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나의 소설 같은 세상] [62] '주홍 글씨' 칠링워스를 위한 변명
조선일보
- 김규나 소설가
입력 2020.06.03 03:12
김규나 소설가
"다시 한 번 헤스터의 주홍 글자를 봐주십시오!
불가사의하고 무서운 저 표지는 남자의 가슴에 찍혀 있는 낙인에 비하면 한낱 그림자일 뿐이며
그 남자의 붉은 표지 또한 그의 양심이 불에 타고 있음을 상징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보십시오! 심판의 무서운 증거를 보십시오!"
목사는 성직을 상징하는 띠를 발작적으로 가슴에서 잡아 뜯었다. 그러자 낙인이 나타났다.
- 너새니얼 호손 '주홍 글씨' 중에서.
'나는 결백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늘어간다.
의혹이 클수록 악의적 음모다, 이득을 취한 게 없다, 모든 건 피나는 노력의 결과일 뿐,
오류가 있다 해도 현재의 지위를 포기할 이유는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정면을 쳐다보지 못하고 땀을 뻘뻘 흘리며 원고만 읽다 내려간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모습에
'입은 거짓말을 해도 몸은 거짓말을 못 한다'는 속설이 떠오른다.
1850년에 출간된 너새니얼 호손의 '주홍 글씨'를 읽은 독자라면 죄와 양심을 놓고 고민하게 된다.
남편이 부재한 사이 아이를 낳은 것이 증거가 되어 부정한 여인으로 낙인찍힌 헤스터는
모멸과 수치를 감당하며 간통의 앞글자인 'A'를 평생 가슴에 달고 살아간다.
침묵으로 죄를 덮은 딤스데일은 존경받는 목사의 직분을 지켜내지만
양심의 질책을 끝내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새긴 죄의 표지를 사람들 앞에 내보인 뒤 숨을 거둔다.
완전무결한 사람은 없다.
그래서 목사의 도덕적 위선을 집요하게 추궁했던 헤스터의 남편 칠링워스가
세 사람 중 가장 나쁜 악인으로 비치기도 한다.
하지만 질투와 복수의 무상함을 깨닫고
헤스터와 목사의 딸에게 재산을 물려주고 세상을 떠나는 인물이기도 하다.
해명도 없이 혐의는 지워지고 의혹을 받은 이는 그 무엇도 잃은 것 없이 오히려 더 잘 살아가곤 한다.
책임을 물은 이들만 속 좁은 위선자로 기억된다.
누구도 칠링워스가 되고 싶진 않다.
그러나 법의 처벌도 없고 진실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없다면,
유죄(guilty)를 뜻하는 'G'를 가슴에 달고 살아야 할 사람 중 양심에 기대 자신의 위선을 괴로워할 이,
얼마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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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6/03/202006030006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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