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세상

[영화] ‘자산어보’

colorprom 2021. 5. 28. 18:55

[민태기의 사이언스토리]

끊임없는 질문과 의심… ‘격물치지’ 정신 잃으면 과학도 나라도 퇴보한다

 

민태기 에스엔에치 연구소장

입력 2021.05.28 03:00

 

최근 개봉한 영화자산어보’는 조선 후기 유학자 정약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정약용의 형이기도 한 정약전은 유배된 흑산도에서 해양 생물을 연구하고 기록한 인물.

 

그러나 영화의 내용은 정약전의 바다 탐구에 그치지 않는다.

무엇보다 유교 경전 ‘대학(大學)’의 첫 구절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장면이 눈길을 끈다.

대학의 길은 밝은 덕(德)을 밝히고 백성을 새롭게 하며 지극한 선(善)에 머무는 데 있다

로 시작하는 첫 문장은

잘 알려진 ‘수신제가(修身齊家)’와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를 거쳐

격물치지(格物致知)’로 마무리된다.

 

격물치지를 끝에 배치한 것은

사물을 탐구하여 앎에 이른다격물치지배움의 출발점이라는 의미이다.

여기서 유학과학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알 수 있다.

일러스트=이철원

 

권력을 가지려고 학문에 목매던 시대에 정약전격물치지에 몰두했다.

자산어보의 서문에 자신을 박물학자(博物學者)로 부른 그는

“애매하고 끝 모를 사람 공부 대신 자명하고 명징한 사물 공부”를 선택한다.

 

정약전사물 공부는 흑산도 청년 창대의 도움으로 가능했지만,

정작 창대사람 공부로 세상을 바꾸겠다며 떠난다.

 

현실 정치에 뛰어든 창대의 부딪히고 꺾이는 모습은

갑오징어의 특징을 담담히 읊조리는 정약전의 내레이션에 오버랩되며,

영화는 저무는 왕조에서 성리학적 세계관이 얼마나 무력한지를 잔인하게 드러낸다.

 

영화가 격물치지의 과학을 소환한 것은

단지 조선의 유학자들이 서양 문물에 어두웠다거나 정쟁에만 몰두했다는 푸념이 아니다.

오히려 격물치지를 강조한 대학의 첫 구절을 반복하며

당시 지식인들의 유학에 대한 복잡한 감정을 담아낸다.

 

성리학은 고려 말의 혼란으로 고통받는 백성들의 현실을 외면할 수 없던

사대부들이 도입한 사상이다.

현실 도피에 빠진 불교허학(虛學)이라 비판하며

실학(實學)이라는 용어가 우리나라에 처음 등장하는 것도 이 무렵으로

당시 사대부들은 성리학실학이라 불렀다.

 

새로운 사회를 바라는 그들에게

유학은 실사구시의 과학이었고 현실 개혁의 강력한 도구였다.

정약용정약전도 뼛속 깊이 사대부였고 유학자들이었다.

‘박물학자’라는 단어가 18세기와 19세기 서구에서 유행한

자연사(natural history)를 연구하는 학자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이들은 이미 서양 과학의 흐름도 파악하고 있었다.

그들의 고민은 형이상학에 빠져버린 유학을 어떻게 현실로 되돌릴 것인가였다.

 

공자의 사상이 원래부터 추상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조선 교육의 상징인 국립 대학 성균관(成均館)의

‘성(成)’은 악기 연주를 뜻하고, ‘균(均)’은 악기의 조율을 의미한다.

인재를 가르치는 것을 음악에 비유한 것이다.

집대성(集大成)’ 역시 맹자공자의 위대함을 음악으로 설명한 단어이다.

다양한 악기들을 ‘모은[集]’ 오케스트라처럼 공자 역시 여러 사상을 잘 조화시켰다는 뜻이다.

따라서 성인(聖人) 공자의 위패를 모시는 성균관 대성전의 한문 표기는

‘大聖殿’이 아니라 ‘大成殿’이다.

 

더욱이 공자가 제자들에게 가르친 과목은

예절[禮], 음악[樂], 활쏘기[射], 말타기[御], 글쓰기[書], 수학[數]으로서,

성리학적 이상형은 문·이과를 통합하는 사고방식에 예체능도 겸비한 르네상스형 인재였다.

 

성리학적 이상에 따라 나라를 세운 조선학자들은 호기롭고 거침이 없었다.

음운 체계를 과학적으로 연구해 독창적인 문자 한글을 만들었고,

음악에 대한 깊은 이해로 음의 높낮이를 정하는 물리적 방법을 개발했으며,

중국보다 앞선 천문 수학으로 칠정산을 편찬했다.

 

당시 유럽은 1년 길이에 대한 계산 오차로

봄에 와야 할 춘분이 겨울로 다가서는 혼란에 빠져 있었다.

 

화포를 개선하고 거북선이 등장한 것도 조선 초의 일이다.

이외에도 고려 활자의 개량이나 기상 관측 등의 성과를 본다면

조선의 유학자들이 추구한 이상은 지극히 현실적이며 사람을 향해 있었다.

 

하지만 조선 중기를 거치며

선비들에게 유학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이념이 되었고, 공부는 출세의 수단으로 변질한다.

 

이에 분개한 남명 조식퇴계 이황에게 다음과 같은 내용의 편지를 보낸다.

“요즘 공부하는 자들을 보니, 손으로 물 뿌리고 빗자루 쓰는 법도 모르면서

입으로 하늘의 이치를 논하고 있다”며 성리학의 퇴행을 막아 달라고 호소한다.

 

퇴계 역시 도산서당을 지으며 직접 설계 도면을 그리고 공사를 진두지휘할 정도로

사물의 이치에 밝은 유학자였다.

 

영화에서 정약전이 손수 마당을 비질하는 모습과 이에 사람들이 놀라는 장면은

남명퇴계에게 전한 우려를 상기시킨다.

 

격물치지를 오늘날의 물리학과 같은 구체적인 과학으로 보기는 힘들다.

그보다는 과학적인 방법론이나 비판적인 태도로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형이상학을 비판하며 등장한 성리학

어느 순간 현실과 동떨어진 책상머리 학문이 되어버렸다는 점이다.

같은 맥락에서

성리학적 세계관을 대체한 현재의 과학이 이러한 길을 가지 않으리라고 장담하긴 쉽지 않다.

 

영화는 “외우기만 하는 공부”가 나라를 망쳤다며 일갈한다.

성리학을 절대 진리로 믿었기에 외워야 했을 것이고,

그래서 이데올로기가 되어버렸으며,

끊임없이 의심하고 질문을 던져야 할 격물치지의 과학은 힘을 잃었다.

 

과연 오늘날 우리가 과학을 대하는 모습은 이러한 비판에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까.

이것이 격물치지의 과학을 이 시점에 다시 한번 곰곰이 생각해야 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