾아온 수백만의 사람들을 구원해 주었으므로, 누구도 버릴 까닭이 없다. 그에게는 예외가 없으므로 우리가 하는 모든 기도는 그의 응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아주 순수하지 못한 사람의 기도도 그는 들어줄 것이다. 이것은 모두 나의 경험에서 나온 것이다. 나는 신을 통해 순수하게 정화되었다. 신의 나라를 찾으면, 그 밖의 모든 것은 저절로 이루어질 것이다.

 나는 한 번도 신이 대답해 주지 않은 경험을 한 적이 없다. 아무일도 이루어지지 않고 어려움을 당해 감옥에 있었을 때와 같이 내가 가장 어두운 암흑 속에 빠졌을 때 신은 오히려 내곁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다.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한 번도 신이 나를 버렸다고 느꼈던 적이 없다.

기도의 의미


 기원이나 예배, 기도 등은 결코 미신이 아니다. 그런 행동은 우리가 먹고 마시고 앉거나 걷는 것보다도 더욱 구체적인 행동이다. 그런 행동만이 진실되고 그 밖의 모든 일은 무의미하다고 하는 것은 지나친 과장이 아니다.
 예배나 기도는 결코 말잔치가 아니다. 그것은 입술로만 하는 찬송도 아니다. 기도는 가슴속 깊은 곳에서 나온다. 이를 통해 우리 마음이 사랑으로만 가득 차서 그 밖의 모든 욕심이 사라진다. 그래서 우리가 모든 소리를 조화롭게 다듬을 수 있게 되면, 불필요한 가슴 떨림은 우리에게서 사라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기도를 할 때 가장 겸허한 마음으로 해야 한다. 기도는 말이 필요없다. 기도는 어떠한 감각적 자극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나는 기도가 우리의 마음을 깨끗하게 하는 가장 훌륭한 방법이라는 데에 아무런 의심도 없다.
 기도할 때는 마음 없는 말보다 말 없는 마음이 훨씬 소중하다. 우리는 사원에 가서 돌이나 금속상을 숭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살고 있는 신을 예배한다. 우상은 모두 인간이 만드는 대로 된다. 우상은 예배자에 의해 부여되는 신성이 없으면 아무런 힘도 발휘할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어린이까지 모두 포함해서 기도할 때 완전한 침묵을 지켜야 한다.

 기도는 기도하는 사람의 살아 있는 믿음으로 뒷받침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기도는 사회의 모든 계층을 포함해서 자신을 희생하는 고귀한 용기를 배우는 첫걸음이자 마지막 단계이며, 궁극적으로는 나라의 자유와 명예를 지키는 길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앵무새처럼 신의 이름을 되뇌이며 그런 행동의 대가를 바라기도 한다. 참된 진리의 탐구자는 안으로 자신의 마음속에서 앵무새처럼 신의 이름을 되뇌이는 거짓을 몰아내야하며, 밖으로는 다른 사람들의 마음속에 들어 있는 거짓까지도 깨끗이 할 수 있는 굳건한 믿음을 가져야 한다.

기도의 필요

 

 사람의 몸에 음식이 꼭 필요한 것처럼 우리의 영혼에는 기도가 필요하다. 사람은 음식이 없이도 며칠간은 지낼 수가 있다. 그러나 신을 믿는 사람은 한 순간이라도 기도 없이는 살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렇게 살아서도 안된다.

 나쁜 버릇이나 정신적인 게으름에 빠진 경우, 신에게 기도하지 않아도 도와줄 것이라고 믿는 사람도 있다. 그렇다면 그의 이름을 외우고 그를 부르는 것이 왜 필요하겠는가? 신이 존재하고 우리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행동한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신의 뜻을 실현하는 것은 그저 기도만 가지고는 안된다. 그런 순간은 끊임없는 실천이 있어야 도달할 수 있다.

 기도는 하루를 여는 아침의 열쇠이고 하루를 마치는 저녁의 빗장이다.
 나는 여러분에게 내 자신의 경험과 기도의 놀라운 힘을 체험한 동료들의 경험을 통해서 기도 없이는 한 순간도 지낼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이야기 한다. 그것은 기도가 없다면 절대로 내면의 평안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누구라도 하루 스물네 시간 꼬박 신의 존재와 함께 지내는 사람이면 그에겐 별다른 기도의 시간이 필요치 않다는 사실에 동의한다. 그러나 이런 일은 평범한 우리들에게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혼탁한 일상생활은 우리에게 너무 많은 시간과 정력을 요구한다. 그런 사람들에게 하루에 불과 몇 분간이라도 바깥 세상의 어지러움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면, 그런 시간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될 것이다. 침묵 속에 이루어지는 명상은, 그들에게 성냄을 누르고 참을성을 기름으로써 혼란의 가운데에서도 평화를 흐트러뜨리지 않을 수 있는 경험을 하게 해줄 것이다.

