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공부

'사흘'이 검색어 1위 된 사연

colorprom 2020. 7. 25. 15:12

 

[만물상] '사흘'이 검색어 1위 된 사연

 

조선일보

 

 

 

입력 2020.07.23 03:18

 

한 지자체가 홈페이지에 "민원 처리 과정의 불편부당한 사례를 신고해 달라"고 쓴 적이 있다.

불편부당(不偏不黨·매우 공평함)을 불편(不便)하고 부당(不當)한 것으로 잘못 안 것이다.

한자 문맹에 따른 에피소드는 이제 기삿거리도 아니다.

안중근 의사 진료 과목이 무엇이었냐고 묻는 건 아무것도 아닐 정도다.

▶한자는 물론 우리말 교육도 제대로 되지 않는 듯하다.

엊그제 정부가 8월 17일을 임시공휴일로 정하면서 "15~17일 사흘간 연휴"라는 기사가 나오자

"3일인데 4일이라니 오보" "15~17일이 사흘이냐? 나라 잘 돌아간다" 같은 댓글이 달렸다.

그러자 갑자기 '사흘'이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르기도 했다.

그 뒤로는 "3일이면 삼흘 아닌가" "기사에 어려운 한자어는 쓰지 말자" 같은 글이 등장했다.

사흘을 한자어로 안 것이다.

장난인지도 모르지만 '이틀'의 '이'를 '2'로 아는 사람도 적지 않다.

 

▶초등학생들이 '사흘'을 많이 검색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구글 번역 프로그램에 '사흘'을 써넣으면 'four days'라고 번역된다.

구글 번역은 수많은 번역 데이터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에,

적어도 구글이 확보한 번역물에서는 '사흘'을 '4일'로 표기한 경우가 더 많다는 뜻이다.

심지어 일부 언론사 인터넷 기사에도 '장성택, 숙청 4흘 만에 사형 집행'

'애리조나 감독, 4흘 만에 해임' 같은 제목이 달렸었다.

▶우리말은 숫자를 '일·이·삼·사…'로 읽을 때와 '하나·둘·셋·넷…'으로 읽을 때가 다르다.

날짜는 '1일·2일·3일·4일…'로 읽고 날수는 '하루·이틀·사흘·나흘…'로 센다.

시각 읽는 법은 더 특이해서 시(時)는 우리말로, 분(分)은 한자어로 읽는다.

 

외국인들은 "'이시 삼십분'이거나 '두시 서른분'이어야지 왜 '두시 삼십분'이냐"고 묻곤 한다.

사실 날수를 이르는 말에서 '이레·여드레·아흐레'는 거의 쓰이지 않는다.

이제 '사흘·나흘·닷새·엿새'도 잊혀가는 모양이다.

▶소셜미디어가 일상의 텍스트로 자리 잡으면서 올바른 글에 대한 관심 자체가 사라지고 있다.

'역대급' '가성비' 같은 엉터리 한자어가 신문에 인쇄될 정도이고

'아는 사람' 대신 '지인'이란 말이 쓰이는 걸 보면 한자어를 싫어하는 것도 아니다.

여기에 영어 써야 '쿨한' 세태도 한몫 보탠다.

 

요즘 야구 중계를 보면

메이저리그 출신 해설가들이 "보더라인에 커맨드가 잘되고 있네요" 같은

초급 영어 경진대회를 하고 있다.

미국서 야구가 아니라 영어 몇 마디를 건진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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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魚友야담] 내 사랑이 실패한 이유를 알았습니다

 

조선일보

 

 

 

 

 

 

 

입력 2020.07.25 03:00

[아무튼, 주말]

어수웅·주말뉴스부장

 

사흘과 관련한 해프닝이 3일째 온라인을 달궜습니다.

'8월 17일 임시공휴일 지정… 사흘 연휴 완성'. 바로 이 온라인 뉴스 제목과 댓글 때문인데요.

이런 댓글이 우르르 달렸죠.

"15, 16, 17일 삼일이지 왜 사흘이야?" "토, 일, 월 3일인데 왜 사흘이라고 뻥치냐?"

사흘을 3일이 아니라 4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았다니.

댓글로 정답을 알려주자 심지어 우격다짐도 벌입니다.

"왜 굳이 사흘이라고 표현해서 사람들 헷갈리게 함? 3일이라고 쓰면 안 됨?"

'사흘'은 포털의 실시간 검색어 1위를 기록했고, 급기야 자기고백적 놀이로까지 확장됐죠.

제게 가장 웃기면서도 슬픈 사연은 이 고백이었습니다.

"나는 사흘을 기다릴 테니 고민하고 답을 달라고 말했다.

그녀는 나흘째에야 전화했고 나는 받지 않았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삶에서 멀어져갔다.

오늘에야 나는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게 되었다."

사랑마저 갈라놓은 사흘이라니. 정말 사흘이 잘못했네요.

누군가는 교육의 실패라며 목청을 높입니다.

초등학교 시절이 생각나더군요.

주관식 국어 시험. 1일·2일·3일 등을 순서대로 나열한 뒤 우리말을 쓰게 했었죠.

하루·이틀·사흘·나흘·닷새·엿새·이레·여드레·아흐레·열흘.

이 수사(數詞)들은 한국어의 계통을 밝힐 때 기초 어휘입니다.

일이삼사는 중국어고, 하나둘셋넷은 한국어죠.

셋을 알면 사흘로의 연상이 자연스러운데, 사를 먼저 떠올리면 사흘과 4흘이 헷갈립니다.

요즘 '1도 없다'는 표현을 젊은 세대가 많이 쓰더군요.

'하나도'는 그렇게 자리를 빼앗긴 거죠.

이런 우스갯소리도 나왔습니다.

"국민이 사흘을 헷갈려하는 건 나흘의 존재를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니 정부는 황금연휴를 최소 나흘로 구성토록 해서

나흘이란 단어의 언론 노출 횟수를 늘려야 한다!"

황금연휴는 아니지만, '아무튼, 주말'도 여름휴가를 갑니다.

8월 1일 자와 8일 자를 쉬고, 8월 15일 자로 돌아오겠습니다.

이번 휴가에는 '소수언어박물관'을 등장시켜 언어의 소멸을 경고했던

소설가 김애란'침묵의 미래'를 다시 한번 읽어봐야겠군요.

 

청량한 여름 보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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