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

김종철 정의당 대표

colorprom 2020. 12. 14. 14:27

“여당이 배신해도 의석수 열세라 어쩌겠나, 우리의 길 가는 것뿐”

 

[최보식이 만난 사람] 김종철 정의당 대표

 

진보진영의 금기를 깨려는데 이렇게 하면 민주당 ‘2중대’, 저러면 ‘국민의 힘 2중대’ 비난
치열한 토론 하되 최종 발언권은 반대 입장의 상대에게 양보… 끝까지 자기주장 하면 틀어져

 

최보식 선임기자

 

입력 2020.12.14 03:00

 

민주당과 그 ‘2중대’ 소리를 듣던 정의당 간에 연속 파열음이 날 때 김종철(50) 대표를 만났다. 그에게는 어려운 자리일 수 있었다.

“생각이 달라서 논쟁을 할지언정, 대화 자체를 거부하지 않는다. 정치는 모든 국민을 상대로 하니까 인터뷰를 피할 이유가 없었다.”

권영길·노회찬 등의 비서로 일했던 그는 ‘진보 정치 2세대’에 속한다. 그동안 총선·지방선거에서 도합 일곱 번 떨어졌던 그가 한 달 전 당 대표로 선출됐다. 그의 당선 일성(一聲)은 ‘진보 진영의 금기를 깨겠다’는 것이었다.

김종철 대표는 “생각이 달라 논쟁을 할지언정 대화 자체를 거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고운호 기자

-민주당과의 관계도 새롭게 설정할 건가?

“진보 가치를 위한 우리의 길을 제대로 가려고 한다. 그 가치에 동의하면 정책 사안별로 국민의힘과도 함께 하겠다. 쉽지 않은 길임은 분명하다. 이렇게 하면 ‘민주당 2중대’ 소릴 듣고, 저러면 ‘국민의힘 2중대’로 비난받는다.”

-얼마 전 김남국 민주당 의원이 정의당의 여성 원외 대변인에게 낙태죄 공청회 관련 브리핑에 대해 항의하며 ‘앞으로 정의당이 내는 법안을 돕지 않겠다’고 말해 논란이 됐는데?

“브리핑 내용에 항의할 수 있지만 그의 언행에는 문제가 많았다. 우리 대변인이 ‘집권 여당 국회의원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명백한 갑질이며 협박’이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이는 개별 의원의 문제이지, 당(黨) 차원으로 확전할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우리에게 거짓말했다

-’공정거래위원회 전속고발권 폐지'를 놓고 민주당의 약속 뒤집기로 또 갈등이 있었는데?

“민주당이 그 조항을 폐지하겠다고 해놓고는 우리에게 거짓말했다. 완전히 기만한 거다.”

-민주당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입법에도 말만 하고 협조하지 않았다. 민주당에 이처럼 일방적으로 당하고 감정의 골이 생긴 것은 처음 아닌가?

“그렇다. 여당 대표가 말로만 찬성하고 국회 안건으로는 채택조차 안 됐다. 의석수 열세라 우리 당으로서는 어떻게 해볼 수 없다. 배신감을 많이 느낀다. 격한 표현은 쓰고 싶지 않다. 그런다고 우리 당 지지가 높아지지 않을 테니까.”

-’중대재해처벌법'에 당력을 집중하는 것 같은데, 산업재해는 현장에서 안전 규정을 안 지켜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사업주에게 사고에 대한 형사 책임까지 묻는 게 옳은가?

“한 해 2000명 안팎의 노동자가 사고로 숨진다. 산재가 발생하면 하청업체나 현장 사람들에게 책임을 떠넘겨왔다. 가령 산재 사망의 43%가 추락사다. 이는 원청업체가 공기(工期) 단축을 요구해 하청업체는 그물안전망 설치 없이 공사부터 들어가기 때문이다. 원청업체 대표에게 책임을 묻겠다면 이런 일 안 벌어진다.”

-산업안전보건법에도 안전 조치를 소홀히 해 노동자가 사망하면 ‘사업자에게 7년 이하 징역이나 1억원 이하 벌금’을 부과하고 있다. 그럼에도 ‘중대재해처벌법’을 또 만드는 것은 중복·과잉 아닌가?

