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일의 입] 박원순, 호숫가에 돌을 던졌는가
입력 2020.07.10 18:26
우리는 그 어떤 극단적 선택에도 찬성할 수 없다.
본인이야 오죽했으랴 싶기도 하고, 깜깜한 절벽이 사방에 막혀 있는 것 같은 상황이었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극단적 선택은 무책임한 것이다.
특히 남아 있는 가족을 생각한다면 그럴 수는 없다.
박원순 시장은 서울시에 ‘성평등위원회’를 설치한 사람이다.
일찍부터 여성 친화적 이미지를 내세워 많은 호응을 얻었다.
민주당 정치인 중에 박원순 시장만큼 일찍부터 여성 지지자를 핵심 지지층으로 확보한 정치인도
많지 않다.
박원순 시장은 우리나라에 아직 ‘여성인권’과 ‘성희롱’에 관한 구체적인 개념조차 싹트지 못했을 때
"성희롱은 명백한 불법 행위"라는 인식을 만드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한 사람이다.
여러분, 혹시 지금부터 27년 전인 1993년 ‘서울대 우 조교 성희롱 사건’ 기억하십니까.
서울대학교 화학과 실험실에서 핵자기 공명장치 기기를 담당하던 조교 우 모씨가
관리책임자였던 신 모 교수에게 성희롱을 당했다고 고발한 사건이다.
기기의 작동법을 가르쳐 준다는 구실로
신 모 교수가 "뒤에서 껴안고 포옹하는 자세를 취했다"는 것이 피해자 측 주장이었다.
이 사건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제기된 성희롱 관련 소송이었다.
6년간 법정투쟁이 이어졌고,
결국 신 교수가 우모 조교에게 500만원을 지급하라는 최종 판결이 나왔다.
이 사건을 계기로 성희롱도 명백한 불법행위라는 사회적 인식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때 피해자 측 여섯 사람 변호인단에 박원순 변호사도 포함돼 있었다.
당시, 서울대 우 조교 성희롱 사건의 피해자 변호를 맡았던 박원순 변호사가
고소장에 적었던 마지막 문장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다. 이렇게 돼 있다.
‘호숫가에서 아이들이 장난삼아 던진 돌멩이로 개구리를 맞춘다.
아이들은 장난이지만 개구리는 치명적인 피해를 입는다.’
박원순 시장은 그해에 이 사건의 변호인 자격으로 ‘올해의 여성운동상’을 받았다.
그런데 그 상금을 한국여성단체연합에 기부해서 또 한 번 화제가 됐었다.
그랬던 사람이 이번엔 자신이 성추행 고발로 몰려 있다가
돌이킬 수 없는 극단적 선택을 한 채 발견됐다.
삶이란 아차 하는 순간 벼랑길이란 생각도 든다.
지금부터 18년 전인 2002년에는 ‘우근민 제주 지사 성추행 사건’이 있었다.
그해 1월 제주 지사 집무실에서 우 지사가 여성 직능 단체장 면담을 하면서
가슴을 만지는 신체 접촉을 했다는 혐의였다.
직사각형 테이블 모서리 부분에 우 지사와 피해 여성이 90도 각도로 앉아서 대화를 나누던 중
왼손으로 피해 여성의 목 뒷부분을 잡고 오른손으로 가슴을 만졌는데
피해자가 그 손을 뿌리쳤다는 내용이다.
우 지사는 "정치적 음해공작"이라고 주장했으나
4년 뒤 1000만원을 배상하라는 대법원 확정판결이 나왔다.
당시 박원순 변호사는 이 사건의 민간 진상조사 위원으로 활동했었다.
그랬던 ‘여성인권 변호사 박원순’이었다.
불과 1년5개월 전인 작년 2월 박원순 시장은 서울시 여성 리더 신년회에 참석했었다.
그 자리에서 박원순 시장은 이렇게 말했다.
"많은 여성이 저항 주체로서 독립운동(3·1 운동)에 참여했고
오늘날의 대한민국이 있게 됐으며 그 정신은 1987년 민주화 운동, 2016∼2017년 촛불집회,
지금도 지속되고 있는 미투 운동으로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나라를 지키고 만들어 온 수많은 여성을 제대로 기억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여성의 기억으로 역사를 만들고,
여성의 역사로 미래를 만드는 서울시장이 되겠습니다."
