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공부

남산을 가리면 서울이 안 보인다

colorprom 2023. 3. 18. 20:16

남산을 가리면 서울이 안 보인다[朝鮮칼럼 The Column]

 

전상인 서울대 명예교수·사회학
입력 2023.03.21. 00:05업데이트 2023.03.21. 06:35
 
서울 강남의 고속버스터미널 옥상에서 바라본 남산과 강남 아파트단지.2021.1.21/조선일보DB

오세훈 서울시정(市政)의 역점이 글로벌 도시 경쟁력 강화에 맞춰지면서

한강에 모처럼 생동감이 넘치고 있다.

이른바 ‘한강 르네상스 2.0′ 전략에 따라

한강은 조만간 서울의 대표 브랜드로 거듭날 전망이다.

 

상암동 하늘공원에는 한강의 낙조를 감상할 수 있는 대관람차가

‘서울링’이라는 이름으로 들어선다.

여의도에는 국제 여객 터미널 ‘서울항’이 조성되고,

수상택시에 이어 수상버스가 다니는가 하면

동호대교성수대교 사이에는 한강에서 처음으로 보행교가 건설된다.

그 밖에 노들섬을 비롯한 한강 곳곳에 랜드마크와 전망대, 공연장 등이

새로 들어설 예정이다.

 

한강이 가진 경제적 가치와 문화적 매력을 최대한 활용하는 일은

백번 바람직하다.

이번에 나온 ‘그레이트 한강 프로젝트’는 오세훈 시장이 제1기 시절에 착수한

한강 르네상스 사업의 최신 증보판쯤 될 것이다.

 

원래 한강 르네상스에는 남산 르네상스라는 짝꿍이 있었지만

재작년 예장공원 개장을 계기로 마침표를 찍었다는 게 서울시 입장이다.

문제는 최근 남산 주변에 먹구름 하나가 일고 있다는 사실이다.

 

서울시는 1995년 경관 보호를 위해 지정한 남산 고도지구(高度地區)를

고층 건물로 재개발하려는 논의를 진행 중이리고 한다.

이에 일각에서는 남산에 대한 조망권이 더욱더 제한될까 봐

우려를 제기하는 상황이다.

 

경관 관리는 늘 어려운 문제다.

생활상 편익도 고려해야 하지만

경관의 공공재적 가치 또한 외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원칙이고 철학이다.

 

이와 관련하여 개인적으로 매우 강한 인상을 받은 장소가 하나 있으니

그곳은 미국 시애틀 소재 워싱턴주립대학이다.

그 대학에서는 캠퍼스 내 어디에서나

캐스케이드산맥의 최고봉 레이니어산 정상이 보여야만 한다.

워싱턴대 교수들은 임금의 80%는 화폐로, 나머지 20%는 풍경으로 지급받는다

는 말도 있는데, 이를 ‘레이니어 효과’(Rainier effect)라 부른다.

 

이와 뚜렷이 대조되는 경우가 서울대 관악 캠퍼스다.

언제부턴가 서울대 교정에서 관악산 최고봉 연주대를 눈으로 마주하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게 되었다.

멋없는 고층 건물이 우후죽순처럼 빽빽이 들어선 데다가

각종 플래카드가 교내 전역에 마구 내걸리는 탓이다.

‘관악 캠퍼스’라는 말이 무색하게도 서울대는 관악산을 가리며 내쫓고 있다.

1975년 이전 초기 천혜의 풍경을 잃어버린 서울대는

한국형 난개발의 축소판이자 복사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릇 인간은 풍경적 존재다.

이때 풍경은 결코 단순한 물적 대상이나 형식적 배경이 아니다.

대신 감각이나 체험 공유를 통한 자연과 인간의 유기적 복합체다.

“지도는 비역사적이나 풍경은 역사적”이라는

인문지리학자 이 푸 투안(Yi-Fu Tuan)의 통찰은 그래서 빛난다.

 

마을이나 도시, 국가를 불문하고 풍경에는 사람들을 하나로 만드는 힘이 있다.

오랫동안 눈에 익은 산과 물, 들, 그리고 길은 집단적 소속감의 원천이다.

우리 모두는 알게 모르게 풍경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법이다.

 

남산이 각별한 까닭은 그것이 한강 이상으로 서울 풍경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원래 남산이 내산(內山)이라면 한강은 외수(外水)였다.

산 위에서 해가 뜨고 산 아래로 해가 지는 것이 한국인의 심층 의식이다.

한국 사람 대다수가 앞산을 보며 자라듯 서울 사람은 남산을 보며 자란다.

그것이 우리의 전통이자 문화다.

남산이 있어 한양이 있고 한양이 있어 서울이 있다.

남산은 가족이자 친구, 연인처럼 늘 우리와 함께 지내온 존재다.

남산의 최대 매력은 “그저 바라볼 수만 있어도” 좋다는 점에 있다.

 

조선 후기의 문인이자 서화가(書畵家) 이덕무(李德懋)는

멀리 보이는 남산 봉우리의 아름다움을 ‘푸른 눈썹’에 비유했다.

아무리 도시 경쟁력 강화가 급선무라 해도

남산 주변 고층 개발은 도시 정체성을 위해 최대한 자제하는 게 옳다.

적어도 사대문 안에서 남산은 어렵잖게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이참에 남산의 상징인 양 군림하는 남산타워의 존재에 대해서도

생각을 바꿔보면 어떨까?

그것은 남산의 선천적 지체(肢體)가 아닌,

개발 연대와 냉전 시대의 유산에 가깝다.

남산 고유의 아우라와 스케일과도 어울리지 않는다.

 

“단언하건대, 서울의 남산타워는

인류가 대도시에 세운 모든 구조물 중에서 으뜸으로 추악하다.”

서울 토박이 출신 작가 김훈(‘라면을 끓이며’)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