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2040] 한양도성 성벽에 담긴 역사
백악산~인왕산 아우른 한양도성, 조선 시대 역사 관통하며 보수
입력 2020.11.27 03:00
이달 초 북악산(옛 이름 백악산) 북측 탐방로가 새로 개방됐다. 1968년 김신조 등 북한 특수부대 일당이 청와대를 습격한 ‘1·21 사태’ 이후 민간의 출입이 통제됐던 곳이다. 한양도성 성곽길로만 탐방할 수 있던 북악산을 이제는 서울 종로구 부암동 토끼굴과 북악스카이웨이 등 추가로 열린 출입구 4곳을 통해서도 오를 수 있다. 개방 전과 비교해 탐방객이 5배 늘었을 정도로 관심이 뜨겁다고 한다.
지난 6일 문화재청 출입기자단 10여 명이 시민 품으로 돌아온 탐방로를 함께 걸었다. 늦단풍 붉게 물든 산길을 따라 당시 김신조 일당과 우리 측이 벌인 교전 흔적이 뚜렷한 소나무를 지나 명승 백석동천에 이르기까지 3시간이 꼬박 걸렸다. 청운대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서울 도심 풍경은 압권이었다. 경복궁과 광화문 너머로 직장이 있는 태평로 일대가 뻗어있고, 남산타워와 멀리 관악산까지 한눈에 들어왔다. 왜 태조 이성계가 백악산 능선을 따라 길게 뻗은 백악구간에서 한양도성 건설을 시작했는지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북악산 북측 탐방로에서 보이는 한양도성. /허윤희 기자
하이라이트는 한양도성이다. 조선 왕조 도읍지인 한성부 도심의 경계를 표시하고 왕조의 권위를 드러내며 외부의 침입을 막기 위해 축조된 성. 백악산과 낙산, 남산, 인왕산 능선을 따라 조성돼 전체 길이 18.6㎞에 이른다. 태조는 개국 직후 수도 정비 사업 중 한양도성 건설에 가장 큰 열정을 보였다. 종묘 공사 현장에 3번, 사직은 한 번 행차했으나 한양도성은 7번이나 직접 돌아봤다고 한다. 태조 이후 세종, 숙종, 순조 때 대규모 보수·관리 공사를 통해 그 모습을 유지해왔다.
한양도성 성벽에는 낡거나 부서진 것을 손보고 고친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시기별로 다른 돌 모양과 축성 기술의 발달 과정이 그대로 보인다. 가장 먼저 도성이 축조된 태조 때 사용한 돌은 거칠다. 1396년 1월과 8월, 두 차례 공사를 98일 만에 완공했기 때문에 자연석을 거칠게 다듬어 썼다. 세종 때는 도성을 재정비하면서 메주 모양의 직사각형 돌로 다듬어 썼고, 임진왜란을 겪은 후인 숙종대에는 가로 세로 40~45㎝ 내외로 규격화해 이전보다 성벽이 더 견고해졌다. 순조대에 이르면 가로 세로 60㎝로 돌이 더 커진다. 홍성규 해설사는 “청운대 쉼터에서 곡장 전망대에 이르는 300m 구간이 한양도성 전체 중 축조 시기별 차이를 가장 잘 드러낸다”고 했다.
시기별 개성을 뚜렷하게 내보이는 성벽을 보면서 한편으론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후대 왕들이 천편일률적으로 최초 축성 당시의 규격과 기술로 복원했다면 지금 한양도성은 어떤 모습일까. 무너지고 고쳐 쌓으면서 켜켜이 누적된 역사적 가치, 시대를 고증하는 스토리텔링의 매력도 반감됐을 것이다. 숭례문 복원 당시 일화가 떠오른 것도 그 때문이다. 당시 문화재청은 ‘전통 기법으로 복원하겠다’고 큰소리쳤지만, 개량 한복 입은 인부들이 거중기로 석재를 들어 올리는 쇼를 보여줬을 뿐 대장간에서 전통 못 하나 만들지 못하고 우왕좌왕했다. 우수한 재료와 발달된 현대 공법이 있는데도 ‘당시 재료를 그대로 쓴다’는 전통 강박 때문에 자승자박한 꼴이다.
우리 문화재 복원 철학도 이제 좀 유연해졌으면 좋겠다. 전통미를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21세기 기술과 과학의 힘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문화재를 복원한다는 것은 우리 시대의 정신을 담아 보다 발전된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전통은 한순간의 최선이 아니라 누적된 최선을 통해 쌓여 간다는 것을 한양도성의 개성 강한 성벽이 말해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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