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

이건희 회장 (1942~2020)

colorprom 2020. 10. 29. 13:54

♠[사설] 2류 숙명 나라에 세계 1류 DNA 심은 혁신의 이건희

 

조선일보

 

입력 2020.10.26 03:26

 

고 이건희 삼성 회장의 명언들과 경영 활동 모습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25일 타계했다.

이 회장은 45세 때인 1987년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자에게서 경영권을 물려받아

2014년 병석에 눕기 전까지 27년간 삼성그룹을 이끌며 글로벌 1등 기업으로 키워냈다.

이병철, 정주영 같은 창업 세대가 세계 최빈국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했던 산업화의 1세대 거목이었다면,

회장은 오너 2세 경영자였지만 수성(守成)에 머무르지 않고

‘세계 1등 DNA’를 심으며 대한민국 기업을 세계 정상에 오르게 한

‘창조적 파괴’와 혁신의 1세대 기업가였다.

 

삼성전자라는 세계 1등 기업을 갖기 전까지

우리 사회에 일류 의식은 부재했다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이 아니다.

20세기 후반 뒤늦게 산업화에 시동을 걸면서

한국은 서구 선진국과 일본을 모방하고 따라잡기에 급급했다.

세계 자유 무역 질서에 적극 편입한 덕분에 고도성장도 이뤘지만

‘메이드 인 코리아’는 어디까지나 세계 시장에서 싸구려로 이·삼류 취급을 받았다.

우리 스스로도 글로벌 1위 브랜드, 1등 기업의 반열에 오를 수 있을 것이라고

상상조차 못 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만큼 자조(自嘲)적이었다.

그러면서도 경제가 성장해 좀 먹고 살 만해지니까

“이만하면 됐다”는 대충주의와 안일함이 팽배했다.

 

회장이 경영권을 물려받았을 당시 삼성도 세계시장에서는 존재감이 없었다.

심지어 국내 1위 그룹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회장은 취임과 함께 “삼성을 세계적인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시키겠다”고

공언(公言)했다.

그 취임사가 결코 공언(空言)에 그치지 않았다.

실현 가능성이 없어 보이던 그 ‘세계 일류’를 불과 한 세대도 안 돼 실현했다.

‘은둔의 경영자’로 불렸지만 세계 초일류 기업을 만드는 과정에서 이 회장이 보여준

통찰력과 승부 근성은 백 마디 말보다 우리 사회에 울림이 컸다.

 

‘이건희’ 하면 지금도 떠오르는 장면이 “마누라와 자식 빼곤 다 바꾸라”는

1993년 프랑크푸르트 신(新)경영 선언,

그리고 휴대전화의 품질 향상을 요구하면서 삼성전자 애니콜 15만대를 불태워버린

1995년의 휴대전화 화형식이다.

"삼성이 죽느냐 사느냐의 갈림길에 서있다”고 위기의식을 불어넣으면서

경영의 핵심 가치를 물량에서 품질로 전환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고객이 두렵지 않습니까”라고 품질 향상을 강조하면서

이후 생산된 애니콜 제품에는 ‘품질은 나의 인격이요, 자존심’이라는 글귀까지 새기게 했다.

그만큼 ‘세계 일류’가 되기 위해 집요했다.

 

세계 변방에 머물러 있던 ‘메이드 인 코리아’의 적당주의와 이류 의식을 과감히 깨부수는

혁신 경영의 전형을 보여줬다.

이는 비단 삼성의 변화에 그치지 않고

산업계와 한국 사회에 ‘코페르니쿠스의 전환’과도 같은 충격을 던져주었다.

 

2003년 전체 판매량의 27%에 달하는 브라운관 TV 생산을 중단한 적도 있다.

당장 매출에 손실이 가더라도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넘어가는 시대에 디지털TV로 승부하겠다는 뚝심이었다.

 

2007년 애플아이폰이 처음 등장해 세계 휴대전화 시장이 급변할 때도

머뭇대지 않고 발 빠르게 흐름을 따라잡아

삼성전자애플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스마트폰 강자로 만들었다.

 

글로벌 초일류에 대한 이런 집념

오늘날 삼성전자의 반도체·휴대전화·TV 사업을 세계 1위로 성장시켰고,

삼성의 브랜드 가치를 세계 톱 10으로 끌어올린 것이다.