박 시장은 그날 서울여성플라자 2층 성 평등 도서관에 설치된 ‘서울시 성 평등 아카이브’
즉 성 평등 기록문서 자료관의 정식 출범을 선언하기도 했다.
오늘 한 신문은 이런 디지털 제목을 달았다.
‘도덕성 타격 힘들었나…비극으로 끝난 최장수 서울시장 박원순’.
박 시장은 이번 주 8일 전직 서울시장 비서였던 A씨로부터 성추행 고소를 당했다는 게 확인됐다.
전직 비서 A씨는 9일 새벽까지 고소인 자격으로 경찰 조사를 받았다.
박원순 시장은 9일 오전10시44분을 집을 나갔다.
그리고 10일 0시20분쯤 서울 북악산 숙정문 부근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지난 십 수 년 동안 스스로 극단적 선택을 한 정치인들이 적지 않다.
2011년 노무현 전 대통령, 2018년 노회찬 정의당 의원,
2015년 19대 국회의원이기도 했던 기업인 성완종 회장,
2013년 17대 18대 열린우리당과 민주당 국회의원이었던 김종률 의원,
2004년 이준원 파주시장, 작년엔 17대 18대 19대 국회의원을 했던 정두언 의원,
그리고 홍준표 경남지사 시절 경남 정무 부지사를 지낸 조진래 18대 국회의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런 고인들의 마지막 선택에 결코 동의할 수는 없지만,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누구보다 박원순 시장의 마지막 선택이 너무도 충격적이다.
그의 인명사전에는 인권변호사, 시민운동가, 서울시장, 이 세 가지 표현이 빠질 수 없을 것이다.
동시에 성적 범죄의 가해자를 준렬하게 꾸짖어온 인권변호사가
비슷한 혐의로 고발을 당했다는 아이러니 앞에
고인의 유족들과, 피해자와, 박 시장의 지지자들이 느끼고 있을 충격과 혼란도 생각하게 된다.
*조선일보 김광일 논설위원이 단독으로 진행하는 유튜브 ‘김광일의 입’, 상단 화면을 눌러 감상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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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공교롭게도, 朴시장 숨진 날 출간된 '박원순 죽이기'
입력 2020.07.10 15:00 | 수정 2020.07.10 15:38
황세연 중원문화 대표 "박원순 대통령 돼야" 주장
"초판 2000부 찍어...이런 일 있을 줄 몰랐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시신이 발견된 10일
공교롭게도 박 시장이 차기 대통령이 돼야 한다는 주장을 담은 책이 출간됐다.
황세연 중원문화 대표가 쓴 '박원순 죽이기' /중원문화
제목은 ‘박원순 죽이기’(중원문화).
저자 황세연(67) 중원문화 대표는 이날 전화통화에서
“박 시장을 지난달 20일 마지막으로 만났는데
그때는 이런 비보(悲報)가 있을 줄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면서
“박 시장의 명예를 높이는 책이기에 예정대로 출간한다”고 말했다.
초판 2000부를 찍었고, 내주 월요일(13일) 서점에 배본할 예정이다.
황 대표는 “그날 만남에서 책 출간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면서
“주로 친문 그룹 이야기를 나눴고, 박 시장이 ‘친문들 때문에 못살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황 대표는 책을 쓴 이유에 대해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여당이나 야당을 보고 너무 실망했다”면서
“(민주당은) 차기 대통령 후보 경선을 기점으로 사분오열되어 친문과 비문 세력이 나눠지면서
‘박원순 죽이기’는 실패할 것이고, 차기 대통령은 박원순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책은 먼저 친문 그룹의 세력 판도를 분석한다.
①친노(親盧)에 뿌리를 둔 ‘핵심 친문’
②문재인 대통령이 독자적 정치행보를 시작한 2012년 총선 당시 합류했거나 이후 영입된 ‘일반 친문’
③ 문재인 정부에서 일했거나 이번 21대 총선에서 영입된 ‘신(新)친문’ 등 세 그룹이다.
