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공부

[선우정] 기구한 이태원

colorprom 2022. 11. 1. 17:29

[만물상] 기구한 이태원

 

입력 2022.11.01 03:08
 

퇴근 때 종종 서울 시청 근처에서 출발해 남산을 넘어 뛰어간다.

하얏트 호텔에서 용산구청까지 이태원의 긴 내리막길을 거치는데 풍경이 다채롭다.

 

한국 최고 부잣집이 즐비하게 나타난다.

그런데 내려갈수록 집이 작아지다가 원룸 서민 동네로 끝난다.

부자와 자취생, 백인과 흑인, 기독교인과 이슬람인이 같은 공간에서 산다.

산책하는 반려견조차 각양각색이다.

 

이태원은 일제가 남산에 도로를 내고 일본인 거주지를 만들면서 주택가가 됐다.

지금 하얏트에서 회나무로로 이어지는 부촌 지역이다.

개발되지 않은 산기슭엔 해방 후 서민들이 몰려들었다. 경리단길 일대가 그곳이다.

용산에 미군이 주둔하면서 조성된 외국인 유흥가가 이태원로 번화가의 시작이다.

 

이런 다양한 역사성이 이태원의 다양성을 만들었다.

유래가 밝건 어둡건 다양성은 한국의 어떤 동네도 흉내 낼 수 없는 이태원의 강점이다.

 

이태원은 젊은 자영업 도전자가 가장 좋아하는 지역이라고 한다.

프랑스 레스토랑에서 나이지리아 토속음식점까지 잘만 만들면 손님이 모인다.

다양한 주민 때문이다.

국적 불명의 창작 요리도 여기선 통한다.

30㎝가 넘는 빅사이즈 신발, 댄스복 등 별별 가게가 다 있다.

게이바를 해도 이태원이라야 성공할 수 있다.

 

이렇다 보니 다양한 사람이 전국에서 몰린다.

번화가의 입지 조건이 없는 경리단길이 일약 명소가 된 것도 이 때문이다.

이태원엔 사람을 당기는 자력이 있다.

 

▶운이라고 해야 하나. 이태원의 시련은 한두번이 아니다.

 

1980년대 이태원은 오늘날 강남 비슷했다.

서울에서 가장 잘나가던 디스코텍, 한국에 피자 시대를 연 피자헛 1호점이

이태원에 있었다.

이 전성기가 ‘에이즈 파동’으로 순식간에 끝났다. 외국인 기피증이 번진 것이다.

 

오랜만에 찾아온 경리단길 붐은 부동산 폭등으로 몇 년 가지 않았다.

 

코로나가 처음 강타한 유흥가도 이곳이었다.

이태원 클럽에서 확진자가 대량 발생하면서 전염병 확산의 주범으로 몰린 것이다.

 

▶참사 다음 날 퇴근길에 이태원을 거쳤다. 이루 말할 수 없이 분위기가 무거웠다.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의 주무대로 유명한 언덕길에서 행인 4~5명을 봤을 뿐이다.

대부분 주점이 문을 닫았다. 뜯겨나간 핼러윈 장식물이 거리를 뒹굴었다.

사고가 일어나지 않았다면 열기가 넘쳤을 날이다.

 

3년 만에 찾아온 부활의 기회가 또 사라졌다.

수많은 젊은 인명이 희생됐다.

에이즈, 코로나 파동을 넘는 충격일 수밖에 없다.

 

언젠가 다시 일어서겠지만, 이태원은 정말 기구한 거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