 

하지만 기업인으로서 그의 탁월함은 이런 사업적 판단과 외형 확장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는 양과 질에서 모두 일본 기업을 압도한 최초의 경영자이기도 했다.

 

이 ‘은둔의 승부사’ 덕분에 대한민국은 반도체, 가전 등의 분야에서

실력으로 일본을 누르는 진정한 ‘극일(克日)’의 통쾌함도 맛볼 수 있었다.

 

회장은 오늘날 한국 경제가 향유하는 ‘반도체 강국’의 일등 공신이다.

삼성전자반도체 진출을 결단한 것은 이병철 창업주였지만

그에 앞서 이 회장은 누구도 반도체의 중요성에 주목하지 않았던 1974년

반도체 사업을 이병철 선대 회장에게 건의해 초석을 닦았다.

경영권을 쥔 후에는 과감하고 공격적인 투자로 일본·미국 업체를 따돌리고

반도체 독주 체제를 굳혔다.

글로벌 시장에서 “무모한 짓”이라고 비판할 때도

시장의 흐름을 내다보고 불황기에 더 적극적으로 투자하는 기업가 정신을 발휘했다.

 

이후 삼성은 경쟁 기업들에 추격을 허용치 않는 ‘초격차 전략’으로 반도체 시장을 압도했다.

삼성전자는 D램 부문에서는 28년 연속, 낸드플래시 부문에서는 17년 연속

세계 시장의 독보적 1위를 지키고 있다.

오늘날 ‘산업의 쌀’이라고 불리며 세계시장을 주도하는 한국 반도체의 신화

이렇게 만들어진 것이다.

 

기업사와 기업인의 궤적에 명암(明暗)이 없을 수는 없다.

그러나 회장은 누가 뭐라 해도 대한민국 경제사에서

최초로 한국 기업의 위상을 글로벌 톱 플레이어의 반열까지 끌어올리며

거대한 족적을 남긴 거인이었다.

 

우리도 ‘세계 1등’이 될 수 있고

그렇게 되지 않으면 언제 무너지고 사라질지 모른다는 그의 메시지는

그가 떠난 이후에도 대한민국 사회 전체가 깊이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

 

 

[기고] 이건희 회장의 진짜 克日

 

이한상 고려대 경영대 교수

 

입력 2020.10.26 03:00

 

월스트리트저널에서 부고 기사 알람이 울린다.

‘이류 전자 부품 제조사를 세계에서 가장 큰 스마트폰과 가전·반도체 생산자로 변모시킨

대한민국 삼성그룹 회장 이건희 회장.’

기사 내용에 나오는 인물 평이다.

 

문득 1990년대 후반 미국 유학 시절이 떠오른다.

당시 삼성 제품은 미국 대형 가전 양판점 베스트바이 한구석에 초라하게 진열되어 있었다.

미국 친구들은 삼성을 일본 소니의 하청업체 정도로 알고 있었다.

외환 위기 후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가득하던 세기말,

우리가 과연 일본을 한번이라도 넘어설 수 있을까 회의적이던 그 시절은 오래가지 않았다.

삼성 임직원과 이건희 리더십은 10여년 만에 모든 것을 바꾸었다.

 

2011년 미국에서 다시 들른 베스트바이 매장.

진열대에서 가장 돋보이는 1등 상품엔 삼성 로고가 박혀 있었다.

삼성이 대약진하면서 일본 전자산업과 기업은 만신창이가 됐다.

모두가 극일을 외치지만

해방 후 처음 우리가 입씨름이 아닌 실력으로 일본에 무엇인가 되갚은 소중한 기억 저변에는

삼성이 있었다.

 

이병철 선대회장의 창업도 대단했지만, 이건희 회장의 수성은 더 훌륭한 성과다.

1987년 세계 초일류 기업을 목표로 체질과 근본 구조를 바꾸자며 시작된 이건희 리더십

삼성과 국가 경제를 양과 질 모두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고인의 가장 빼어난 능력은 제품 경쟁력 이후를 예견한 통찰력과 이를 실행한 혁신 정신이다.

 

“다가올 21세기는 문화의 시대가 될 것이며 지적 자원이 회사의 가치를 결정할 것입니다.