황 대표는 친문 세력이
장기표 같은 선배 민주화운동 거목들을 배제하고
5·18 민주화운동가들의 국회 입성을 막는 등 비민주적 행태를 보이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차기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친문 그룹은 3파로 확실하게 분열할 것으로 전망한다.
민주당의 계파 정치가 조선시대 당파싸움을 방불케할 것이라고 내다보고,
이낙연 전 국무총리, 이재명 경기도지사 등 차기 대선 후보로 거론되는 인사들의 문제점도
실명으로 비판했다.
황 대표 는 책에서 “이 분열을 잘 수렴하는 자가 차기 대권을 손에 넣을 것”이라면서
“민주화운동 경력과 진보적 사고를 지닌 인사로서 차기 대통령감으로는 박원순만한 인물이 없다”고
주장했다.
황세연 대표는 1997년 ‘DJP 연합’을 구상한 것으로 알려진 황태연 동국대 교수의 친형으로
1980년대 민주화운동으로 투옥됐고, 출판사 중원문화를 40년간 운영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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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첫 성희롱 소송 변호인, 그가 박원순이었다
입력 2020.07.09 23:47 | 수정 2020.07.10 14:03
우리나라 첫 성희롱 소송 승소 이끌어
"나는 페미니스트"외치던 그가 성추행 고소당해
9일 실종 신고가 접수된 박원순 서울시장은
전날(8일) 전직 비서를 성추행했다는 이른바 '미투 의혹'으로 전날 형사 고소됐다.
그러나 박 시장은 그동안 “페미니스트(여성 인권 주의자)”를 자처했고
주변으로부터 '여성·인권 변호사'로 불려왔다.
`부패방지입법시민연대` 실행위원인 박원순 참여연대 사무처장이
2001년 4월 26일 국회 정문 앞에서 부패방지법 입법을 촉구하는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조선일보 DB
박 시장이 여성 인권 변호사로 이름을 알리게 된 건
1993년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제기된 성희롱 법률 소송인
'서울대 우조교 성희롱 사건 변호를 맡은 것이 결정적 계기다.
서울대 우조교 성희롱 사건은
서울대 우모 조교가 A 교수로부터 성희롱을 당했다고 고발한 사건이다.
피해자를 대리했던 박 시장은 6년간의 법정 공방 끝에,
A 교수가 우 조교에게 500만원을 지급하라는 최종 판결을 이끌어냈다.
이 판결을 계기로 성추행, 성폭행뿐 아니라 성희롱도 명백한 불법 행위라는 사회적 인식이 생겼고,
성희롱의 개념이 실정법에 도입되는 계기가 됐다.
박 시장은 이 사건의 변호인 자격으로 한국여성단체연합회(여연)가 주관하는
제10회 '올해의 여성운동상'을 받았고, 이 상금을 여연에 기부했다.
박 시장이 서울시 홈페이지에 직접 쓴 소개란에도
"조작된 공안사건의 피해자, 대학의 성폭력 피해자, 노동운동을 하다 기소된 인권 변호사 등을
변호했다"고 쓰여 있다.
박 시장은 재수 끝에 서울대 사회계열에 입학했다가
1975년 5월 학내시위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서울대에서 제적됐다.
이후 그는 단국대 사학과에 입학한 뒤 1980년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이후 '여성·인권 변호사'로 불리며 2011년, 2014년, 2018년 연속 3번 서울시장에 당선됐다.
박 시장은 작년 11월 서울 국제돌봄엑스포에 참석해
"저는 페미니스트"라며 "3년 전 '82년생 김지영' 책을 보고 눈물을 흘렸고 절망감이 들었다"고 했다.
이어 "현재 대한민국에서 육아와 돌봄은 오로지 개인과 가족, 특히 여성의 부담.
공공과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
박 시장은 줄곧 여성을 응원했다.
2011년 서울시장 첫 당선 이후 여성 친화적 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쳐왔다.
2017년 1월 '서울시 여성리더와 함께 하는 신년회'에선 박 시장은
"여성다움이 '원순다움'"이라며
"여성 중심, 노동 중심의 세상을 만들겠다.
