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기구한 이태원
퇴근 때 종종 서울 시청 근처에서 출발해 남산을 넘어 뛰어간다.
하얏트 호텔에서 용산구청까지 이태원의 긴 내리막길을 거치는데 풍경이 다채롭다.
한국 최고 부잣집이 즐비하게 나타난다.
그런데 내려갈수록 집이 작아지다가 원룸 서민 동네로 끝난다.
부자와 자취생, 백인과 흑인, 기독교인과 이슬람인이 같은 공간에서 산다.
산책하는 반려견조차 각양각색이다.
▶이태원은 일제가 남산에 도로를 내고 일본인 거주지를 만들면서 주택가가 됐다.
지금 하얏트에서 회나무로로 이어지는 부촌 지역이다.
개발되지 않은 산기슭엔 해방 후 서민들이 몰려들었다. 경리단길 일대가 그곳이다.
용산에 미군이 주둔하면서 조성된 외국인 유흥가가 이태원로 번화가의 시작이다.
이런 다양한 역사성이 이태원의 다양성을 만들었다.
유래가 밝건 어둡건 다양성은 한국의 어떤 동네도 흉내 낼 수 없는 이태원의 강점이다.
▶이태원은 젊은 자영업 도전자가 가장 좋아하는 지역이라고 한다.
프랑스 레스토랑에서 나이지리아 토속음식점까지 잘만 만들면 손님이 모인다.
다양한 주민 때문이다.
국적 불명의 창작 요리도 여기선 통한다.
30㎝가 넘는 빅사이즈 신발, 댄스복 등 별별 가게가 다 있다.
게이바를 해도 이태원이라야 성공할 수 있다.
이렇다 보니 다양한 사람이 전국에서 몰린다.
번화가의 입지 조건이 없는 경리단길이 일약 명소가 된 것도 이 때문이다.
이태원엔 사람을 당기는 자력이 있다.
▶운이라고 해야 하나. 이태원의 시련은 한두번이 아니다.
1980년대 이태원은 오늘날 강남 비슷했다.
서울에서 가장 잘나가던 디스코텍, 한국에 피자 시대를 연 피자헛 1호점이
이태원에 있었다.
이 전성기가 ‘에이즈 파동’으로 순식간에 끝났다. 외국인 기피증이 번진 것이다.
오랜만에 찾아온 경리단길 붐은 부동산 폭등으로 몇 년 가지 않았다.
코로나가 처음 강타한 유흥가도 이곳이었다.
이태원 클럽에서 확진자가 대량 발생하면서 전염병 확산의 주범으로 몰린 것이다.
▶참사 다음 날 퇴근길에 이태원을 거쳤다. 이루 말할 수 없이 분위기가 무거웠다.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의 주무대로 유명한 언덕길에서 행인 4~5명을 봤을 뿐이다.
대부분 주점이 문을 닫았다. 뜯겨나간 핼러윈 장식물이 거리를 뒹굴었다.
사고가 일어나지 않았다면 열기가 넘쳤을 날이다.
3년 만에 찾아온 부활의 기회가 또 사라졌다.
수많은 젊은 인명이 희생됐다.
에이즈, 코로나 파동을 넘는 충격일 수밖에 없다.
언젠가 다시 일어서겠지만, 이태원은 정말 기구한 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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