따라서 회사는 단순히 상품을 파는 것이 아니라 문화와 철학을 팔아야 합니다.

디자인과 같은 소프트 창의성이 세계적 경쟁의 궁극적 전쟁터가 될 것입니다.”

 

삼성이 단순 제조업체에서 디자인 회사로 변하는 과정에는

이 회장의 소름 끼치도록 탁월한 안목과 성찰이 깔려 있었다.

 

회장 역시 우리 모두가 그렇듯 완벽한 사람은 아닐 것이다.

그가 기업인으로서 남긴 공과를 차분히 평가해 공은 취하고 과는 성찰하면 될 일이다.

삼성 임직원과 유가족이 상심해 부고를 알리는 날 일부 여당 정치인들 추모사는 씁쓸했다.

과거 문제를 현재 기준으로 비난하며

잘못된 고리를 끊고 새롭게 태어나라고 훈계하는 건 공정하지 않다.

 

삼성이 국가 경제와 국민의 자긍심, 대한민국 인지도를 지난 30년간 향상시키는 동안

정치권은 어떤 변화를 보여줬는가?

운동권 출신 여당 정치인들은 혁신은커녕 나라의 민주주의와 법치의 근간을 흔들며

새로운 권위주의로 나라 경제를 후퇴시키고 기업 활동을 위축시키지나 않았는지

먼저 성찰할 일이다.

 

필자는 감리위원으로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문제를 제기했고,

삼성물산 합병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미래를 위해 지배 구조 개혁을 외치는 경영학자다.

하지만, 오늘 하루는 배우자만 빼고 다 바꿔 혁신하자,

세계 일류 제품으로 사업보국하자는 고인의 선한 의지만 기억하고자 한다.

 

이재용 부회장과 삼성 임직원에게 남겨진 과제는 무겁다.

이제 더 이상 거인의 어깨를 빌려 미래를 바라볼 수 없다.

남겨진 많은 소송과 준법 문제가

삼성과 이재용 부회장 앞에 불확실성으로 작용하며 국민경제에 부담이 될 수 있다.

하루빨리 이미 일어난 법적 문제들을 매듭짓고 국민에게 책임 있는 자세를 취해야 한다.

정치권도 정치와 경제를 엄격히 분리해 기업인이 기업 활동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삼성이 국민에게 사랑받는 지속 가능한 기업으로 남기 위해서는

환경, 노동, 사회적 책임, 기업 지배 구조 모든 부분에서 세계적 기준으로 개혁을 완수해야 한다.

 

이재용 부회장과 삼성 임직원들이 고인 뜻을 받들어

국가 경제의 큰 버팀목으로 든든히 자리해 주기를 바란다.

 

 

[만물상] 세상을 바꾼 기업인의 말

 

윤영신 논설위원

 

입력 2020.10.26 03:20

 

“무엇인가가 중요하다면, 가능성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실행하라.”

 

미국의 혁신 사업가 일론 머스크

남들이 ‘가능성 0%’라고 하는 사업들을 겁 없이 펼치는 것은 이런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우주로켓 발사를 세 번 연속 실패했을 때 주위에선 “사기꾼” “망상가”라는 조롱이 나왔다.

그때 머스크가 던진 말이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절대로!"였다.

▶허풍이 아니었다.

그는 전기차 테슬라 주가가 폭등하면서 올해 세계 상위권 부자가 됐다.

세계 최대 전기자동차 회사와 세계 첫 민간 우주화물선 기업을 창업한 그는

이제 “2024년까지 화성에 인간을 보내겠다”며 ‘화성 식민지’ 건설을 꿈꾸고 있다.

성패 여부는 알 수 없지만 그의 도전 정신만은 본받을 만 하다.

 

▶남이 가지 않은 길을 가는 데 성공한 기업인들이 남긴 말이 많다.

미국의 석유왕 록펠러는 “성공의 비밀은 평범한 일을 비범하게 하는 것”이라고 했고,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

노력조차 안 해보고 정상에 오를 수 없다고 하는 사람은 폐인”이라 했다.

‘인류의 삶’을 바꾼 애플의 스티브 잡스

“어떤 일이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또 다른 멋진 일을 시작하라” “계속 갈망하라”고 했다.

이들의 말을 관통하는 것은 불굴의 도전 정신이다.