 기도하는 사람은 어떤 이유에서라도 기도하기를 지체해선 안 된다. 신의 시간은 멈추는 법이 없다. 신의 시간의 바퀴는 멈춤없이 계속 굴러왔다. 그의 시간에는 시작이 없다. 그런데 어떻게 그에게 드리는 기도의 시간을 늦출 수 있겠는가?

 이쇼파니샤드 우파니샤드는 첫번째 구절에서 매일 아침 기도를 시작할 때 모든 것을 신에게 바치고 난 뒤에 필요한 만큼만 사용하라는 시를 외우도록 가르치고 있다. 이 가르침의 바탕에는 남이 갖고 있는 것을 탐내지 말라는 뜻이 있다. 이 두 가지 교훈이야말로 힌두교의 가장 중요한 내용이다.

기도의 정수

 

아침에 읊는 다른 기도문에는 "나는 잠시 사용할 힘을 원하는 것이 아니요, 하늘나라에 가고자 하는 것도 아니요, 열반을 얻고자 하는 것도 아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다만 고통 속에 있는 이들의 어려움을 덜어 주고자 하는 것뿐이다."하는 것이 있다. 고통은 육체적일 수도, 정신적일 수도 있으며 영혼의 고통일 수도 있다. 우리가 격정에 얽매어 겪어야 하는 영혼의 고통은 육신의 고통보다 훨씬 강하다.

그러나 신은 우리의 고통을 덜어 주기 위해 내려오지는 않는다. 그는 인간의 대행자를 통해서 힘을 행사한다. 그러므로 신에게 다른 사람의 어려움을 도와 줄 수 있는 힘을 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스스로 그런 일을 위해 몸을 바치겠다는 준비를 하는 것이다.

 기도는 배타적이 아니다. 기도는 특정한 사회 계층이나 소규모 집단에만 제한되지 않는다. 기도는 모든 것을 담는다. 기도는 모든 인간성을 포괄하며, 기도의 실현은 이 땅에 하늘나라를 세움을 뜻한다.
 진실된 명상은 우리의 눈과 귀를 모두 막고 오직 예배하는 이에게만 열어줌을 뜻한다. 사람이 갖고 있는 신의 개념은 제한되고 불완전한 것일 수밖에 없다. 우리들 각자는 스스로가 생각하는 신을 순수하고 고귀하다고 생각하면서, 스스로에게 가장 적합한 형태로 신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신이 자신의 마음속에 있다고 믿는 사람은 진실된 기도를 올릴 수 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사람은 기도할 필요가 없다. 신은 침범할 수 없다. 내 경혐에 비추어보면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어쩔 수 없이 길을 잃게 되고 만다.  그러면 신을 인격적 존재로 숭배하는 것과 전능한 힘으로 숭배하는 것과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양자는 양쪽의 입장에 따라 모두 옳을 수 있다. 아무도 절대적으로 옳은 기도의 길이 어느 것인지 알지 못한다. 이상적인 기도는 어차피 이상으로 있을 수밖에 없다. 우리는 다만 신이 모든 힘을 지배하는 것을 알면 된다. 그 밖의 모든 힘은 물질적이다. 그러나 신은 만유(萬有)를 꿰뚫는 생명의 힘이며 모든 것을 감싸안는 정신으로 인간의 시계를 뛰어넘는다.

침묵의 효용
 

나는 이따금 진리를 탐구하는 사람은 침묵을 지켜야 함을 느낀다. 나는 침묵의 힘이 크다는 것을 안다. 나는 남아프리카에 있을 때, 한 사원을 찾은 적이 있다. 그곳은 무척 아름다운 곳이었다. 그곳에 있는 수도자들은 모두 침묵의 계율을 지켰다. 그곳의 신부에게 그 까닭을 물으니 그는 분명하게 대답했다.  "우리는 모두 연약하기 짝이 없는 인간입니다. 어떤 때는 우리가 하는 말의 의미조차 모를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마음속에서 나직하게 우리에게 들려오는 작은 목소리를 들을 수 있으려면, 우리는 우리의 말을 줄이고 고요히 기다려야 합니다."
 나는 거기에서 소중한 교훈을 얻었다. 나는 침묵의 참뜻을 얻게 됐다.

