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이 아니기를(2022년 4월 16일 토요일)
누가복음 23장 49절 ~ 56절
49예수를 아는 자들과 갈릴리로부터 따라온 여자들도 다 멀리 서서 이 일을 보니라
50공회 의원으로 선하고 의로운 요셉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51(그들의 결의와 행사에 찬성하지 아니한 자라)
그는 유대인의 동네 아리마대 사람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
52그가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여
53이를 내려 세마포로 싸고 아직 사람을 장사한 일이 없는 바위에 판 무덤에 넣어 두니
54이 날은 준비일이요 안식일이 거의 되었더라
55갈릴리에서 예수와 함께 온 여자들이 뒤를 따라
그 무덤과 그의 시체를 어떻게 두었는지를 보고
56돌아가 향품과 향유를 준비하더라
계명을 따라 안식일에 쉬더라
NOT SO
All those who knew him . . . stood at a distance, watching these things.
[ LUKE 23:49 ]
“I wanted somehow to make it not so,” lamented the man,
eulogizing a friend who died young.
His words gave poignancy to humanity’s ageless heart-cry.
한 남자가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친구를 추모하면서
“어떻게든 사실이 아니게 되돌리고 싶구나”라고 하며 애통해 했습니다.
그의 말은 모든 인간이 지금껏 겪어 온 가슴 아픈 절규였습니다.
Death stuns and scars us all.
We ache to undo what can’t be undone.
The longing to “make it not so” might well describe
how Jesus’ followers felt after His death.
죽음은 우리 모두에게 충격과 상처를 줍니다.
되돌릴 수 없는 일을 되돌리고 싶어 괴로워합니다.
“사실이 아니게 되돌리고 싶어” 하는 간절함은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 그를 따르던 사람들의 마음에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The Gospels say little about those awful hours,
but they do record the actions of a few faithful friends.
복음서는 그 무서운 처형의 시간들에 관해서는 아주 짧게 언급하지만
몇몇 신실했던 사람들이 한 일은 자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Joseph, a religious leader who secretly believed in Jesus (SEE JOHN 19:38),
suddenly found the courage to ask Pilate for Jesus’ body (LUKE 23:52).
Ponder for a moment what it would take to remove a body from a grisly crucifixion
and tenderly prepare it for burial (V. 53).
Consider too the devotion and bravery of the women
who stayed with Jesus every step of the way, even to the tomb (V. 55).
남몰래 예수님을 믿었던 종교지도자 요셉은(요한 19:38 참조)
용기를 내어 예수님의 시신을 달라고 빌라도에게 요청했습니다(누가 23:52).
십자가에서 끔찍한 고난을 당한 예수님의 몸을 옮겨 정성껏 장례를 준비하는 것이 어떠했을지
잠시 생각해 보십시오(53절).
그리고 예수님과 무덤에까지 모든 순간을 함께했던 여인들의 헌신과 용기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십시오(55절).
These followers weren’t anticipating a resurrection; they were coming to terms with grief.
The chapter ends without hope, merely a somber,
“Then they went home and prepared spices and perfumes [to embalm Jesus’ body].
But they rested on the Sabbath in obedience to the commandment” (V. 56).
예수님을 따랐던 이 사람들에게 부활의 기대는 없었고
그저 눈앞의 슬픔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누가복음 23장은 아무런 희망도 없이 이렇게 어두운 막을 내립니다.
“돌아가 [예수의 몸에 바르기 위해] 향품과 향유를 준비하더라
계명을 따라 안식일에 쉬더라”(56절).
Little did they know the Sabbath intermission
was setting the stage for history’s most dramatic scene.
Jesus was about to do the unimaginable.
He would make death itself “not so.”
그러나 그 안식일에 인류 역사에 가장 극적인 장면을 위한 무대가 마련되고 있다는 사실을
그들은 모르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상상도 못할 일을 곧 하시기 전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마침내 죽음 자체를 “사실이 아니게 되돌리셨습니다.”
- TIM GUSTAFSON
Where do you turn for comfort when the worst happens?
How do you live as though the resurrection is real?
최악의 상황이 닥칠 때 어디에서 위로를 얻습니까?
어떻게 부활을 사실로 믿고 살 수 있을까요?
Today, Father, I pause to remember
how it must have been that day between Your Son’s crucifixion and His resurrection.
I’m so grateful that He’s reversed sin’s curse for me.
하나님 아버지, 오늘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 사이의 그날에 대해 잠시 생각해 봅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죄의 저주를 복으로 바꿔 주시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사실이 아니기를]
예수를 아는 자들도 다 멀리 서서 이 일을 보니라 [누가복음 23:49]
한 남자가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친구를 추모하면서
“어떻게든 사실이 아니게 되돌리고 싶구나”라고 하며 애통해 했습니다.
그의 말은 모든 인간이 지금껏 겪어 온 가슴 아픈 절규였습니다.
죽음은 우리 모두에게 충격과 상처를 줍니다.
되돌릴 수 없는 일을 되돌리고 싶어 괴로워합니다.
“사실이 아니게 되돌리고 싶어” 하는 간절함은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 그를 따르던 사람들의 마음에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복음서는 그 무서운 처형의 시간들에 관해서는 아주 짧게 언급하지만
몇몇 신실했던 사람들이 한 일은 자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남몰래 예수님을 믿었던 종교지도자 요셉은(요한 19:38 참조)
용기를 내어 예수님의 시신을 달라고 빌라도에게 요청했습니다(누가 23:52).
십자가에서 끔찍한 고난을 당한 예수님의 몸을 옮겨 정성껏 장례를 준비하는 것이 어떠했을지
잠시 생각해 보십시오(53절).
그리고 예수님과 무덤에까지 모든 순간을 함께했던 여인들의 헌신과 용기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십시오(55절).
예수님을 따랐던 이 사람들에게 부활의 기대는 없었고
그저 눈앞의 슬픔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누가복음 23장은 아무런 희망도 없이 이렇게 어두운 막을 내립니다.
“돌아가 [예수의 몸에 바르기 위해] 향품과 향유를 준비하더라
계명을 따라 안식일에 쉬더라”(56절).
그러나 그 안식일에 인류 역사에 가장 극적인 장면을 위한 무대가 마련되고 있다는 사실을
그들은 모르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상상도 못할 일을 곧 하시기 전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마침내 죽음 자체를 “사실이 아니게 되돌리셨습니다.”
최악의 상황이 닥칠 때 어디에서 위로를 얻습니까?
어떻게 부활을 사실로 믿고 살 수 있을까요?
하나님 아버지, 오늘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 사이의 그날에 대해 잠시 생각해 봅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죄의 저주를 복으로 바꿔 주시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 CBS오늘의 양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일터에서 증거하는 삶(2022년 4월 18일 월요일) (0) | 2022.04.19 |
---|---|
이것이 모든 것을 바꿉니다(2022년 4월 17일 일요일) (0) | 2022.04.19 |
평화의 십자가 (0) | 2022.04.16 |
때는 밤이었다 (0) | 2022.04.14 |
사랑으로 인도하심 (0) | 2022.04.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