 

한국에서도 여러 기업인이 경영 철학과 성공 법칙을 담은 명언을 남겼다.

정주영 회장은 “이봐, 해봤어?”라는 말로 불가능하게 보였던 숱한 사업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500원짜리 지폐의 거북선 그림을 보여주며 영국에서 외자를 유치해 울산에 조선소를 세우고,

경부고속도로를 닦고, ‘포니’ 자동차를 만든 것도 그의 “이봐, 해봤어?” 정신에서 비롯됐다.

김우중 대우 회장은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는 말로

외환 위기의 절망에 빠진 청년들 가슴에 희망을 불어넣었다.

최종현 회장은 SK가 통신사업에 진출할 때 “우리는 미래를 샀다”고 했다.

수십년이 지난 지금 상황을 예견하고 한 말 같다.

 

▶어제 작고한 이건희 회장은 삼성 경영을 물려받은 뒤 “마누라 자식 빼고 다 바꾸라”고 했다.

삼성을 초일류 글로벌 기업으로 만든 ‘프랑크푸르트 신경영 선언’이다.

이 회장의 삼성은 반도체와 휴대폰 부문에서 세계 1등이 됐다.

미국 가전 매장에서 일본 소니에 한참 밀려 싸구려 취급을 받던 삼성 TV도 1등 반열에 올랐다.

 

일등 기업을 일궈낸 리더의 말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힘을 지닌다.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다.

그 말을 소홀히 들은 후배 기업인이 위기를 불렀다.

 

 

♠[만물상] 이병철의 ‘최대 업적’

 

강경희 논설위원

 

입력 2020.10.27 03:18

 

삼성그룹을 취재한 동료 기자가 ‘이건희 회장의 도쿄 까마귀’ 기사를 쓴 적이 있다.

이 회장이 도쿄를 방문했을 때 ‘도쿄 사는 까마귀가 모두 몇 마리인가’라고 느닷없이 질문해

수행 임원이 진땀을 흘렸다는 일화였다.

‘그것도 기사냐’는 비난도 있었고 ‘이 회장은 특이하다’는 반응도 나왔다.

이 회장은 정말 ‘다른 사람’이었다.

 

▶25일 타계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출근하는 게 뉴스가 될 정도로 혼자만의 세계에 침잠한 ‘은둔의 경영자’였다.

사물이든 현상이든 취미든 일단 관심 가지면 뿌리를 뽑을 정도로 파고들었다.

본인은 엄청나게 고민한 주제인데 어눌한 어조로 툭툭 질문하니

다른 사람 듣기엔 선문답 같았다.

금융 계열사 사장단을 모아 놓고 회사 매출을 챙기는 게 아니고

“신용카드업의 개념이 무엇이냐”고 묻는 식이었다.

뉴욕타임스는 이건희 회장을 ‘사상가(big thinker)’라고 표현했다.

 

▶삼성의 반도체 진출은 1983년 이병철 회장이 선언했지만,

씨앗은 한참 전인 1974년 30대 이건희 회장이 뿌렸다.

당시 사재를 털어 도산한 한국반도체를 인수했다.

 

반도체에 대해 이 회장은 “양심 산업이자, 타이밍 사업”이라고

‘업(業)의 개념’을 남다르게 정의했다.

 

박사부터 기능직까지 종업원 수천명이

300여 공정에서 단 한 번 실수 없이 합심해서 일해야 하는 ‘양심 산업’이고,

남보다 조기에 양산해야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타이밍 사업’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회장이 파악한 반도체 ‘업의 본질’이었다.

그래서 미국⋅일본 경쟁 기업들이 불황에 머뭇거릴 때 주저 없이 투자했다.

 

▶이 회장의 ‘뒷다리론’도 유명하다.

“뛸 사람은 뛰어라. 말리지 않는다.

걷기 싫으면 놀아라. 안 내쫓는다.

그러나 남의 발목은 잡지 말고 가만있어라.”

 

세계 초일류를 꿈꾸고 일궜지만 그런 이건희 회장도 실패한 분야가 자동차 산업이다.

적자를 거듭하다 손을 떼야 했다.

당시엔 ‘문어발’ 경영이라 비난받았지만

만약 이 회장이 끝까지 자동차에 매진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일론 머스크와 경쟁하지 않았을까.

