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남북] 영부인 순방, 政爭의 악순환
2018년 말 당시 대통령 부인(이하 영부인) 김정숙 여사가 인도를 홀로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수행단에 청와대 외교정책비서관이 포함된 것을 보고
일부 정부 인사가 ‘심각한 문제’라며 제보했다.
외교비서관은 대통령의 비서이지 영부인 참모가 아닌데,
왜 청와대를 비우고 영부인을 따라갔냐는 것이다.
당시 김 여사 일정에는 관광지인 타지마할 방문 외에도
모디 인도 총리, 외교 장관 면담 등이 포함돼 있었다.
다른 정부 인사들 의견을 들어보니
“국가 외교 차원에서 대통령 지시로 비서관이 영부인 활동을 지원할 수 있다”와
“대통령 비서관이 대통령 아닌 다른 사람을 보좌해야 할 법적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로 갈렸다.
지금 와서 잘잘못을 따져보자고 4년 전 얘기를 꺼낸 것은 아니다.
선출 권력이 아닌 대통령 부인의 일거수일투족이 우리 사회에서 정치적으로 얼마나 민감한지
사례를 든 것뿐이다.
영부인은 대통령 해외 순방에 대부분 동행하고 또 개별 일정을 치른다.
여기에는 적지 않은 세금이 들어간다.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는 쪽에서 시비 걸기 딱 좋은 소재다.
“대통령이야 그렇다 쳐도 부인이 굳이 갈 필요가 있는가” “가서 무슨 성과를 냈나”….
쉽게 말해 ‘혈세로 놀러 다니는 거 아니냐’는 얘기다.
이는 한국만의 얘기는 아니다.
미국에서도 한 납세자 단체는 영부인 일정을 매번 추적해 ‘세금값’을 하는지 추궁한다.
이 단체에 따르면
클린턴 대통령 재임 8년간 힐러리 여사는 141차례,
부시 대통령 8년간 로라 여사는 140차례,
오바마 대통령 8년간 미셸 여사는 46차례 해외에 나갔다.
영부인 단독 일정 때는 비행기 삯만 1시간당 1만5846달러(2016년 기준)가 든다고 한다.
2009년에는 오바마 대통령이 순방에서 귀국한 뒤에도 미셸 여사가 프랑스·영국에 남아
어머니, 딸들과 함께 휴가를 보내 난리가 났다.
세금으로 호화 휴가를 즐겼다는 공격이 이어졌다.
백악관은 개인 일정은 자비로 부담했다고 해명했지만,
그럼에도 경호 등에 불필요한 세금을 낭비했다는 지적은 피하지 못했다.
다음 주 예정된 윤석열 대통령의 영국·미국·캐나다 순방을 두고도 또 영부인 이슈가 불거지고 있다.
야당 최고위원은
“많은 예산이 소모되는데 김건희 여사가 왜 꼭 같이 가야 되나”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이 최고위원은 전 정부에서 청와대 대변인을 지냈다.
해외 순방에 수차례 동행했고, 영부인 관련 사항도 직접 브리핑했다.
영부인 동행 관례, 역할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면서도 이런 정치 공세를 편다.
그러자 여당은 바로 “김정숙 여사 때는 어땠냐”며 역공에 나섰다.
한 여권 인사는 “지난해 유엔 총회 때는 코로나 때문에 주최 측에서 인력을 최소화해달라고 했는데
우리만 영부인이 따라가 민폐를 끼쳤다”고 했다.
여야 모두 ‘눈에는 눈, 영부인에는 영부인’이다.
“남의 부인을 정치 공격 좌표로 찍는 행위가 부끄럽고 좀스럽다”고 한 소수 야당 대표 말에
공감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특정 이해관계가 얽히지 않았다면 대통령 순방에 영부인이 따라가고 활동하는 게 문제 될 수 없다.
다만 대통령실은
세간의 여론이 이런 원칙론과는 달리 우호적이지 않다는 점도 한번 돌아보길 바란다.
지난번 윤 대통령의 나토 순방 때는
영부인과 관련해 인사비서관 아내의 동행, 액세서리 등으로 시끄러웠다.
거기서 끝나면 다행이지만,
이런 가십이 대통령 순방 외교 성과라는 본질을 덮는다면 다른 문제다.
반대 세력은 꼬투리 잡을 것 없는지 눈에 불을 켜고 있다.
정면 돌파만이 능사는 아니다.
더 큰 목표를 위해서라면
억울하더라도 영부인 노출을 줄이는 전술적 후퇴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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