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공부

‘끝난 사람’ 되지 않으려면 살림부터 할 줄 알아야지

colorprom 2022. 4. 16. 16:08

[살림하는 중년 남자] ‘끝난 사람’ 되지 않으려면 살림부터 할 줄 알아야지

 

[아무튼, 주말]

 

입력 2022.04.16 03:00
 

일본 소설 ‘끝난 사람’의 주인공은 정년퇴직한 63세 남자다.

퇴직하고 나니 하루아침에 할 일이 아무것도 없어진 신세를 한탄하며

‘나는 끝났구나’ 하고 자조한다.

노인들만 가득한 공원과 도서관은 가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헬스클럽에 갔는데

그곳에도 자신보다 나이 많은 노인들뿐이다.

 

도쿄대 법대를 나와 대형 은행에 취직해 승승장구하던 때를 그리워하며 새 직업을 찾아보지만

그런 이력이 오히려 재취업에 방해가 된다.

사람들은 화려했던 그의 과거를 여전히 대단한 일로 쳐주지만

정작 현재 그를 필요로 하는 곳은 아무 데도 없다.

 

예순이 다 된 아내는 느지막이 미용 기술을 배워 미용실에 다니고 있다.

그때만 해도 ‘아줌마의 심심풀이’ 정도로 생각했지만

이젠 매일 아침 출근할 곳이 있는 아내가 부러울 지경이다.

점심까지 만들어 놓고 출근하는 아내 눈치가 보여 “점심 약속이 있다”고 둘러대고는

편의점 도시락을 사와서 먹는다.

한마디로 처량한 은퇴자다.

 

그런 그가 죽어도 하지 않으려는 일이 부엌일이다.

애당초 부엌에 들어가 본 적이 없어 할 줄 아는 게 없다.

여태껏 승진과 출세를 목표로 몸이 부서져라 일만 했기 때문에

부엌일까지 관심 둘 겨를이 없었다.

게다가 밥하는 게 일이 되는 건 죽기보다 싫다.

아내는 자기 미용실 창업을 준비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데,

할 일이라곤 헬스클럽 가는 일밖에 없는 남편은 여전히 삼시세끼를 모두 아내에게 얻어먹는다.

사는 게 고역이다.

 

흔히들 ‘남편이 먼저 가고 아내가 나중에 가는 게 낫다’고 말하는데

확실히 노년의 남자보다 여자들이 더 독립적이고 활동적인 삶을 사는 것 같다.

 

어머니를 먼저 보내신 아버지는 강원도 시골 농가에서 말년의 시간을 주로 보내셨는데,

가끔 들러보면 자식들이 해다 드린 반찬들을 거의 손대지 않고 계셨다.

혼자 된 친구분이 살고 있는 실버타운에 가보니까 아주 좋더라고 하시면서도

당신이 입주하는 것은 질색하셨다.

며느리들은 왜 그러시는지 모르겠다고 했지만 아들들은 그 이유를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틈틈이 살림에 관심을 갖고 배우는 건

부부의 역할을 하는 것이면서 자신의 미래를 대비하는 것이기도 하다.

어느 날 갑자기 할 일도 없고 할 줄 아는 일도 없다면 얼마나 초라할까.

 

소설 주인공도 결국 가족을 위해 음식을 만들고 청소기도 돌리고 창문도 닦으며

활력을 되찾는다.

온종일 우두커니 소파에 앉아 ‘끝난 사람’이 되기엔 너무나 열심히 살아왔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