“코로나로 일감이 줄어든 올 상반기만 해도 1100명이 죽었다. 임금 몇 푼 문제가 아니라 노동자의 인명 손상이 관계된 문제라 사업주에게도 책임을 묻자는 것이다. 처벌을 목표로 하는 게 아니라 사업장 운영 주체의 책임을 각성시키는 것이다. 처벌 하한선을 줄이고 입증 책임을 엄격하게 하는 선에서 타협할 생각도 있다.”

-당신은 서울대 경제학과를 나왔고 1995년부터 병역특례로 4년간 벤처회사에서 근무한 걸로 안다. 기업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해가 그래도 있지 않나?

“당연하다. 월급날이 돌아오면 괴로워하던 사장의 모습을 봤다. 어려움 속에서 기업을 꾸려나가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런데 현 정권도 그렇고, 좌파 정당은 왜 기업 규제에만 열 올리는가? 복지국가를 꿈꾼다면서 그 돈을 벌어주는 기업을 계속 코너로 몰고있다.

“우리가 기업을 때려잡거나 절대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어떤 기업에서는 여전히 노동 조건이 열악하다.”

-당시 직장 생활은 어떠했나?

“벤처기업이라 ‘과로사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일이 많았다. 이렇게 장시간 노동하며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회의도 들었다.”

-보통 사람은 다들 참고 일한다. 그렇게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에 의해 한국 사회가 이만큼 성장했고 돌아간다고 생각지 않나?

“그런 면을 인정한다. 병역특례가 끝난 뒤 남은 한 학기를 마치고 회사로 다시 돌아가려고 했다. 장래성 있고 계속 성장하는 회사였다. 하지만 당시 IMF를 맞아 거리에 실업자가 넘쳐났다. 사회적 약자들을 모른 체 하고 살아도 되나 많이 고민했다. 결국 회사 복직 대신 권영길 민주노동당 대표의 비서로 들어갔다. 행복의 관점에서도 장시간 노동을 해야 하는 사회구조는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4지 선답형’ 연금개혁안

-노동시간은 사업장 자율에 맡겨 협의하면 되는 것이다. 현 정권에서 주 52시간제를 일률 적용해 오히려 여러 문제점이 나타나고 변칙이 생겼다. 민노총 등에 가입된 대기업·공기업 노조원들은 노동시간 단축을 원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런 조직에 들어있지 않는 중소기업 노동자들이 훨씬 더 많다. 이들은 소득을 위해 더 많이 일하기를 원하는데?

“저소득 노동자들은 더 많은 노동을 원한다는 걸 알고 있다.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것인데.... 장시간 노동이 일상화되면 우리 사회가 좋아질 수 있겠나. 그래도 주 60시간에서 52시간으로 단번에 줄인 것은 무리였다고 본다.”

 

 

-민노총 등은 노동 기득권이다. 숫자나 조직력에서 누구도 못 건드린다. 정의당은 기득권 노동자를 대변하나? 아니면 이런 보호 울타리가 없는 노동자들과 비정규직, 자영업자를 대변하나?

“노동 개혁은 민감한 문제이기는 하나, 노조 역시 고민해봐야 할 상황이 됐다. 정부가 나서서 소득 재분배 역할도 맡아줘야 한다. 그러려면 세수(稅收)가 많아야 한다. 현 정권은 부유층 증세만 하고 있다. 못사는 사람들도 얼마씩 세금을 내야 한다고 본다.”

-우리나라는 소득 상위 1%가 전체 소득세의 40%를 부담한다. 반면 소득세 면세자의 비율은 38%다.

“세금은 사회 연대적 성격이 있다. 여러 사람들이 함께하는 저녁 식사에서 각자 형편에 맞게 식사비를 내야 식사 자리는 계속 유지될 수 있다.”

-당신은 공무원연금과 사학연금, 국민연금을 통합하는 개혁을 주장했는데?

“문재인 대통령은 연금 개혁 4개 안을 내놓은 적 있다. 국회에서 선택해달라는 것이다. ‘4지 선답형’으로 국회에 문제 내는 것도 아니고, 나라 장래를 위해 해야 할 개혁이라면 확실하게 해야 한다.”

-정권을 잡고나면 욕먹고 표떨어지는 개혁에는 손을 안 대려고 한다.