좋은 세상은 가장 고통 받는 사람들이 중심이 된 세상"이라고 밝혔다.
여성 친화형 리더가 되겠다고 말하는 자리였다.
또 박 시장은 지난 2018년 5월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예비후보로 등록한 뒤
“(성폭력은) 예방하는 게 중요하다”며 “사후에는 회복할 수 없는 피해가 생기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성희롱이냐, 아니냐를 판단할 때는 피해자의 관점에서 봐야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성희롱, 성폭력 교육을 받는 게 중요하다”라고 했다.
9일 오후 9시쯤 서울 종로구 와룡공원 서울성곽 주변에서
경찰이 박원순 시장을 찾기 위해 야간수색을 하고 있다. / 오종찬 기자
박 시장은 2000년 일본 도쿄에서 열린 '여성 국제전범 법정'에서
남북공동검사단 남측 대표 검사로 참여해
"한반도는 10만명 이상이 군대 위안부로 동원된 최대 피해국"이라며 일본 정부를 기소했다.
여성 국제전범 법정은 일본군의 위안부 동원 만행을 알리고 일본 정부에 책임을 묻기 위해
국내·외 시민단체가 조직했다.
박 시장은 지난해 6월 한국여성경 제인협회 서울지회 창립 20주년 기념식에선
"이제 우리 사회가 우먼 파워, 소프트 파워의 주인공인 여성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며
“특히 서울시는 여성들이 마음놓고 일하도록 하기 위해 보육과 돌봄으로부터 해방해야 한다는
본질적인 문제를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세계 여성의 날 등 여성 관련 이슈가 나올 때마다 여성 대상 범죄를 규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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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례없다'는 박원순 서울특별시葬, 왜 우릴 불편하게 하는가
입력 2020.07.11 06:00
11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시청 앞 광장에 차려진 고 박원순 서울시장의 시민분향소에서
한 여성이 조문하고 있다. /뉴시스
11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시청 앞 광장에 차려진 고 박원순 서울시장의 시민분향소에서
시민들이 조문을 위해 줄을 서고 있다. /뉴시스
연합/ 문재인 대통령 조화가 10일 오전 박원순 서울시장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으로 들어가고 있다.
여성계에서 ‘원순씨’는 ‘페미니스트’와 동의어였다.
문재인 대통령이 ‘페미들의 대통령’이라 불린다지만,
서울대 성희롱 사건부터 일본군위안부 문제, 강남역 살인사건까지
박원순 서울시장 만큼 여성 이슈 현장을 발로 뛰며 응원한 정치인도 드물었다.
그랬던 그가 성추행 사건에 연루돼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소식은
‘안희정 미투’ 이상으로 충격을 던졌다.
배신감과 연민이 빠르게 교차했다.
서울대 성희롱 사건때 박원순 당시 변호사를 도와 소송을 승리로 이끄는 데 기여한 대학선배는,
“죽음을 택한 것이 박 시장의 가장 큰 잘못이다.
잘못했으면 대가를 치르고, 억울했으면 항변하는 것이 지지자들에 대한 예의였다.
언제까지 한국 사회를 생과 사의 싸움으로, 원한과 복수가 되풀이되는 사회로 만들려는가”
탄식했다.
박원순은 분명 한국 시민운동사에 큰 획을 그은 인물이다.
소액 주주 권리 찾기, 국회의원 낙선 운동, ‘아름다운 가게’를 통한 기부 등
참신한 아이디어로 시민사회운동의 새 지평을 열었고
무상급식, 도시재생 등 생활밀착형 시정을 주도해 역대 최초로 서울시장 3선을 기록했다.
그렇다고 해도 박 시장 사후(死後) 이를 추모하고 애도하는 풍경은 웬지 거북하고 불편하다.
서정협 서울시장 권한대행이 10일,
“고인의 장례를 서울특별시장(葬)으로 5일간 치르겠다,
별도 분향소를 마련해 시민들이 조문토록 하겠다”고 발표했을 때 많은 국민들은 어리둥절해했다.
고인의 죽음이 시장 업무를 수행하다 이뤄진 순직이었던가.
