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우리나라

“巨富 기생, 양반 욕보인 농부… 18세기 조선은 격동의 시기”

colorprom 2021. 12. 28. 15:39

“巨富 기생, 양반 욕보인 농부… 18세기 조선은 격동의 시기”

 

‘만오만필’ 발굴·번역한 안대회 교수

 

입력 2021.12.28 03:36
 
 
/김연정 객원기자

안대회(60·사진) 성균관대 교수는 대학생 시절인 1984년 여름

연세대 중앙도서관에서 목록에도 없는 책과 마주했다.

첫장을 펼쳐보니 몰락한 양반 청년이 유리걸식(流離乞食)하다 서울에서 과거시험을 보는데,

그를 꿈에서 본 서울 양반가의 도움을 얻어 마침내 커닝으로 급제했다는

기이한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

저자는 이야기 끝에서 한탄한다.

“아! 길흉화복은 모두 미리 정해져 있으니 사람의 힘으로 어찌해 볼 것이 아니다.”

 

그 책은 학계에 알려지지 않은 1812년(순조 12년)의 야담집 ‘만오만필(晩悟謾筆)’이었다.

저자는 무명의 남인 선비 정현동(鄭顯東·1730~1815)으로 밝혀졌다.

 

교수는 김종하 한국고전번역원 번역위원 등 14명과 함께 최근

‘만오만필’(성균관대 출판부)을 완역해 출간했다.

‘발견’한 지 37년이 지나서야 번역본을 낸 데 대해선

“그동안 다른 일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조선 후기 194개의 야담과 실화 스토리를 기록한 이 책은

역자가 붙인 제목의 리스트만 봐도 흥미롭다.

 

‘비렁뱅이의 출세기’ ‘천연두가 맺어준 인연’ ‘남편을 고발해 죽인 여자’

‘김 첨지의 대를 이어준 과객’ ‘후취의 처녀성’ ‘보쌈당한 홀아비’...

 

신문 사회면 사건 기사를 방불케 하는 이야기들 속에서

18~19세기의 밑바닥 사회상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교수는 “재산 다툼과 여성의 음행 이야기가 많은데,

기생이 돈을 많이 벌어 양반과 결혼하는 에피소드처럼

이전 시대에선 상상할 수 없는 일도 벌어진다”고 했다.

 

말 타고 가는 선비를 농민들이 끌어내려 욕보이는 등 과격한 사건도 소개된다.

 

조선 왕조를 유지했던 신분제도와 윤리가 흔들리고, 여성의 지위가 변화하며,

정절 관념이 퇴색하는 등

사회가 빠르게 바뀌어가는 모습이 고스란히 포착된다는 것이다.

 

“조선의 18세기는 우리가 살아온 21세기 못지않은 격동기였다는 얘기가 됩니다.”

 

‘만오만필’에 실린 이야기의 대부분은 다른 책에서 보고 쓴 것이 아니라,

경기도 광주에 살던 정현동

친지나 과객(過客) 같은 사람들에게 듣고 기록한 내용이라

사료적 가치가 크다고 교수는 설명했다.

 

당시의 과객은 집주인과 대화를 나누며

세상일을 전파하는 기자·블로거·유튜버 역할을 했다는 얘기다.

 

정현동이 이 책을 쓴 것은 83세 때였다.

‘동사강목’을 지은 실학자 안정복의 제자로 학문을 좋아했으나

평생 벼슬길에는 오르지 못했던 저자는,

출세한 사람들에 대한 이중적인 시선을 드러낸다.

 

능력이 없는데도 편법으로 과거에 급제한 자들을 담담히 보며

운명론적 태도를 보이다가도,

‘역경을 꿋꿋이 견디며 재능을 지킨 사람들은 끝내 부와 명예를 얻는다’는

능력주의의 입장 역시 견지하고 있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