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 왕따 소녀는 어떻게 노벨 화학상을 받았나
코드 브레이커|월터 아이작슨 지음|조은영 옮김|웅진지식하우스|696쪽|2만4000원
#1. “여자가 무슨 과학을 하겠다고.”
1970년대 말 미국 하와이, 화학을 전공하고 싶다는 제니퍼에게
진학 상담 교사가 말했다. “너, 화학이 뭔지 알기는 하니?”
제니퍼는 굴하지 않았다. “내가 하고 싶다는데 못할 게 뭐람.”
화학과 생화학 과정으로 유명한 캘리포니아 파모나 대학에 지원한 그는
곧 합격 통보를 받았고, 1981년 가을에 입학한다.
#2. 2020년 10월 9일 새벽 2시 53분, 제니퍼는 휴대전화 진동음에 잠을 깼다.
과학 학술지 ‘네이처’ 기자였다.
“이른 시간에 폐를 끼쳐서 죄송하지만,
노벨상 수상에 대한 생각을 들려주실 수 있으신지요.”
“누가 탔는데요?” 제니퍼가 살짝 짜증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아직 못 들으셨어요? 당신과 에마뉘엘 샤르팡티에(프랑스 미생물학자)요!”
스티브 잡스(2011), 레오나르도 다빈치(2017) 등 창의적 혁신가들의 삶을 써 온
전기작가 월터 아이작슨(70)이 이번에는 생명과학으로 관심사를 넓혔다.
책에서 아이작슨은 크리스퍼 유전자 편집 기술 선구자인
2020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 제니퍼 다우드나(58) 미국 버클리대 교수의 삶을 조명한다.
저자 자신이 과학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인지
연구실 내에서의 도전과 실패, 재시도와 성공의 역전극 같은 대단한 드라마는 책에 없다.
대신 아이작슨은 언제나처럼,
남들과 다르다는 인식 때문에 스스로를 ‘이방인’으로 정의하는 어린 영혼이
어떻게 제 안에서 창조성의 불꽃을 찾아가는지에 주목한다.
영문학 교수였던 아버지를 따라 일곱 살 때 하와이로 이주하게 된 다우드나는
학교 친구들로부터 이방인을 업신여기는 말인 ‘하울리(Haole)’라 불린다.
늘 혼자였고, 3학년 때는 따돌림이 심해져 섭식장애까지 겪었다.
소녀는 방어벽을 치고 책 속으로 도피했다.
“내 안에는 아이들이 절대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부분이 있어”라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저자는 이렇게 쓴다.
“많은 창의적인 사람들이 주변과 이질감을 느끼며 자랐다. (…)
자신을 아웃사이더로 느끼는 많은 사람들처럼
다우드나도 인간이 창조된 과정에 대한 호기심을 폭넓게 키워갔다.”
아버지가 권한 제임스 왓슨(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의 저서 ‘이중나선’이
어린 다우드나에게 화학에 대한 흥미를 불러일으켰다.
아이작슨은 “화학 분자의 형태와 구조가 그 분자의 생물학적 기능을 결정한다”는
왓슨의 이론을 마음에 새긴 소녀가 왓슨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이론을 구축하고,
DNA를 넘어 RNA로 관심사를 넓히고,
2012년 인류를 깜짝 놀라게 할 유전자 편집 시스템의 생화학적 메커니즘을 밝혀내고,
왓슨과 마찬가지로 노벨상을 받고,
mRNA 코로나 백신 개발에 힘을 보태기까지의 성장기를 흥미진진하게 펼쳐낸다.
노벨상 수상 당시 “올해의 상은 생명의 코드를 다시 쓰는 것에 돌아갔습니다”라는
스웨덴 왕립과학아카데미 사무총장의 발언이 책 제목에 영감을 줬다.
글쓰기의 대상으로 택한 인물에게서 독자가 배울 만한 점을 명시하는
아이작슨의 자기계발서식 작법은 이번에도 유감없이 발휘된다.
“다우드나는 과학자라면 갖춰야 할 협업 정신을 타고났으면서도,
모든 위대한 혁신가가 그렇듯 본성에는 경쟁적 성향을 갖춘 사람이다.”(14쪽)
“과학계에 있는 여성들은 자신을 홍보하는 일에 소극적인 편이다.
그리고 어느 정도는 이러한 경향의 결과로, 이들의 논문이 인용될 확률이 10% 낮아진다.
다우드나는 그런 함정에 빠지지 않았다.”(158쪽)
저자가 쉽게 쓰려 애썼음에도
책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생화학 이론에 대한 설명은
전공자 아닌 사람들이 이해하기에 쉽지 않다.
과학의 협업적 특성을 강조하기 위해 다우드나의 연구실 동료들까지 일일이 소개한 것도
이 책을 읽는 일을 어렵게 만든다.
그러나
자신의 연구가 인간이라는 종을 통째로 개조할 가능성을 제공했다는
무서운 사실을 깨닫고 히틀러가 나오는 악몽까지 꾸는 다우드나의 모습에서
독자들은 인간적 친밀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다우드나는 말한다.
“과학은 후퇴하지 않습니다. 또한 지식을 일부러 잊을 수도 없지요.
결국 ‘신중한 경로’를 찾아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유전자의 미래를 좌우할 힘을 가졌습니다.
실로 대단하고 두려운 능력이죠.
그러니 우리에게 주어진 힘을 존중하면서 조심스럽게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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