그는 함께 일했던 비서가 성추행 피해 고소장을 경찰서에 제출한 다음날 극단적 선택을 했다.
엄중한 코로나 시국에
서울시가 앞장서 5일장에 분향소까지 설치하는 것이 적절하냐는 논란도 거셌다.
교회 소모임이 금지되고, 일반인 장례도 조문을 사절하는 마당이다.
10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서울특별시장(葬)을 취소하란 청원이
삽시간에 20만을 돌파한 것은,
박원순에 대한 지지 여부를 떠나 그것이 ‘상식’의 문제였기 때문이다.
연합/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가 10일 오후 서울시 종로구 서울대학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박원순 서울시장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다.
“거인 같은 삶” “천만 촛불광장을 지켜준 고인을 잊지 않겠다”는 여권의 뜨거운 애도 물결에도
대중의 시선은 곱지 않다.
피해자 중심주의, 젠더감수성을 외쳐온 그들 중 고인의 성추행 의혹에 유감을 표명한 사람은 없었다.
장례위원장을 맡겠다는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고인의 성추행 의혹을 묻는 취재진에게
“그걸 예의라고 묻느냐!”며 되레 화를 냈다.
이들은 설마 죽음이 모든 걸 덮을 수 있다고 믿는 걸까.
‘그까짓 성추행’이 고인을 추모하는 데 걸림돌이 되어선 안 된다는 걸까.
“삶을 포기할 정도로 자신에게 가혹한 박원순이 원망스럽다.
노무현·노회찬 동지가 갔을 때 가슴에 큰 구멍이 생겼다면
이제 평생 또 다른 가슴의 블랙홀을 가지고 살아가야 할 것 같다”는 조희연 교육감의 애도는
자살한 정치인들에 유독 관대했던 우리 사회의 정서를 이용한 듯해 더욱 씁쓸했다.
고인에 대한 추모가 장대할수록 피해 여성의 고통은 극심해진다.
실제로 대대적인 2차 가해가 시작됐다.
지지자들은 당시 서울시장의 비서로 근무했던 이들의 명단을 공유하며
피해 여성 찾기에 혈안이 됐다.
엉뚱한 사람의 가짜사진이 벌써부터 돌고 있다.
가장 분노하는 건 현 정권 핵심 지지층인 2030 여성들이다.
안희정 상가에 문대통령 부부가 조화를 보냈을 때
‘김지은입니다’ 책 구매로 보란 듯이 저항했던 이들은,
온라인에 ‘#박원순 시장을 고발한 피해자와 연대합니다’란 해시태그,
‘어떤 자살은 가해였다. 아주 최종적인 형태의 가해였다’는 정세랑 소설의 문장을 공유하며
피해 여성 엄호에 나섰다.
“전례없는 서울특별시장(葬)? 정부가 앞장서 2차 가해를 하겠다는 건가”라는
분노의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정의당 청년대표 장혜영 의원은
“전례없이 행해져야 하는 건 위계에 의한 성폭력 진상파악”이라고 일침했다.
인스타그램 캡처/정세랑 소설 '시선으로부터'에 등장하는 문장으로
2030 여성들이 적극 공유하고 있다.
박원순은 성희롱이 범죄임을 인식시킨 국내 최초의 직장 내 성희롱 소송을 승리로 이끈 주역이다.
당시 고소장에 ‘호숫가에서 아이들이 장난삼아 던진 돌멩이로 개구리를 맞힌다.
아이들은 장난이지만 개구리는 치명적인 피해를 입는다’는 명문(名文)을 직접 썼다.
시장 취임 후 젠더 특보부터 신설했고,
‘안희정 미투’가 폭로됐을 때 “용기 있는 영웅들의 행동”이라고 박수를 보냈다.
다행히도 서울시는 ‘박원순 시정 철학’을 굳건히 지켜나가겠다고 10일 선언했다.
거기에 박 시장의 성평등 철학도 포함되는 거라면,
서울시는 고인의 유언대로 장례는 조용히 치르되 성추행 고소 건은 명백히 소명해야 한다.
