男은 폭력적·女는 감정적? 생물학은 말한다, 편견이라고
핀란드 심리학계 조사에 따르면
학생들 싸움 건수에 性差 없어… 男도 스포츠 볼 땐 천생 감정적
차이에 관한 생각
프란스 드 발 지음 | 이충호 옮김 | 세종서적 | 568쪽 | 2만2000원
동물 세계에 대한 관찰은 종종 인간의 행동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최근 몇 년간 한국 사회에서 첨예했던 ‘젠더(Gender∙사회적 성 역할) 논쟁’은
사회학이 아닌 생물학의 렌즈를 통해 그 이견을 좁힐 수 있을지 모른다.
“젠더는 사회적으로 학습되는 것인가, 아니면 선천적인 것인가?”
40년 이상 동물의 행동을 연구해왔고,
미국 에모리대의 석좌교수이자 ‘침팬지 폴리틱스’를 쓴 저자는
동물 세계에도 성별 규범이 나타나는지 확인하기 위한 실험을 한다.
인간 아이들이 갖고 노는 장난감을 침팬지에게 쥐여주기 시작한 것.
침팬지들의 행동은 두 가지로 나뉘었다.
장난감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보기 위해 그것을 찢거나,
장난감을 자신의 새끼인 양 극진히 돌보는 것.
전자는 수컷, 후자는 암컷에게 일어나는 행동이었다.
장난감 유형별로도 유의미한 행동 구분이 일어났다.
바퀴 달린 차량, 공 모양의 장난감은 수컷에게,
인형은 대부분 암컷의 손에 들어갔다.
지금까지 젠더에 대한 주류적 설명은 ‘빈 서판(書板)’ 이론이었다.
‘남자다움’과 ‘여자다움’은
아이의 부모가 자동차 모형이나 인형 같은 장난감 등을 통해
아이들에게 편견을 주입시킴으로써 생겨난다는 것이다.
하지만 침팬지, 보노보 등 인간과 가까운 영장류의 행동을 관찰한 저자는
“후천적으로 학습되는 문화적 영향을 빼놓을 수 없지만,
여성과 남성 사이엔 몇 가지 분명한 차이점이 존재한다”고 결론내린다.
“수컷은 지위를 추구하는 경향이 강하고,
암컷은 자식에게 헌신하며 어린것에 끌리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각각의 성이
자신의 유전자를 다음 세대에 전달하는 독특한 방식 덕분에 진화했다.”
성 구분 자체를 비난하기보단
젠더를 둘러싼 사회적 편견과 불공정을 해결해야 한다는 저자는
생물학과 동물들의 행동 관찰을 토대로 특정 젠더에 덧씌워진 오해들을 풀어나간다.
대표적인 것이 ‘남성은 본래 폭력적이다’라는 명제다.
미국의 과학자 랜디 손힐과 크레이그 파머는 책 ‘강간의 자연사’를 통해
“강간은 생식을 위한 남성의 본능”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저자는
강간범이 항상 자신의 유전자를 널리 퍼뜨리려고 하는 것은 아니며,
생식 연령 범위 밖 여성에게도 강간이 일어난다고 반박한다.
폭력은 소수 남성에게서만 보이는 예외적인 패턴이라는 것.
여성이 평화로운 존재인 것만도 아니다.
핀란드 심리학계의 연구에 따르면,
학생들의 싸움 건수엔 남성과 여성 사이에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녀들 사이 폭력은 거짓 소문이나 따돌림 등 주로 보이지 않는 형태로 나타날 뿐이다.
저자는 남성을 잠재적 가해자로 모는 것보다 성차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중요한 것은 소년들이 여성에 대한 존중을 키우고,
그것을 남성다움의 핵심으로 간주하도록 해야 한다.”
반대로 여성에겐 ‘감정적 존재’라는 뿌리깊은 오명이 아직까지 따라붙는다.
건강하지 못한 수준의 감정을 가리키는 ‘히스테리(Hysteria)’라는 단어는
자궁을 뜻하는 그리스어에서 유래했다.
저자는 “성별에 따라 감정에 휘둘리는 정도가 다르다는 과학적 증거는 전혀 없다”고
주장하며
“스포츠 경기를 보며 ‘이성을 잃을 정도로’ 흥분하는 남성들의 모습을 떠올려보면,
남성 역시 천성적으로 감정적임을 알 수 있다”고 말한다.
감정에 있어서의 젠더 차이는 주로 감정을 표현하는 사회적인 규칙과 관련이 깊다.
인류 사회는 여성에게 슬픔이나 공감처럼 더 부드러운 감정을,
그리고 남성에게는 분노처럼 권력을 강화하는 감정을 잘 표현하게 해왔다는 것이
저자의 말.
인간은 모두 감정적인데,
성별에 따라 그 감정의 종류와 표현방식이 달리 나타나는 것이다.
이외에도 저자는 단체 생활에서의 젠더 편견을 짚는다.
남성이 여성보다 더 위계적이라는 것 역시 미신에 가깝다.
우열 순위(Pecking order∙직역하면 ‘쪼는 순서’)라는 단어는
수탉이 아니라 암탉에서 유래했을 정도로,
거의 모든 동물에서 각각의 성은 수직 방향으로 서열이 매겨진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차이점이라면 동성 집단 내에선 남성이 여성보다 더 빨리 서열을 정한다는 것뿐.
저자는 또한 “좋은 지도자에게는 성별 차이가 없다”고 말한다.
성별에 관계없이 ‘알파(가장 높은 서열에 있는 사람)’들은
약자를 보호하고, 분쟁을 해결하고, 안정을 추구할 줄 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인간과 침팬지, 보노보의 삼각 비교를 통해
성욕, 성과(成果) 경쟁, 집단 내 따돌림 등에 있어
양 성별의 차이가 크지 않다는 결론을 내린다.
동물의 행동을 근거로 한 해석이 인간의 모든 것을 설명해주진 않지만,
그 경향성은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책의 요지는,
성별 차이는 엄연히 존재하지만
그 차이가 메워지지 않는 불평등의 강을 의미하진 않는다는 것.
성차를 인정하는 대신, 현존하는 젠더 차별을 줄이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말이다.
남성과 여성은 서로 다른 행성에서 오지 않았고, 젠더는 인간만의 특성도 아니다.
성별 차이가 자연적인 현상임을 이해할 때,
우리는 젠더를 둘러싼 갈등을 보다 유연하게 풀어낼 수 있다.
꽉 막혀버린 우리 사회의 젠더 논쟁에도 시사점을 준다. 원제 Differ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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