 

삼성 창업자 이병철 회장은 무에서 유를 창조한 창업 1세대다.

이병철은 장남 상속의 관행을 깨고 막내아들 이건희를 후계자로 선택했다.

파격이었다. 이건희에게서 ‘무언가’를 보았을 것이다.

이건희 회장은 ‘글로벌 초일류’라는 새 지평을 열었다.

이 역시 무에서 유를 창조한 것이다.

 

이건희를 선택한 것이야말로 이병철의 ‘최대 업적’이란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 같다.

 

 

[시론] 이건희 낙수효과

 

이경묵 서울대 경영대 교수

 

 

입력 2020.10.28 03:00

 

어렸을 때 읽은 위인전의 주인공 중에 기업가들이 있었는데

모두 카네기, 포드 같은 미국의 기업가들이었다.

미국이 기업가를 위인의 반열에 올리는 유일한 나라일 것이다.

그런 사회적 분위기가 미국을 세계 최강의 경제 대국으로 만든 원인 중 하나일 것이다.

 

2004년 삼성 반도체 생산 라인을 둘러보는 고 이건희 회장/삼성

 

미국 히스토리 채널에서 방영한

미국을 건설한 사람들(The Men Who Built America)’이라는 다큐 드라마를 본 적이 있다.

제목만 보면 워싱턴, 링컨 같은 위대한 대통령에 대한 드라마일 것으로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미국 산업혁명기에 거대 기업을 일군

코닐리어스 밴더빌트, 존 록펠러, 앤드루 카네기, 헨리 포드에 대한 이야기다.

그들이 미국을 최강의 경제 대국으로 만들고

국민들을 풍요롭게 살 수 있게 만든 주역이었기 때문에 그런 제목을 붙인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드라마를 제작한다면 엊그제 별세한 이건희 회장은 주인공이 될 수 있을까?

카네기포드처럼 위인의 반열에 올릴 수 있을까?

 

이건희 회장은 낮은 품질의 저가 제품을 만들던 삼성전자를 글로벌 초일류 기업으로 탈바꿈시켰다.

선진국 거대 기업들이 각축을 벌이는 최첨단 산업에서

중진국 기업이 1등을 한 세계 최초의 사례를 만들어 낸 것이다.

 

삼성전자는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하면서

국내에서 엄청난 부가가치와 일자리를 창출하고,

거액의 법인세를 납부함으로써 국민들의 삶을 풍요롭게 했다.

소재, 부품, 장비업체들이 동반 성장하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 혜택을 봤다.

그리고 우리나라 기업들이 최첨단 제품을 만들 수 있다는 이미지를 외국인들에게 심어줌으로써

국내 업체들의 성장을 도와주기도 했다.

 

국내 타이어 업체 해외 영업 담당 임원이 말해 준 내용이다.

선진국 업체가 생산한 타이어보다 싸게 사려는 바이어에게

어떤 회사가 만든 핸드폰과 가전제품을 쓰는지를 물어보면

삼성전자가 만든 제품을 쓰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그런 고가의 최첨단 제품을 만드는 삼성전자가 우리나라 기업이라고 강조하면

가격 협상을 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글로벌 시장에서 우리나라 기업들의 위상을 높여줌으로써

그런 기업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살림에도 도움을 주었다.

 

이건희 회장이 우리나라에 가장 크게 기여한 바는

우리도 열심히 하면 세계 1등이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 준 것이다.

 

첨단 산업에 속해 국내 다른 기업들도 도전하고 혁신하면서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했다.

우리 근로자들의 생산성이 높아지면서 연봉이 올라갔고,

공무원, 기자, 교수 등 기업에서 일하지 않는 사람들의 연봉도 올라갔다.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교수들이 하는 일이 크게 다르지 않지만

연봉이 많이 올라간 이유가 이런 낙수효과 때문이다.

1인당 국민소득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한 것이다.

 

필자가 이건희 회장을 직접 만난 것은 2013년에 개최된 신경영 20주년 기념 행사에서였다.

동료인 송재용 교수와 10여 년간 연구한 결과를 모아 출간한 책 ‘삼성웨이

이건희 회장에게 헌정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이 책은 이건희 회장이 어떻게 삼성을 글로벌 초일류 기업으로 만들었는지에 대한 것이었기 때문에

진짜 저자는 이건희 회장이라는 생각이 들어 회장께 친필 서명을 요청했다.

