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태 KAIST교수

“경제민주화·공정경제 개혁"

colorprom 2020. 11. 23. 15:17

 

[이병태의 경제 돌직구]

“경제민주화·공정경제 개혁은 국가가 기업 장악하겠다는 것”

 

 

경제민주화는 자본가 없는 세상 꿈꾸는 ‘위장된 사회주의’ 실험
외국은 허용하는 피라미드구조·상호출자 등… 한국만 규제 강화
대주주 차등의결권 확대 없으면 4차산업혁명 혁신경쟁력 둔화

 

이병태 교수

 

입력 2020.11.23 03:00

 

 

문재인 정부 들어 제조업 일자리는 계속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다.

소득 격차는 정권 희망과 달리 역대 최고 수준으로 커진다.

시장 원리를 무시한 주택 정책은 또 어떤가.

시장의 반격이 거세게 진행 중일 뿐 아니라 사실상 ‘거주 이전의 자유’를 빼앗는

‘부동산 사회주의’를 실험하는 모양새다.

 

그럼에도 이제 또 하나의 이단적 경제 실험을 감행할 기세다.

‘공정경제’와 ‘경제민주화’를 앞세운 기업의 지배구조 규제 시도다.

 

문 정부는 “재벌 총수 일가는 기업 범죄의 몸통”이라며 재벌의 지배구조를 개혁하겠다고

‘공정 경제’ 법안들을 밀어붙이고 있다.

집단소송제, 징벌적 배상제도, ‘삼성생명법’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지분을 매각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보험업법 개정안)까지

기업 규제 쓰나미가 몰려오고 있다.

 

제조업 일자리 성장률, 글로벌 재벌 세습경영, 유럽국가들의 경영권 보호제도

문 대통령과 그 주변 진보 학자들은 우리 경제 문제 대부분을 재벌의 잘못된 지배구조에서 찾고 있다. 하지만 재벌 가문과 재벌 기업군은 전 세계에 보편적으로 존재한다. 한국에만 있는 특이한 현상이 아니다. 프랑스 에르메스 가문과 미국 카길 그룹은 6대에 걸쳐 거대 기업군을 세습 경영하고 있다. 재산이 삼성 일가의 10배가 넘는 월턴 가문이 월마트를 3대째 장악하고 있고, 포드 가문 역시 4대째 포드자동차를 경영하며 5대 후손들도 경영 수업 중이다. 소유와 경영이 분리되지

않고 대를 이어 경영권이 세습되는 나라는 우리 말고도 흔하다.

선단식 경영이 효율적일 수 있다

투자 대가 워런 버핏이 운영하는 버크셔 해서웨이는 60곳이 넘는 자회사를 통해 보험을 주축으로 하는 금융, 자동차 부품, 윤활유와 의류 등의 제조 회사, 철도, 항공 등의 교통 산업, 그리고 에너지, 유통과 서비스 산업 등 안 하는 사업이 없다. 160년 역사의 스웨덴의 발렌베리 가문 또한 자동차, 전자, 제약, 건설, 통신, 금융 등의 광범위한 다각화 선단 경영을 하고 있다.

홍콩중문대 경영대 윌리엄 완 교수는 글로벌 인재와 자금이 시장에서 손쉽게 조달이 되는 나라에서는 기업들이 시장 혁신에 집중하고 전문화가 되는 반면, 이런 시장 기능이 미숙한 나라에서는 자원을 국가 권력이 배분한다. 경영 자원 조달 능력이 승패를 좌우하는 이상, 기업 내부 시장을 통해 자원을 개발하고 조달할 수밖에 없기에 선단식 경영이 필수적이라고 분석한다.

재벌 기업이 소규모 지분으로 거대 기업을 지배하는 피라미드 구조는 비판의 대상이지만 유럽 국가들은 피라미드 구조와 상호 출자, 주주 간 계약을 100% 허용하고 차등의결권, 황금주 등 다양한 경영권 보호 수단이 허용되고 있다. 피라미드 구조와 상호 출자의 결합이 불법이거나 불온시하는 나라는 한국뿐이다. 재벌이 과도하게 경제를 장악해서 창업 경제가 원활하지 않고 경제 혁신에 의한 신진대사가 막혀 있다고 비난하지만, 2020년 포브스지 선정 한국의 부호 중 거의 절반이 자수성가한 기업가들이고 특히 테크 분야 부호 14명 중 11명은 디지털 경제 시대 창업가들이다. 문 정부 인사들이 1970~1980년대 화석화된 인식에 갇혀 있음을 보여주는 자료다.