 나는 경험을 통해 침묵이 진리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정신적 계율임을 배웠다. 과장하고, 진리를 치장하며 알게 모르게 진리를 억누르기도 하는 것은 사람이 타고난 약점이다. 이러한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침묵의 수련이 필요하다. 말을 적게 하는 사람은 많은 생각을 한 후에야 말을 한다. 그런 사람은 한마디 한마디를 모두 깊이 생각한다.

 입술이 막힌 사람이 하는 침묵은 침묵이 아니다. 우리는 혀를 떼어냄으로써 침묵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도 진정한 침묵은 아니다. 말을 할 줄 알면서도 쓸모 없는 말을 하지 않는 사람이 침묵하는 사람이다.
 침묵은 나에게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꼭 필요한 일이 됐다. 처음엔 외부로부터 밀려오는 중압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침묵했으나, 얼마 안 가서 글을 쓰기 위한 시간도 필요했다. 얼마동안 그런 일을 한 뒤에는 새로운 정신적 가치를 발견하게 됐다. 어느 순간 침묵의 시간이야말로 신과 대화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제 나는 마치 침묵하기 위해 만들어진 사람처럼 느껴진다.

 침묵은 신을 기억하기 위해 중요하며 우리의 마음을 깨끗이 하고 우리의 뜻을 신에게 바칠 때 훌륭한 길잡이가 된다.  나는 침묵으로 하는 기도가 때로는 겉으로 하는 행동보다 훨씬 큰 힘을 지닌다고 믿으며 순수한 마음으로 끊임없이 올리는 기도 또한 반드시 대답을 얻을 것으로 생각한다.

기도의 힘

 

 나는 경험을 통해, 가슴으로부터 솟아나는 기도는 비겁함과 다른 모든 나쁜 습관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주는 가장 훌륭한 도구하는 것을 증언할 수 있다.
 우리는 자신을 버리기 전엔 우리 가슴속에 있는 악의 흔적을 정복할 수 없다. 신은 가치 있는 하나의 자유를 주는 대가로 우리에게 완전한 자기 포기를 요구한다. 우리가 스스로를 버리게되는 바로 그 순간 우리는 살아 있는 모든 것을 위해 봉사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것은 기쁨이며 다시 태어남이기도 하다. 우리는 새로운 생명이며, 신의 창조를 위해 봉사하면서 결코 희망을 버리지 않게 된다.

 사람의 가슴속에는 밝음과 어둠의 영원한 다툼이 있다. 그러므로 기도의 힘에 의지해서 밝음을 찾아가지 못하는 사람은 결국 어둠의 희생자가 되고 만다. 기도하는 사람은 자신 안에 평화를 간직할 뿐 아니라 다른 모든 세계와 평화를 유지하며, 기도하지 않고 세속의 일에 빠진 사람은 자신을 비참하게 할 뿐 아니라 세계까지도 비참의 구렁텅이로 빠뜨리고 만다.

 기도만이 우리에게 질서와 평화와 안식을 가져다 준다. 중요한 일을 정성껏 하게 되면 다른 일들도 저절로 잘된다. 사각형의 한쪽 각을 바로 잡으면 다른 쪽 각은 저절로 바로 잡히는 것이다.

 기도는 늙은 부인들만 즐기는 일이 아니다. 바르게 이해되고 사용되기만 하면 기도야말로 가장 훌륭한 행동의 도구가 된다. 마음이 신의 정신으로 가득 채워지면 우리는 누구에게도 악의를 가지지 않고 증오하지 않으며, 또한 적으로 있던 사람도 그의 적의를 거두고 친구가 된다.  나는 나의 적을 친구로 바꾸진 못했지만 내 가슴이 신의 뜻으로 가득 찼을 때 내 속에 있는 모든 미움은 사라졌다. 인류의 역사를 통해 지금까지 이러한 증언을 해온 스승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나는 그런 것을 자랑삼지 않는다. 나는 그런 모든 것이 신으로부터 비롯된 것임을 믿기 때문이다.


 사악한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은 모든 것을 깨끗이 하는 신의 존재를 알 수 없다.
 신은 우리들의 방식이 아닌 그의 방식으로 우리의 기도에 답한다. 신의 길은 우리 인간의 방식과는 다르다. 따라서 우리는 신의 방식을 알 수 없다. 기도는 믿음을 의미한다. 어떠한 기도도 헛되이 올려지지 않는다. 기도는 다른 모든 우리의 행동과 마찬가지다. 우리가 보든지 못 보든지 기도는 열매를 맺으므로, 가슴으로 올리는 기도의 열매는 다른 어떤 행동보다 중요하다.

출처 : 횃불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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