그런데 유전병을 앓고 있었기 때문인지 손이 흔들려 제대로 글씨를 쓰지 못하셨다.

자신의 건강만 돌보며 살아도 되는 분이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큰일을 해내고

우리 국민들의 살림살이에 큰 기여를 했다는 생각을 하니 더 존경할 수밖에 없었다.

 

필자의 마음속에 위인으로 자리 잡은 이건희 회장의 명복을 빌며,

우리나라에서 더 많은 위인이 나오고,

우리나라가 뛰어난 기업가를 위인으로 인정해주는 나라가 되길 소망해본다.

 

 

♠“神은 품질에 있다던 李회장… 이재용도 승어부 이룰 것”

 

[이건희 회장 영결식] ‘이건희 회장과 60년 지기’ 김필규 前 KPK통상 회장의 추도사

 

석남준 기자

 

입력 2020.10.29 03:02

 

“승어부(勝於父)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버지를 능가한다는 말로,

이것이야말로 효도의 첫걸음이라고 합니다.

저는 세계 곳곳을 돌아다녔지만, 이건희 회장보다 승어부한 인물을 본 적이 없습니다.”

 

28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선산에 마련된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 장지에서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왼쪽부터), 이부진 호텔신라 대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28일 오전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영결식장.

김필규(79) 전 KPK통상 회장이 추도사를 했다.

김 전 회장은 서울사대부고 재학 당시 이 회장과 레슬링부에서 함께 활동하고

이 회장 가족과도 가깝게 지낸 60년 지기(知己)다.

 

김 전 회장은

“고교 시절 서울 장충동 이 회장 집에 가면

어머님이신 박두을 여사께서 따뜻하게 돌봐줬다”고 했다.

 

이 회장의 부인인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이

삼성전자 이인용 사장을 통해 김 전 회장에게 추도사를 부탁했다고 한다.

 

"제가 이 회장을 처음 만난 건 1958년 봄 서울사대부고 강당 한구석에 있던 레슬링반이었습니다.

레슬링반 지망자들과 상견례를 하던 중 유난히 피부가 희고 눈이 깊고 귀티가 나는

이 회장을 보고 ‘왜 하필 레슬링반에 지원했느냐’고 물었죠. 이 회장은 뜻밖의 답을 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몇 년을 일본에서 살았는데

일본은 물론 세계 프로레슬링의 영웅이던 역도산의 경기를 많이 보고 존경했기 때문에

레슬링을 하고 싶어졌다’고요.”

 

김필규 전 KPK통상 회장

 

김 전 회장은 은사에게서 들은 일화도 소개했다.

“서울사대부고 은사인 한우택 선생님이

1964년 도쿄올림픽에 한국럭비협회 임원 자격으로 참석하셨다가

당시 일본 와세다대학에 재학 중이던 이 회장 집에 묵었다고 합니다.

늦은 밤까지 불이 꺼지지 않는 이 회장 방에 올라가 보니

이 회장이 밤을 새우며 라디오·전축·TV 등 전자 제품을 조립하고 분해하고

다시 조립하는 과정을 반복했다고 합니다.

후일 필생의 사업이 된 전자 산업의 기본을 몸소 체험하고 있었던 거죠.”

 

‘애견인 이건희’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다.

“고교 시절 서울 장충동 이 회장 집에 가서 눈처럼 희고 작은 스피츠(개의 한 품종)라는 개를

난생처음 봤습니다. 수년 전에 홍라희 여사에게 스피츠 얘기를 했더니

‘이 회장이 15년 넘게 아끼던 개인데, 어느 날 출장에서 돌아오던 이 회장을 발견하고

너무 반가워하며 2층에서 뛰어내리다 다리가 부러졌다’고 하더군요.”

 

화성사업장 들러 영원한 작별 - 28일 오전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운구차가

경기 화성시 삼성전자 화성사업장을 빠져나오고 있다.

운구차가 화성사업장에 들른 25분 동안 삼성 임직원들은 3000여 송이의 국화를 들고

이 회장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뉴시스

 

김 전 회장은 누구보다 품질의 중요성을 외쳤던 이 회장에 대해서도 회고했다.