하청 기업 착취는 잘못된 신화

대기업이 하청 기업을 착취한다는 공세도 현실을 모르는 소리다. 2016년 애플 영업이익률은 28%인 반면 대만에 있는 애플 제조 하청 3사 영업이익률은 1~4%에 불과하다. 기업이 능력보다 물건을 비싸게 사서 원가를 높여야 한다는 주장을 상생과 동반 성장이라는 미사여구로 강요하는 건 결과적으로 세계시장에서 우리 대기업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결과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재벌 기업이 중소기업 기술을 탈취한다는 주장도 실체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2010년에서 2017년 사이 재벌 기업이 하청 업체 재산권 보호 규정을 위반해서 과징금을 받은 사례는 1건이다. 최근 중기부 보고서 역시 대기업으로의 기술 유출로 의심된 건 2015년 1건뿐인데 대기업 기술 탈취가 “만연하다”고 주장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재벌이 내부 거래를 통해 사익을 편취한다는 주장 역시 실증적으로는 내부 거래 비율이 높은 기업이 장기적 성과도 더 높다는 사실을 간과한다. OECD 최근 보고서는 오너 경영 회사들이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기업보다 대체적으로 성과가 높다는 것을 보여준다.

특히 4차 산업혁명의 기술 혁신이 기업의 승패를 좌우하는 경향으로 전 세계적으로 소유·경영의 분리에서 경영권 강화 중심으로 패러다임이 급하게 전환되고 있다는 점이다.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등 대부분 주요 선도기업은 창업자가 차등의결권으로 기업을 완전 장악하고 있다. 테슬라 역시 대주주인 창업자가 주요 의사 결정를 하고 이를 바꾸려면 주주 과반이 아닌 3분의 2가 동의하도록 정관을 둔 탓에 창업자 머스크 이외 주주들의 90%가 찬성하지 않는 한 그의 의사 결정을 바꿀 수 없는 구조다.

헤지펀드 공격에 대해 방어해야

헤지펀드 등 단기 이익만을 추구하는 행동주의 펀드의 부상은 경영권의 중요성을 상기시키고 있다. 행동주의 펀드가 부실 기업 구조조정에 긍정적인 기능을 맡기도 하지만 단기 이익에 집착, 기업을 파괴하는 사례가 나오기 때문이다. 넷플릭스의 도전으로 역사에서 사라진 블록버스터는 새로운 CEO와 칼 아이컨 헤지펀드 사이 갈등 때문에 제대로 된 구조조정에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몰락했다.

재벌 개혁의 뿌리는 경제민주화라는 의심스런 사상이 깔려 있다. 이는 독일에서 바이마르공화국의 실패와 나치의 비극적 역사를 경험하고 나서 공산주의 사회를 앙망하는 세력이 중간 단계로 사회주의 실현 방안으로 제시한 ‘조직 자본주의' 사상을 근본으로 하고 있다. 조직화된 노조가 경영에 참여하여 자본가를 제약함으로써 기업과 경제 내에서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기업 내부의 ‘민주화’, 즉 자본가 없는 세상이 사회주의의 핵심 목표라는 건 미국 급진 경제학자 리처드 월프 교수가 사회주의가 필요한 이유로 기업의 비민주성을 내세우고 있다는 점에서도 분명하다. 이런 조직화된 노조의 힘이 경제를 제약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부작용은 이미 레이건, 대처 개혁과 독일 하르츠 개혁으로 폐기된 지 오래됐는데 유독 한국에서만 다시 창궐하고 있다.

한국 재벌이 교도소 담장을 넘나드는 이유는 탐욕 때문이 아니다. 비정상적인 상속세, 국가가 쥔 각종 사업 면허제도 등 비대한 국가권력과 다른 나라에서 처벌하지 않는 계열사 지원을 배임으로 처벌하는 갈라파고스적 규제 때문이다. 독일에서 경제민주화는 과격하지 않고 신뢰에 기반한 성숙한 시민사회 절제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시민의식이 아니라 국가권력으로 자본가를 제약하겠다는 게 우리 경제민주화론의 속셈이다. 개발 경제학자 애스모글루와 로빈슨은 저서 ‘좁은 회랑’에서 제한된 국가권력과 성숙된 시민사회의 균형하에서만 경제의 지속 성장이 가능하다는 인류의 역사적 경험을 강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