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영옥의 말과 글] [278] 가을이 되면
가을이 되면 가을이 제일 좋다고 말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봄이 오면 봄이 가장 좋다고,
여름이 오면 여름을 최고로 좋아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줏대 없다고 볼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겨울이면 눈이 내려서,
여름이면 좋아하는 복숭아를 실컷 먹을 수 있어서 기쁜 사람이고 싶다.
김연수의 소설집 ‘이토록 평범한 미래’에서
그가 메리 올리버의 시를 얘기하며
“세상은 경이로워!”라고 말하는 것과
“세상을 품에 안을 때 경이로워!”라는 말이 다르다고 말하는 문장을 발견했다.
“’세상을 품에 안을 때 경이롭다’는 말은 경이로움이 내게 달린 문제”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결국 “내가 세상을 안을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인 셈이다.
인생에서 가장 고통스러웠던 몇 년을 보낸 후,
내가 간신히 쓸 수 있었던 건 ‘과거는 변한다’라는 딱 한 문장이었다.
우리는 과거란 이미 지나갔고, 결코 변할 수 없는 고정된 것이라 믿는다.
그러니 이번 생은 망했고, 트라우마 때문에 다시 일어날 수 없을 거라고 절망한다.
하지만 이제 나는 과거가 변할 수 있다는 걸 안다.
되돌아가 고치고 싶은 그 과거는
밝은 쪽으로 미래를 상상하며, 현재를 성실히 살아갈 때 바뀐다.
산 정상에 오르면
나무 가시에 찔리고, 물웅덩이에 빠지고, 기어오르느라 흘린 피와 땀은
다른 의미가 된다.
잭 길버트의 시 ‘변론 취지서’에는
“우리는 과감히 기쁨을 추구해야 한다.
쾌락 없이는 살 수 있지만, 기쁨 없이는 안 된다/
이 세상이라는 무자비한 불구덩이에서 고집스럽게 기쁨을 받아들여야 한다”
라는 구절이 나온다.
이 적확한 시인의 말에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건
‘기쁨’이 아니라 ‘고집스러운 기쁨’이다.
눈이 녹으면 더러워서, 비가 내리면 단풍이 하수구를 막아서,
봄의 꽃가루 알레르기 때문에 이 모든 계절을 싫어한다고 말하는 삶은 어떤 풍경일까.
한 번뿐인 삶을 충만하게 살고 싶다면 우리는 고집스레 기쁨을 찾아내야 한다.
그러니 시인의 말처럼 가을을 가장 좋아한다고 말하자. 그냥 가을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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