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바깥 세상

[영국]명예혁명은 재정혁명

colorprom 2021. 7. 1. 16:13

[차현진의 돈과 세상] [26] 명예혁명은 재정혁명

 

차현진 한국은행 연구조정역

입력 2021.07.01 03:00

 

영국의 마지막 가톨릭 왕 제임스 2세를 몰아낸 명예혁명 주동자 7인을

'불멸의 7인(the immortal seven)'이라 부른다.

슈루즈베리 백작 찰스 탤벗, 데번셔 백작 윌리엄 캐번디시, 댄비 백작 토머스 오즈번,

스카브러 백작 리처드 럼리, 런던 주교 헨리 콤프턴, 오퍼드 백작 에드워드 러셀,

롬니 백작 헨리 시드니 등 일곱 사람.

그림은 훗날 잉글랜드왕 윌리엄 3세가 되는 네덜란드 오라녜공 빌렘에게 보내는

초대장을 쓴 롬니 백작.

그림은 플랑드르와 스페인 출신의 잉글랜드 화가 존 뱁티스트 머디나 경이 그린

'롬니 제1공작 헨리 시드니 초상화'(네덜란드 헤이그 영국 대사관 소장).

존 뱁티스트 머디나

밀턴의 '실락원' 초판 일러스트를 그린 화가로도 널리 알려졌다. /위키피디아

 

쿠데타는 모양새가 중요하다.

권력에 무관심한 사람이 마지못해 추대되는 듯해야 설득력이 있다.

1506년 중종반정이 그랬다.

 

연산군의 폭정을 참다못한 신하들이 거사에 성공한 뒤

연산군의 이복동생인 진성대군을 왕으로 추대했다.

 

1685년 영국 몬머스의 난은 그 반대였다.

찰스 2세의 사생아 몬머스가 삼촌인 제임스 2세의 왕위를 차지하려고

직접 쿠데타에 나섰다가 지지를 얻지 못하여 참수되었다.

 

하지만 제임스 2세는 진짜 정치를 못 했다.

참다못한 신하들이 다시 쿠데타를 모의했다.

설령 실패하더라도 피바람이 덜 불도록 왕의 친딸과 사위를 공동 왕으로 내세웠다.

그 계획은 왕에게 탄압받는 신교도들을 결집하기도 쉬웠다.

제임스 2세는 가톨릭인 반면 딸 부부는 신교도였다.

 

쿠데타 주동 세력 7인은 네덜란드에 있던 왕의 사위 윌리엄에게 초청장을 보냈다.

“폭정에 신음하는 백성들을 못 본 체 마시고 속히 귀국하소서.”

고민하던 윌리엄은 5개월 뒤 네덜란드 군함을 타고 영국에 입국했다.

오랫동안 준비했던 쿠데타의 화룡점정이었다.

보름 뒤 왕은 프랑스로 망명했다. 명예혁명이다.

 

주동자 7인을 ‘불멸의 7인(immortal 7)’이라 부른다.

불멸의 의지로 제임스 2세의 폭정을 버티다가 혁명 뒤에 팔자가 핀 사람들이다.

그들은 쿠데타의 성공을 확신했다.

 

당시 신생 독립국 네덜란드는 유럽에서 민주주의와 상업이 가장 발달한 곳이었다.

영주가 상인들에게 함부로 돈을 뜯지 않았다.

네덜란드의 선진 문물을 목격한 윌리엄은 난폭한 징세를 자제할 것 같았다.

윌리엄의 배가 영국에 도착했을 때 상인들은 일제히 그의 편에 섰다.

 

윌리엄 왕은 일단 상인들의 돈으로 중앙은행을 세우고,

그 은행에서 차입하는 방식으로 재정 적자를 해결했다.

시민들은 그런 민주적인 방법이 반갑고 놀라울 뿐이었다.

그래서 경제학자들은 명예혁명재정혁명이라 부른다.

 

어제는 재정혁명이 잉태된 날이다.

1688년 불멸의 7인이 쿠데타 기획서, 즉 초청장을 금융 선진국 네덜란드로 부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