“요즘 미술이나 건축하는 사람들 입에

(독일 출신 20세기 대표 건축가인) 루트비히 미스 반데어로에가 했다는 말,

‘신은 디테일에 있다(God is in the details)’가 회자됩니다.

 

하지만 이 회장 머릿속에는 ‘신은 품질에 있다(God is in the qualities)’로

오래전부터 각인돼 있는 듯했습니다.”

 

김 전 회장은 세상을 떠난 지기의 아들을 격려하며 추도사를 마쳤다.

“이 회장이 부친을 능가하는 업적을 이루었듯이

이 회장의 어깨너머로 배운 이재용 부회장이 새로운 역사를 쓰며

삼성을 더욱 탄탄하게 키워나갈 것입니다.”

 

 

[데스크에서] 이건희 회장이 소환한 화두

 

정철환 기자

 

입력 2020.10.29 03:00

 

2000년대 초반 독일 하노버 출장길에

유럽 최대 전자양판점 ‘메디아마흐트(MediaMarkt)’ 쇼윈도에 놓인

삼성전자 LCD(액정 화면) TV를 보고 놀란 적이 있다.

한국 기업 전자제품이 유럽에서 ‘눈에 확 띄는’ 장소에 놓여 있는 걸 본 게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동행했던 최지성 당시 삼성전자 부사장이

“우리 제품이 이렇게 주목받고 있다”면서 의기양양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날 기억의 백미는 그다음이다.

 

앞뒤로 놓인 소니삼성 TV를 요모조모 비교해 보고 있자니 점원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삼성 TV 첨 보셨죠. 요즘 완전 뜨고 있는 ‘일본 브랜드(eine japanische Marke)’예요.

전자제품은 역시 일본이 최고죠.”

 

삼성은 꽤 오랫동안 유럽에서 일본 브랜드로 오인받았다.

제품 뒤편에 ‘메이드 인 코리아’라고 분명히 쓰여 있는데도

그들 눈에는 당연하다는 듯 ‘메이드 인 재팬’으로 인식됐다.

 

2000년대 중후반까지도

상당수 유럽인이 한국을 베트남 옆의 개발도상국쯤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니 시내 유명 백화점 맨 앞줄에 놓인 삼성 TV를 어찌 한국 제품이라고 생각했겠는가.

삼성의 품질제일주의, 세계 1류를 지향한 집념이

상당한 결실을 거두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경험이었다.

 

이후 삼성의 진격 앞에 미국과 일본, 유럽 유수 전자 회사들이 줄줄이 나가 떨어졌다.

 

한 국가 이미지는 결국 대표 기업이나 유명인들 이미지가 쌓이면서 만들어진다.

한국이 세계적인 기술·문화 강국으로서 위상을 구축해가는 과정은

삼성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그 등정을 가능하게 했던 원동력은 이건희 회장의 리더십에서 시작했다는 점도

부인하긴 어렵다.

 

윤종용 전 삼성전자 부회장은

“이 회장은 한국 사회가 과거로부터 벗어나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고 했다.

삼성이라는 기업을 통해 더 높은 가치를 달성하면

한국 사회도 이와 함께 변화해가리라 믿었던 것이다.

“기업은 2류, 행정은 3류, 정치는 4류”란 발언은 사실 그런 열망을 담고 있었다.

 

이 회장이 삼성을 ‘세계 1류’로 만들려 애쓰고,

다른 한국 기업들도 삼성을 따라잡기 위해 노력하면서

전반적인 한국 기업 경쟁력이 동반 상승하는 효과가 나타났다.

기업만이 아니다.

어쩌면 한국 사회 전체가 이건희라는 인물이 추구한 ‘1류를 향한 끝없는 집착'에 답하며

조금씩 전진했는지 모른다.

 

이 회장은 28일 자신이 애착을 가졌던 경기도 화성⋅기흥 반도체 사업장에서

임직원들의 마지막 인사를 받은 뒤 선영에 묻혔다.

안타깝게도 그는 생전에 1류가 된 한국 사회를 보지 못했다.

이 회장이 이뤄낸 성취에 대해 감탄하건 질시하건,

궁극적으론 그의 유산을 넘어서 한발 더 나아가기 위해 도전하는

한국 사회의 동력이 멈추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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