‘과거를 기억할 수 없는 사람은 그 잘못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다’는 박원순의 말을 인용한
한국성폭력상담소의 입장문은 의미심장하다.
“박 시장의 죽음이 비통하다면 서울시는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책임을 다하라” 촉구한 이들은
대대적인 장례와 장례위원 모집, 시민 조문소 설치에 반대했다.
좌파 여성단체들까지 가세한 여론을 외면한 채 ‘공소권 없음’으로 무마할 생각이라면
정의와 원칙, 상식을 그토록 강조해온 현 정권의 지지 기반은 뿌리부터 흔들릴지 모른다.
관련기사를 더 보시려면,
與, 朴 사망 이유 뒤집기 나서나… "전혀 다른 얘기 있다"선정민 기자
박원순 성추행 고소 사건, '공소권 없음' 종결김승현 기자
서울시, 행정1부시장 대행체제로 운영이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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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장이 성추행 하고 사진을 보냈어요" 前비서 경찰에 고소이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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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청원 30만 넘어… 논란 불붙은 서울특별시葬이세영 기자
與 최민희 "정의당, 왜 박원순 조문 정쟁화하나"선정민 기자
하태경 "서울시葬 이번엔 달라, 그 자체가 2차가해"선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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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박 시장의 극단적 선택이 던진 충격과 문제
조선일보
입력 2020.07.11 03:26
박원순 서울시장의 극단적 선택은 실로 충격적이다.
최초의 3선 서울시장이면서 민주당 대선 주자 중 한 명으로 거론돼온 박 시장이
이렇게 생을 마감하리라고는 아무도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박 시장은 유서에서 "모든 분에게 죄송하다"고 했다.
경찰은 박 시장의 성추행 관련 고소장이 접수됐고, 전직 비서가 고소인 조사까지 받았다고 했다.
박 시장은 인권 변호사의 상징처럼 여겨졌고 시민 단체 운동을 이끈 사람이다.
국내 첫 성희롱 사건인 '서울대 우 조교 사건' 승소를 이끌었다.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며 서울 시정에서도 여성 권익 보호를 앞세워 왔다.
그런 그의 성추행 피소는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우리 사회에서 유명인들의 극단적 선택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것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퇴임한 뒤 재임 중의 가족 비리로 검찰 조사를 받던 중 투신했다.
이후 전직 의원 등 정치인 여러 명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
이들 역시 비리 혐의 등 문제를 안고 있었다.
젊은 연예인들의 비극적 사건도 거의 주기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유명인들이 '죽음'으로써 문제를 끝내려는 선택이 이어지면서
그러지 않아도 심각한 우리 사회 일각의 위험한 풍조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유명인의 자살은 전염성이 있다고 한다. 대중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는 뜻이다.
우리나라 자살률은 OECD 국가 가운데 최악이다.
'자살률 1위 국가'라는 오명은 극단적 선택으로 '문제가 해결된다'거나
심지어 미화되는 풍토의 영향도 작지 않을 것이다.
극단적 선택을 하면 잘못을 덮을 수 있고, 심지어 영웅이 될 수 있다는 잘못된 메시지를 주게 된다.
서울시는 박 시장 장례를 서울특별시장(葬)으로 5일장을 치르겠다고 했다.
시민 분향소도 설치했다.
하지만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는
"서울특별시장으로 하지 말고 조용히 가족장으로 치르라"는 취지의 청원이 올라와
많은 사람이 동의했다.
청원인은 "성추행 의혹으로 자살에 이른 정치인의 화려한 5일장을 국민이 지켜봐야 하느냐"고 했다.
여기에 시민 세금을 쓸 수 있느냐는 견해도 적지 않다.
박 시장의 죽음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지만 업무 중에 순직한 것과 는 구별해야 한다.
이와 함께 일부 네티즌이
박 시장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고소한 사람을 색출하겠다고 나선 것도 심각한 일이다.
성추행을 당한 사람은 피해자일 뿐이다. 피해자를 찾아내는 행위 자체가 2차 가해이다.
'성추행 피해자는 입을 닫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인가.
내 편은 무조건 감싸고 아니면 배척하는 우리 사회의 풍토를 또 한번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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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7/10/202007100394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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