“정치란 그런 걸 하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닌가. 공공 부문 임금 체계도 바꿔야 한다. 스웨덴 공공 부문 임금은 민간 부문의 96%인데, 우리나라는 175%다. 복지 서비스 확대를 위해 공공 부문이 늘어나야 하는데 이대로라면 불가능하다. 문재인 정권은 우리 당의 진보적 의제인 노동시간 단축, 문재인 케어, 탈원전 등을 많이 수용했지만, 근본적 개혁에는 너무 미흡하다.”

-그건 아니다. 오히려 너무 급진적인 좌파 개혁을 많이 밀어붙여 우리 사회에 심각한 문제를 안기고 있다. 진보 의제로서 ‘탈원전’ 추진을 말했지만 이는 재앙이 되고 있다. 현실과 어긋나면 정책을 교정해야 하는데, 원리주의에 빠져있는 격이다.

“원전은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는 긍정 측면이 있지만, 좁은 국토에서 원전 사고가 나면 아노미 상태가 된다. 핵 폐기물 처리 문제도 있다.”

-원전은 기술적으로 폭발 사고가 날 수 없는 구조다. 고장이 생겨도 차단 막이 몇 겹으로 돼있다. 원전은 이산화탄소 배출이 없고 친환경 에너지인데, 정의당은 왜 탈원전에 집착하는가? 대중(大衆) 정당이 되려면 일반 국민의 상식과 합리에서 크게 벗어나면 안 된다.

“참고는 하겠다. 어쨌든 우리 당은 재생에너지를 계속 늘리고 지역마다 소형 천연가스 발전소를 짓는 쪽으로 가야 한다는 입장이다.”

-정의당은 한때 청년들이 호감을 갖는 정당이었다. 하지만 ‘내로남불’ 조국에게 동조하면서 이들은 등을 돌렸는데?

“공수처와 선거법 등 개혁 입법 공조를 하고 있었기에 그때 그럴 수밖에 없었다. 실제 지지율이 가장 떨어진 것은 지난 2월 위성 정당이 출현하면서였다. 민주당까지 위성 정당을 만들었을 때 배신감을 느꼈다. 이는 선거법 정신에 맞지 않았다.”

여당의 비토권

-연동형비례대표제는 사실 대통령제와 맞지 않는다. 이는 권력 구조를 먼저 내각제로 개편한 뒤 채택돼야 하는 것이었다.

“동의한다. 양당제에서는 자신의 당을 적극적으로 홍보하기보다 저쪽 당을 심판해달라는 식으로 상대를 악마화한다.”

-민주당이 공수처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정의당 의원 한 명은 표결에 기권했는데?

“공수처법은 고(故) 노회찬 의원이 맨 처음 발의했다. 검찰 개혁을 위해 공수처 설치는 필요하다고 본다. 하지만 공수처장 추천에서 야당의 비토권만 없애버린 이번 개정안은 문제가 있다. 야당에게 비토권을 빼았으면 공평하게 정부·여당이 가진 비토권도 내놓아야 한다. 공수처의 정치적 중립성을 확보하는 방안이 반드시 갖춰져야 한다.”

-너무 센 검찰 권력의 분산과 견제는 필요하다. 검찰이 정치에 개입해 장난 칠 때가 많았다. 하지만 윤석열 총장이 지난 정권에 대해 수사를 할 때는 ‘우리 총장님’이라고 박수치다가, 자신을 향해 수사의 칼날을 돌리자 정치 검찰이라고 내쫓으려고 한다. 현 정권이 기를 쓰고 공수처 설치를 서두르는 것도 이런 연장 선상에 있다고 보는데?

“그가 말을 안 들어 공수처를 한다는 것은 시간적 선후(先後)가 맞지 않는다. 공수처법이 통과되고 난 뒤에 윤석열 총장이 임명됐다. 공수처가 만능은 아니지만, 자신의 부정 비리를 감싸왔던 무소불위 검찰에 대한 견제 기능은 있다고 본다.”

-청와대나 여당 사람들은 소위 보수 언론과는 만나려 하지 않는다고 들었다. 문빠 등 극렬 지지층의 눈치를 보기 때문이다. 당신이 이끄는 정의당은 현실에 기반을 두고 반대쪽 의견을 더 많이 듣고서 정책과 노선을 만들어갔으면 한다.

“내 지론은 치열하게 토론하되 마지막 발언권은 반대 입장의 상대에게 양보하는 것이다. 결정적으로 틀어지고 갈라지는 것은 마지막까지 자기 주장을 하려고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