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내부 소통도 외교다
외교의 내막이 대중적 인식과 늘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윤석열 대통령이 유엔총회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공식 정상회담을 못 한 것은
외교 참사’라는 내러티브가 아무리 대중적이라도, 사실관계를 보면 꼭 그렇지는 않다.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후 줄곧 유엔총회 계기 양자 회담에 소극적이었다.
지난해 뉴욕을 찾은 문재인 대통령도 만나지 않았고,
올해도 동맹인 영국·필리핀의 신임 정상들과만 회담했다.
‘윤 대통령이 방한한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을 만나지 않아
현대차가 인플레이션감축법(IRA)상 전기차 세제 혜택을 못 받게 됐다’는 말도 그렇다.
국내에 널리 퍼진 얘기지만 워싱턴DC 전문가들은
“IRA의 전기차 조항은 미국 국내 정치의 산물로 펠로시 방한과는 관련이 없다”고 말한다.
그래서 윤 정부의 외교에 종종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도
뭔가 께름한 그 느낌의 정체를 분명히 짚어내기 힘들었다.
외교를 잘해서가 아니라, 비판의 포인트가 사실과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윤 대통령 취임 140일이 되고 보니
그렇게 대중과 통하지 못하는 것 자체가 문제로 보이기 시작한다.
윤 정부가 대체 어떤 외교·안보 정책을 하려는지 선명히 전달되지 않는다.
그러니 그 메시지 부재의 공간을 불필요한 잡음들이 파고드는 것 같다.
윤 대통령이 유엔총회 연설을 한 다음 날, 북한 인권 운동 관련 인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그는 “김정은이 핵 사용을 법제화한 마당에 어떻게 한국 대통령이 북한 얘기를 안 할 수 있나.
‘담대한 구상’에서 대북 제재 해제를 거론하더니 도대체 뭘 하자는 건가”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한반도를 넘어 자유세계 전체에 공헌하겠다는 윤 정부 외교·안보팀의 이상(理想)은
전달되지 않고,
북한 인권 옹호와 한반도 자유 수호라는 원칙에 충실한지 의심만 받게 된 것 같았다.
대만에 다녀온 펠로시 의장을 만나지 않으면 어떻게 보일지 충분히 고려하지 못하고,
대통령실 내부 일정 계획을 우선하다가 대중 외교의 원칙을 내내 의심받게 된 것이 연상됐다.
윤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의 환담이 ‘외교 참사’ 논란으로 번진 배경에도
메시지 관리 문제가 있었다.
상대가 유엔총회 사이드라인 외교에 몹시 소극적인 바이든 대통령인데,
출발 전 한미 정상회담이 있으리라 발표해 기대감을 너무 높였다.
이런 것을 보면 대통령실과 외교부, 국가안보실과 홍보수석실의 조율은 과연 잘되는지
궁금하다.
윤 정부 외교·안보팀에는 지난 보수 정부 출신 인사가 많다.
경험도 많겠지만 과거 정권을 휘청거리게 만들었던
‘외교 문제에서 국내 여론을 소홀히 하는 경향’이 계속될 여지도 있다.
요즘 미국 국무부를 보면 토니 블링컨 장관부터 국내 여론과 소통을 무척 신경 쓴다.
“대외 정책은 곧 국내 정책”이란다. 새겨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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